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부산 대학교로
울고 또 울다가 보니, 어느새 가을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도 덥던 하늘이 파래지고,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9월, 새 학기가 시작될 무렵,
박사반 첫 학기에 <중국문학비평사>를 강의하셨던 장이 교수님께서
부산대학교에 교환교수로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중국으로 돌아갈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현재의 상황이 정리가 되지 않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족들의 도움으로 박사과정 2년 차 등록금만 간신히 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중국에 계신 지도교수님께서 연락을 주셨습니다.
얼마 전, 제가 교수님께 전화를 걸어
언제 갈지 모르지만 꼭 다시 가겠다고,
기다려 달라고 울며 말씀드렸던 것이
내내 안쓰러우셨던 것 같았습니다.
“향기야, 등록을 했으면 학교 교칙상 강의를 들어야 해.
더군다나 너도 알다시피, 지난 학기에 수강한 과목들의 성적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이번 학기엔 반드시 한 과목이라도 수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야.
네가 부산까지 갈 수 있다면, 이번 학기에 장이 교수님께 따로 수업을 부탁드릴 수 있어.
물론 학교 측과 학점 인정에 대해 협의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장이 교수님도 동의하셔야 해.”
저는 무조건 교수님의 의견에 따르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저 시키시는 대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주중에는 여는 날 처럼 학원에서 수업을 하고
그렇게 해서
9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두 번,
2주에 한 번씩 토요일마다
부산대학교로 수업을 들으러 내려갔습니다.
서울역에서 아침 7시 조금 넘은 시간에 새마을호를 타면
11시 30분쯤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부산역 근처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습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인데, 부산에서는 순대를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더군요.
소금에만 찍어 먹던 순대를 된장에 찍어 먹는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부산역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대학교에 도착하면
장이 교수님 연구실에 1시쯤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과 작은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일대일 수업을 들었습니다.
교수님은 단 1분도 쉬지 않고
3시간 내내 강의를 하셨습니다.
마치 제가 박사반 입학 후 첫 학기 때 <중국문학비평사>를 수강했을 때처럼,
단 5분의 쉬는 시간도 없이 이어지는 강의였습니다.
저는 힘들다고 말할 수도,
쉬자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3시간 동안 꼿꼿이 앉아,
알아듣는 것은 필기하고,
모르는 것은 바로 질문하며 수업을 이어갔습니다.
오후 4시가 되면 수업이 끝났고,
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돌아가면 5시가 가까워졌습니다.
서울행 열차를 타면 밤 9시가 넘어서 서울역에 도착했고,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동안
부산을 다녀오고 나면 몸은 늘 녹초가 되었지만,
저는 그 시간을 꼭 붙잡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그 당시 유일하게 놓지 않고 있던
한 가닥 희망의 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창밖으로 계절의 변화가 보였습니다.
황금빛 들판이 펼쳐지면
‘아, 가을이구나’ 싶었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면
‘겨울이 오려나 보다’ 싶었고,
차창 밖으로 눈이 내리기라도 하면
‘그의 산소에도 하얀 눈이 내리겠구나.
당신은 춥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절은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계절 속에서
D도시를 지날 때면
불쑥 떠오르는 그의 모습에,
말없이, 하염없이,
허한 가슴으로
울다가 가고, 울다가 오고,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그해 가을과 겨울,
허하고 시린 가슴을 부여잡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그 가느다란 희망의 줄 하나를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살아내야 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