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둘이 모텔에 가든지 마음대로 하지 왜 왔어?

by 초록 향기

7. 둘이 모텔에 가든지 여관에 가든지 마음대로 하지, 왜 왔어?

사별,

그를 보내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한 달을 누워 있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의 현실에…


적막이 두려워 TV는 계속 틀어 놓았지만

TV 속의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게 떠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슬픔도 기쁨도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정지된 가슴이 되어

그저 막연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업이라고 벌려 놓은 지 얼마 안 된

그가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은

현실적인 부채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금요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견딜 수 없는, 미칠 것 같은 답답함에

누군가를 붙잡고 하소연이라도,

가슴에 맺힌 풀리지 않은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마침 퇴근을 하고 집에 있다는 그 친구는

봉천동이 집이라고 했고,

집 근처로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하더군요.


그냥 아무 생각할 겨를 없이 봉천동으로 갔습니다.

그 친구가 봉천동의 어느 맥주집에 데리고 가서 맥주와 안주를 시키고

저는 비극적인 영화 같은 내 현실을 토로하면서 내내 우느라,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가 자신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어요.

만난 시간이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금방 12시가 되더군요.

밤 12시가 되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밖에서 활동하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저에겐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집으로 전화 안 해줘도 돼요?” 하니

“아마 자고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더라고요.

그때 제 생각에는

이미 저를 만나러 나간 걸 아는 터라

아마도 이야기하라고, 연락을 안 하나 보다 했지요.


그리고 다시 답답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 친구는 현실적 대안이 없는 제 생활에 대해 걱정을 하며 앞으로 살아갈 방법들을 조언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12시가 훌쩍 넘어갔습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붓고,

그 얼굴로는 도저히 칠순이 되시는 엄마를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함께 살던 동생에게

“기다리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엄마에게 전해줘.”

부탁을 한 후,

그 친구를 따라 걸어서 그가 사는 아파트까지 갔습니다.


이전에도 남편 친구들이 저희 집에 와서

포커도 치고 함께 어울렸었습니다.

제가 너무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이 안 됐던지, 차라리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고

저는 함께 따라갔습니다.


사실 저랑 남편은 동갑이어서

학창 시절부터 남편 친구들과도 무척 친하게 어울렸었지요.

부인들을 알기 전부터, 우리는 그렇게 지냈던 사이니까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파트 현관 앞에서

“지금 향기 씨하고 같이 왔어. 문 열어.” 하자, 인터폰으로 흘러나오는 소리.


“둘이 여관에 가던지, 모텔에 가던지 마음대로 하지.

왜 왔어? 문 못 열어줘.”


순간 가슴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제가 잘못 생각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연신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을 잘 못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얼른 들어가세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도 없이

캄캄한 비상계단으로

7층에서 정신없이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은 벌렁거리고,

눈물은 쉴 새 없이 흐르면서…

아, 세상 여자들이 남편을 저렇게 단속하는구나.

저렇게 남편을 대하는구나.’


남편 잃은 지 한 달도 안 된 여자에게,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도 정신을 못 차리는 여자에게…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그가 남긴 빚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한 벼랑 끝에 있는 나에게,


“모텔을 가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라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막말을 할 수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만약 내가 그 여자였다면,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미웠다 해도,

남편 잃은 지 오래되어 걸핏하면 자기 남편을 불러낸 것도 아니라면

그날만큼은 피곤한 남편은 우선 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밤을 새워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떻게 하면 용기를 줄 수 있을까?

그걸 함께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남편을 보낸다는 것은

남편이라는 자리 하나만 비는 게 아니더군요.

그를 통해 연결되었던 모든 인간관계가

함께 끊어지는 일이었습니다.


사회가 이렇게 혼탁하니까,

남편 잃은 지 한 달도 안 된 여자마저

자기 남편을 유혹할까 봐

저렇게 난리를 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친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1층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향기 씨…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얼른 들어가세요.

제가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얼른 들어가셔서 얘기 잘하셔서 오해 푸세요.”


그날 이후, 저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남편 지인들과 단절을 했습니다.


그때의 나는,

그냥 조용히, 어디로든 사라져 버리고만 싶었습니다.


늦은 밤 잠자리에 누우면,

그냥 이대로 눈감고 잠들어버렸으면…

그대로 영원히 일어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매일매일 하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날 밤, 인터폰을 통해 들려온 그 여자의 그 말 한마디,

“둘이 모텔에 가던지 여관에 가던지 맘대로 하지. 왜 왔어.”


그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저를 아프게 했습니다.


나는 그저,

남편을 잃은 지 한 달도 안 된 여자였는데요.

남편 없는 나를 바라보는

세상 여자들의 눈이…


너무도 무서워졌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 할머니 나 배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