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언제 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가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by 초록 향기

1-10 언제 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꼭 가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 지도교수님께 전화를 걸다

남편의 부고 전화를 받던 날,

저는 지도교수님께 따로 연락을 드릴 여유도 없이 정신없이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한 학기를 채 마치지 못한 5월이었습니다.


학과 사무실에도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보고서도, 과제도, 모두 손을 놓은 채였습니다.

다만 그날 아침 귀국을 도와준 후배 호철 씨가

지도교수님께 제 상황을 전해드렸을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습니다.


중국 집에 남아 있던 제 짐은

같은 동네에 살던 유학생 찬이 엄마가

떠우지에와 함께 대신 정리해 줬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1997년, 잔인한 5월이 지나고

8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지도교수님께 직접 연락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제전화를 걸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전화카드를 넣었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교수님 댁 전화번호를 조심스레 눌렀습니다.


저는 울음을 삼키며 겨우 말을 했습니다.

“교수님, 저 향기입니다.”

“오, 향기구나.”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교수님이 반가워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저는 간신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교수님, 지금은 처리해야 할 일도 많고,

어찌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남긴 일들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학기 보고서도 끝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다시 하러 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언제 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교수님,

제발 저를 기다려 주세요.

반드시 가겠습니다.

저를 기다려 주세요.”


엉엉 울면서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수님은

제 울음 섞인 말을 끝까지 조용히 들어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향기야.

사람이 살다 보면

늘 생각지 못한 일들을 겪게 마련이지.

지금 너의 고통과 상황을

내가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느냐마는

잘 견디고, 정리하고,

그리고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언제가 될지

기다리마.

너를 기다리마.”


전화를 끊고 나서

저는 전화부스 앞에 주저앉아 한참을 흐느꼈습니다.


기다려주신다고 하니

‘다시 가야지,

꼭 다시 가야지.

다시 가야지…

그런데 갈 수는 있을까?’


‘교수님, 기다려 주세요.

너무 힘이 듭니다.

하지만

꼭 다시 가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저는 그렇게 하염없이 울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언제쯤 다시 갈 수는 있을까…’


그날은

너무도 요원하고 막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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