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차라리 지금이어서 다행인지도 몰라
추석에 리아를 데리고 서울에서 D도시로 기차를 타고 가던 날이었습니다.
미리 자리를 예약하지 못해 좌석이 없어 입석으로 가야 했습니다.
기차 칸 문 옆, 의자 등받이와 벽 사이의 좁은 공간에 서 있었는데, 오십 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도 제 옆에 서 계셨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그렇게 갔습니다.
천안을 지나 조치원을 지날 무렵, 아주머니가 먼저 “어디 가세요?” 하고 말을 건네셨습니다.
서울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물으시기에,
“명절이라 시댁에 내려가는 길이에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슬픈 얼굴로 말씀하셨어요.
“남편이 얼마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지금까지 나는 살림만 하고 살았는데, 앞으로 뭘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지인이 서울에서 국밥 장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해서, 가게를 한번 보고 내려가는 길이에요.”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저도요… 저도 사실은 얼마 전에 남편을 떠나보냈어요.”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입을 틀어막고 꺼억꺼억 울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안타까운 눈으로 저를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애기 엄마는 젊잖아요. 지금부터 뭐든 시작할 수 있어요.
나는 오십 다 되도록 집에서 살림만 해서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
애들은 아직 둘 다 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장사도 해본 사람이 하는 건데, 내가 국밥 장사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요.
지인이 서울이 사람이 많으니까 지방에서 장사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냐고 해서 신길동 가게 보러 갔다 내려오는 길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눈물을 참으며 서로의 사별 이야기를 나눴고,
기차는 어느새 D역에 도착했습니다.
“애기 엄마, 아직 서른넷이면 뭐든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예요.
애기 엄마보다 내가 더 걱정이에요. 애기 엄마처럼 내가 젊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격려해 주시는 아주머니께
“아주머니도 꼭 건강 챙기시고, 장사 잘되시길 바랄게요.”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후로 아주머니의 말씀이 계속 귀에 맴돌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괜찮다. 아직 젊으니까.’
며칠 뒤, 2호선을 타고 신길동을 지나며 문득 그 아주머니가 떠올랐습니다.
서울에는 올라오셨을까?
신길동에서 국밥집은 차리셨을까?
그 아주머니가 궁금했습니다.
그 사람과 함께 살다가 제 나이 마흔이 넘어서
아무 준비도 못한 채 홀로 남겨졌다면, 저는 더 힘들었을 겁니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었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아직 젊은, 그런 어중간한 나이였다면…
더 막막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는 서른넷.
그래요, 아직은 포기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뭔가를 다시 시작해도 되는 나이입니다.
그리고 한 번쯤은
누군가 앞에서 '나 지금 힘들어 죽을 것 같다'라고 하소연해도 괜찮을 것 같고,
울어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번이 두 번, 세 번… 계속 반복된다면
사람들은 지겨워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제는 절대 남 앞에서 울지 말자고…
그 힘겨움을 혼자서 참아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도 긴 싸움인지를 알면서도
저는 그렇게 저와 약속했습니다.
다시는 다른 사람 앞에서 울지 말자고…
어차피 함께하지 못할 인연이라면,
그래도 차라리 지금이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자고.
아직은 조금 더 젊은 지금이라서…
지금이어서 다행이라고,
저는 저 자신에게
억지로라도
세뇌하듯
또 그렇게 되뇌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지금이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