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재산 한정승인을 신청하면서 -
1-9. 법원에서
-상속재산 한정승인을 신청하면서 -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
함께 해야 할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
그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그가 남긴 은행 대출과 개인 빚 문제까지 떠안아야 한다니…
그저 막막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헤매던 어느 날,
봉천동에서 만났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지난 만남에서 제 사정을 들었던 그는
지인들에게 상담을 한 끝에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향기 씨, 지금은 다른 것보다 향기 씨 살길부터 생각하세요.
지금 당장 법원에 가셔서
‘상속재산 한정승인’ 신청부터 하셔야 해요.
그걸 하지 않으면, 남편이 남긴 빚을 향기 씨가 다 떠안아야 해요.”
그 말을 듣고 저는,
낯설고 두려운 마음으로 서초동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서초역에서 내려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민원실을 찾아갔고,
안내를 받아
‘상속재산 한정승인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보는 서류, 낯선 용어들.
손은 떨리고 숨이 막혔습니다.
“내가… 당신 죽은 것도 힘든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눈물이 쏟아져 글자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법무사에게 맡기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지만
아는 데도 없었고,
대행료라도 아끼고 싶었습니다.
결국 ‘직접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연신 닦아내며
간신히 한 글자 한 글자 신청서를 작성해 나갔습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힐끔 제 신청서를 들여다보더니 말을 걸어왔습니다.
“아이고, 나이도 어린데 벌써 이런 신청하네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래요…”
그리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요, 남편 장례 어제 치르고 오늘 바로 왔어요.
이거 신청하려고요.
내가 그 인간 이럴 줄 알고
살아 있을 때부터 보증도 안 서줬어요.
제 이름으로는 대출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저는 순간,
그녀의 준비성 있는 ‘영악함’이
부러웠습니다.
그녀는 살려고 남편 장례를 치르자마자 왔는데
저는 3개월이 다 되어서야
그것도 울면서 죽을 만큼 힘들게,
겨우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었으니까요.
살기 위해서.
살아야 하니까.
남편의 빚을 떠안지 않겠다는 신청서를
눈물로 쓰고 있었습니다.
서류를 제출한 뒤,
남편의 채권자 몇몇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만났습니다.
강남구청 앞 다방에서는
남편의 지인을 만났고,
의정부역에서는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의 부인을 만났습니다.
(남편 친구는 차마 제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여, 부인이 대신 나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씀드렸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지금은… 지금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꼭 보답드리겠습니다.”
그중 한 분은
법원에 가서 ‘5년 뒤에 갚겠다’는 공증을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었기에
그 5년 뒤를 감히 약속할 수는 없었습니다.
의정부역에서 지하철 1호선에 올랐탔습니다.
대낮인데도
저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나…
리아아빠,
나…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대답 좀 해줘.
제발… 대답 좀…’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남편 명의로 남겨진 빚은
상속재산 한정승인으로 정리는 되었지만
머릿속에는 또 다른 걱정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몇 주 전,
사업자금이 급하게 필요하다며
“한 달만 쓰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 돈은
엄마 명의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엄마가 신협 조합원이었고,
조합장이었던 오빠는 우리 큰오빠의 친구였습니다.
조합장 오빠는 말했습니다.
“사업하느라 바쁜데 굳이 내려오게 하지 말고,
어머니 이름으로 대출을 받고, 향기랑 동생이 보증만 서면 돼.”
그렇게 ‘편의’라고 감사하게 여겼던 일은
결국 또 하나의 짐이 되어 제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한 달 뒤면 갚을 수 있다’는 남편의 말을 믿었고,
망설일 이유도 고민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갚아야 할 돈만 선명하게 남았고 받아야 할 돈은 누구에게서 , 어디서 어떻게 받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3천만 원의 부채는 고스란히 제 몫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당장 생활이 막막했던 저를 돕기 위해
남편 친구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매달 50만 원쯤 되는 생활비를 보내주었습니다.
그 돈은 약 7개월 동안
통장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너무 고맙고,
너무 미안하고,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아…
나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야 하는 걸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