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할머니 나 배고파

by 초록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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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할머니, 나 배고파


삼우제를 마치고, 시댁 식구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혼자서 용미리를 다녀온 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그의 죽음에 힘들어했습니다.


제 앞에서 저보다 더 서럽게 울던 그 여자의 존재는 미칠 것 같은 울분과 배신감으로 저를 더욱 괴롭혔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뭐가 뭔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어디서부터가 문제인가? 생각만 머릿속을 맴돌 뿐,

그저 자리에 누운 채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적막이 두려워 켜 놓은 TV 속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떠들었습니다.

무엇이 저리도 좋은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그들의 웃음소리는 몽롱하게, 아득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제 몸이 한없이 땅속으로 꺼져드는 듯한 느낌에

그저 늘어져 누워 있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몇 번이나 울린 끝에, 리아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할머니, 나 배고파."

리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가 물으셨습니다.

"엄마는? 엄마 뭐 하니?"

리아는 대답했습니다.

"엄마는 누워 있어. 엄마 방에 누워 있어."


엄마는 다급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리아야, 냉장고 열어봐. 안에 뭐가 있어?

요구르트라도, 뭐라도 꺼내서 먹어. 그리고 엄마 좀 바꿔줘."


저는 누운 채 겨우 힘겹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입에 넣어야 해.

리아 밥도 좀 챙겨줘야지.

네가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엄마도 너무 속상하고 힘들어."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엄마, 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

엄마, 앞으로 나 어떻게 해야 해?”

저는 힘없이 울먹이며 중얼거렸습니다.

몸은 방바닥에서 일어나지도 못한 채

마음은 저 깊은 어둠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큰 딸로 태어나, 마음껏 공부하고 싶었던 우리 엄마.

일제강점기 시대, 계집애 가르쳐야 소용없다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밑에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공부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배우고 싶었던 마음.

교복을 입고 한없이 미래를 꿈꾸고 싶었던 여고생이 되고 싶었던 엄마.

그 꿈을, 엄마는 늘 가슴속 깊이 묻고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믿으셨습니다.

딸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그 꿈을 대신 이뤄줄 것이라고.


엄마는 늘 딸을 응원하셨습니다.

당신이 못한 그 공부, 그 한을 풀어줄 딸을 바라보며 살아오셨습니다.


저는 면소재지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D도시에 있는 여고에 진학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시골집에 가게 되면

엄마는 교복 입은 딸을 데리고 외갓집에 들러 인사를 시키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 대만으로 유학을 갈 때,

엄마는 당신이 가는 것처럼 행복해하셨습니다.


배추김치를 담그고, 약식을 직접 만들어 대만까지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거, 대만 친구들과 같이 먹어."

묵직한 약밥 상자를 건네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박사 공부를 하러 중국으로 떠날 때,

"우리 딸이 저 큰 나라에서 공부를 한다"며

당신이 직접 공부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해하셨습니다.


딸의 성장과 꿈을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여기며,

엄마는 기쁘고 또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내 남편의 죽음과 함께 엄마의 꿈도 꺾였습니다.

엄마의 희망도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쓰러져서, 쓰러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 있는 딸처럼,

엄마의 희망도 그렇게 무력하게,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다음날, 엄마는 당장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냥 죽어가듯이 누워 있는 저를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일 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그리고 여섯 살 리아가 "할머니, 나 배고파"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신 엄마는

평생 살아오신 시골 생활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오셨습니다.


그렇게, 일흔이 되신 엄마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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