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남편... 다시 만나면 되지

by 초록 향기


1-8. 남편 다시 만나면 되지

남편의 대학 친구 S는 우리 결혼식에서 사회를 봐준 친구입니다.

대학 시절, 그 친구는 평소엔 편하게 옷을 입다가 용돈이 떨어지면 양복을 입고 학교에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양복을 입고 오는 날이면, 친구들이 묻지도 않고 밥을 사주곤 했답니다.


삼우제도 한참이 지나, 그 친구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삐삐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남편과 연락이 안 될 때면 저는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하면

그는 매번 남편을 찾아 주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S 씨, 일이 씨랑 연락이 안 돼요.”

하고 전화를 하면,

“향기 씨, 제가 알아볼 테니 10분 뒤에 다시 전화 주세요.”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건 저에게,

“지금 어디 계세요? 그 자리에서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공중전화박스 앞에 서 계세요. 제가 바로 나갈게요.”

그렇게 말하곤 바로 택시를 타고 나와,

친구들과 함께 있던 남자친구가 있는 곳으로 저를 데려다주기도 했어요.


또 한 번은,

“지금 친구들이랑 00 당구장에 있어요. 거기로 가보세요".

라고 알려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그 사람과 연락이 안 될 때면 S 씨가 늘 남편을 찾아주었지요.

그 친구라면, 지금도 다시 남편을 찾아 제 앞에 데려다줄 것만 같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 근처로 오라고 했습니다.

가는 길에,

‘그 사람이 정말 예전처럼 리아 아빠를 찾아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찾아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 친구의 회사 근처에 도착하니 마침 퇴근 시간이었고,

근처 생맥주집에 들어갔습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매장은 조용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소주를, 저는 맥주를 시켰습니다.

남편과의 갑작스러운 사별로 힘들어하는 제게,

그 친구는 말했습니다.


“향기 씨, 남편 없는 거… 많이 힘들죠?

나도 요즘 그놈 생각나서 죽겠어요.”


그 친구는 예전에 부부 동반 모임에서,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우리 딸 리아를 데려오지 말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리아를 두고 나가는 게 마음에 걸려, 그 모임에 나가지 않은 적도 있었지요.


친구들과 만나면 “너희는 아이 언제 가질 거냐”라고 묻곤 했고,

그럴 때마다 그는 “때가 되면 나오게 되어 있어.” 하며 농담처럼 넘기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향기 씨, 우리 아내는 아이를 가질 수 없어요.

그래서 저도 평생 자식 없이 살 거예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여자는 내가 아이가 없는 걸 알고

대놓고 ‘제가 아들 낳아드릴게요.’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내 아내에게 피눈물 나는 짓은 안 하기로 결심했어요.

부모님께는 아내가 불임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사실대로 말하면 이 결혼은 끝날지도 모르니까요.

병원에 가보라는 부모님께는

“가보니까 다 정상이래요”.라고 둘러대며 넘겼습니다.


향기 씨가 힘들어하시니까…

저도 지금 제 힘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는 덧붙였습니다.


“향기 씨는… 남편 없으면, 남편 다시 만나면 되잖아요.

향기 씨는 리아가 있잖아요.

남편은, 없으면 다시 만나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요.

먼저 가버린 그 못된 놈 생각하지 말고요.

그런데 나는, 아내와 헤어지지 않는 한평생 내 아이를 못 가져요.

이건 내가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일이에요.

그놈…, 먼저 가버린 그놈, 내 친구지만 나쁜 놈이에요.

그러니까 그 나쁜 놈, 이제 그만 생각하고 눈물 닦고,

집에 가서 리아 밥도 차려주고 그래야죠.

향기 씨는 엄마잖아요. 리아가 있잖아요.

엄마가 언제까지 이렇게 울고 만 있을 거예요?”


순간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 아내가 아이를 못 낳는구나.

그래서 그때 부부 모임에서 리아를 데려오지 말라고 했던 거였구나.’


그제야 예전의 일들이 이해가 되었고,

저런 상황에서 아내의 마음을 배려하려고 애썼던 그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그 마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자식을 포기하고 아내 곁을 지키기로 한 그 마음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무거운 자신과의 약속이었을 겁니다.


‘그래, 그러지 뭐.

남편 없으면… 남편 다시 만나면 되지.

남편, 다시 만나면 되는 거지’.


그렇게 그 친구의 아픈 이야기를 듣고,

혼자서 위로하면서, 다독이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다시 만난다고? 말도 안 되지.

그래도,

‘남편 다시 만나면 되지.’

그렇게 억지로라도 생각해야,

그래야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 마음을 위로해야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문득,

장례식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해 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가는 마지막 길에도 그 친구는 함께 있었습니다.

남편이 평소 좋아했던, 다른 친구들도

발인 날까지 모두 남아 장례를 다 치른 후에야 돌아갔습니다.


남편이 그처럼 좋아했던,

학창 시절 늘 함께했던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

저는 다시

남편 없는 향기가 되었습니다.


남편 없는 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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