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그 여자, 과부잖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승에 있는 한 풀어야 할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를 보내고 나니, 일이 필요했습니다.
어설프게 마치지 못한 공부는 이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고, 받아줄 곳도 없었습니다.
내가 몰두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교차로 신문 하나 가지러 나갈 기운조차 없던 저였지만,
여섯 살 딸 리아가 매일 아침, 집 골목에 비치된 교차로나 벼룩시장 같은 무료 생활정보지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잘 가져왔다” 고 칭찬을 해주니, 엄마를 도와준다고 생각했는지 신이 나서 매일 아침마다 나가서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선입견과 편견이 없는 곳에서 일해보자.’
그런 생각으로 교차로와 벼룩시장 광고를 보고 연락을 했습니다.
제과점, 유치원 보조교사 등 모두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그때 저는 서른넷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은평구의 한 보습학원에서 국어 논술 선생님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전화를 걸었고,
이력서를 써서 아직 남편 이름이 남아 있던 주민등록등본을 들고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학원 입구에서 서서 ‘남편은 뭐 하느냐’고 물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면접이라도 보자 싶어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하다 만 공부는 쓰지 않고, 그냥 대학 졸업까지만 기재했습니다.
다행히 학원 원장님은 남편 이야기를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이 하던 사업이 잘못되어 제가 일을 시작하려는 거라 생각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보습학원 교사, 한 달 월급 70만 원.
나이도 있고 학원 경력도 없으니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었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없었지만, 일을 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오신 엄마가 싸주시는 도시락을 들고 학원에 나갔습니다.
출근은 오후 2시였지만, 아침 9시 조금 넘게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학원에는 10시쯤 도착해 논술 공부를 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려면 준비가 필요했고,
모르는 부분은 미리 공부해 가야 했습니다.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수업 시간을 더 주셨고,
월급도 100만 원으로 올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수업 준비에 몰두하다가도,
갑자기 울컥 치밀어 오르면 텅 빈 교무실에서 혼자 엉엉 울다가
상담 전화라도 오면 얼른 목소리를 바꿔 상냥하게 받았습니다.
집에서는 엄마가 계셔서 소리 내 울지도 못했습니다.
버스 안에서, 전철에서, 목욕탕에 앉아 울었습니다.
특히 목욕탕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물소리가 커서, 사람들이 우는지도 모르게… 흐느껴 울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주중에는 학원을 다니고, 토요일마다 격주로 부산대에 가서 수업을 듣는 생활이 이어졌고,
그러다 보니 해가 바뀌었습니다.
울다 울다 지쳐 잠드는 날이 많았지만,
숨도 쉬지 못할 것 같던 가슴이 조금씩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갑자기 죽기라도 하면, 내 딸은 고아가 될 텐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럼 어떡하지.’
무서워졌습니다.
S생명에 다니고 있다는 여고 시절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혹시 내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남아 있는 리아를 위해 생명보험 하나쯤 들어놔야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친구는 저보고 오전에 시간이 되면 강남역 사무실로 나오라고 했습니다.
2호선을 타고 처음 가본 강남역.
출구가 얼마나 많은지 몇 번이나 헤매다 겨우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친구와 팀장이라는 사람은 시험만 보라고 했고,
시험만 보면 40만 원을 준다고 했습니다.
오전에 나가 매일 교육도 받고, 시험도 보고, 결국 합격도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40만 원을 받으려면 보험 계약을 3건 해야 한다는 겁니다.
처음엔 기가 막혔지만, 이미 투자한 시간이 아까워 오기가 생겼습니다.
리아 것과 제 것, 동생 것까지 첫 계약을 넣고 40만 원을 받았습니다.
경품도 많이 받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주방에 필요한 자잘한 물건들은 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곳엔 600명이 넘는 여자 보험설계사들이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우는 것도 사치다, 감상이다.’
그렇게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오전에 출근해 판촉물을 정리한 뒤,
회사에서 배정해준 역삼동 구역 사무실들을 돌며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S생명입니다.”
모두들 바쁘게 일하느라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지금의 내가 중요하지, 과거의 나는 중요하지 않다.
저들 눈에 나는 아직 신뢰를 주지 못하는 한 보험설계사일 뿐이다.’
낮에는 강남역 보험회사로 출근하고,
오후 4시부터는 은평구 학원으로 가서 8시까지 수업을 했습니다.
몸은 피곤했지만, 불면의 밤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험회사 설계사 시험 동기들과
강남역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습니다.
‘할머니 항아리 수제비집’이었지요.
동기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다른 팀의 신입사원 00가 이번에 실적이 좋아 실적상을 탄대.”
그러자 다른 동기가 말했습니다.
“그 여자, 과부잖아! 우리랑은 다르지.
저녁에 남자들 만나 술 한잔하고, 한 번 자면 계약 하나 해준다잖아.
그러니 계약이 많은 거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윽’ 하면서 수제비가 목에 걸려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향기 씨, 왜 그래요?”
“아니야… 목에 걸렸나 봐.”
그렇게 말한 뒤, 저는 화장실로 달려가 통곡을 했습니다.
그들은 제 상황을 몰랐습니다.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여기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실적이 좋아도, 혹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실력이 아니라 ‘과부여서’,
그걸 이용해서 그렇다고.
그렇게 말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은 냉정하고 무섭고,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남편이라는 단 한 사람의 부재는
단지 내 외로움을 넘어서,
내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도 높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내가 처한 이 현실은 너무도 참담했으나,
나는 나의 외로움을 철저히 배제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나는 또다시 학원으로 가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준비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학생들 앞에 서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