삼우제를 마치고 집에 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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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삼우제를 마치고 집에 오던 날
장례식을 마쳤습니다.
용미리에서 삼우제를 마치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형제들은 용미리에서 바로 내려갔고,
나는 누님을 따라서 누님 집인 중곡동으로 갔습니다.
거기서 장례식 때 온 사람들의 방명록을 건네주시며,
"이만큼 부조금이 들어왔는데, 장례식 비용으로 다 쓰고 남은 게 하나도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방명록을 가져가라고 하셨지요.
그런가 보다 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누님 집에서는 계속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습니다.
기다려도 올 그 사람이 없으니까요.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그 방명록을 들고 올 힘이 없어서,
"다음에 와서 가져갈게요."
하고 나왔습니다.
누님 집에서 나와 걷다가 버스를 타려는데,
가방도 없이 빈손이었던 나는 차비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정류장 길바닥에 그냥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그때,
바지 주머니에 봉투가 하나 만져졌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남편의 친한 친구 기주 씨가
"향기 씨, 이거 우리 친구들의 성의입니다. 가지고 있다 리아 학교 들어갈 때 가방이라도 사주세요."
하며 억지로 넣어주고 간 하얀 봉투였습니다.
나는 그때,
"아니에요, 저기다 내주세요."
하고 거절했었지요.
그 친구는 ,
"아니요, 저기다 내면 향기 씨 손에 안 들어갈 거 같아요. 그러니 받아요 "
하며 굳이 내 손에 쥐어 주던 봉투였습니다.
그 하얀 봉투 속 부조금으로 나는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에 타자, 나는 기사님께 울면서 하소연하듯 말했습니다.
"기사님, 저 지금 남편 삼우제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인데요.
그런데 집에 갈 차비가 없어요.
남편 부조금 받은 돈으로 택시비 내고 집에 가야 해요.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요.
살다 보니 정말 이런 일도 있네요.
기가 막히네요, 기사님."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너무도 기가 막혀서, 택시 안에서 계속 흐느꼈습니다.
내릴 때 기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돈을 받아야 하나... 저도 정말 마음이 안 좋네요.
젊은 애기 엄마, 그래도 용기 내고 사십시오.
지금은 너무 죽을 듯 힘들지만, 살다 보면 또 좋은 날 옵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습니다.
좋은 날이 온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는 지금 한 걸음도 걷기 힘들 정도인데,
좋은 날이 오긴 뭐가 온단 말인가.
그렇게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온 저는
식음전폐한 채 누워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와서 본 작은오빠가 누님 댁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마도, 같은 서울에 살고 남편과 가까웠던 누님에게 이야기하기 편할 거라 생각했던 듯합니다.
오빠는 전화를 붙잡고 말했습니다.
"이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어린애를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형제들끼리 상의를 해서 도울 방법을 의논해야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삼우제 끝나고 애를 빈손으로 보냅니까?
부조금 들어온 것 중에 조금이라도 남겨주셨어야지요.
어떻게 한 푼도 안 주고 애를 집으로 보내십니까?"
나는 화내는 오빠에게 사정하듯이 말했습니다.
"오빠, 전화하지 마. 전화해도 소용없어."
그 사람, 살아 있을 때도 형제들 사이 돈 문제로 많이 힘들어했었어...
오빠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격앙된 목소리.
그리고, 오빠가 소리쳤습니다.
"뭐라고요?
니가 낳은 새끼니까, 고아원에 갖다 주든지 맘대로 하라고요?"
장례식장에서
큰 형님이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제수씨는 젊으니까 재혼하면 됩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재혼 이야기가 나오다니...
나는 순간,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습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오해를 했습니다. 그분들은.
아빠가 없으면, 엄마라도 옆에 있어야죠.
나는 자식 사랑이 유난한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