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그날밤, 차라리 그 여자가 부러웠다.

- 아무라도 붙잡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던 그 밤-

by 초록 향기

1-13. 그날 밤, 차라리 그 여자가 부러웠다.

-아무라도 붙잡고 소리 내어 울고 싶었던 그 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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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시골에서 올라오신 뒤, 저는 학원에서 국어 논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아침마다 싸주시는 도시락을 들고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출근하곤 했습니다.

초등부 국어 논술을 맡은 저는 서른 즈음된 중등부 영어 선생님과 스물다섯쯤 되어 보이던 초등부 영어 선생님, 셋이 어울려 지냈습니다.

가끔 학원 옆 작은 호프집에서 골뱅이 소면에 생맥주 한 잔씩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간은 제 처지를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날도 수업을 마친 뒤, 셋이 호프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제일 먼저 수업이 끝나는 제가 먼저 가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호프집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항상 앉던 구석 자리에 이미 다른 손님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여사장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괜찮으시면 나머지 선생님들이 오실 때까지 잠시 저 여자분과 합석하시겠어요?”


이미 양해를 구한 상황이라 저는 가볍게 목례를 하며 그 여자 앞 대각선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녀는 저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젊은 여자였습니다.


호프집 사장님이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걸 들은 그녀가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세요?”


그리고는 곧, 제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습니다.

“선생님, 그런데요… 제가요,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너무, 너무 힘들어요.”


이미 술기운이 오른 그녀는 혼자서 맥주 세 병을 마신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용히 말했습니다.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남들도 알고 보면 다 힘들어해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순간 저도 모르게 슬픔이 올라와 제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고생 하나도 안 하고 사는 분처럼 보이는데 무슨 힘든 일이 있으세요?”


그녀는 정말로, 제 눈물의 이유가 궁금한 듯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하마터면 울어버릴 뻔했습니다.


‘사실, 저도 죽을 만큼 힘들어요.

남편과 얼마 전 사별했어요.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어요.

남겨준 재산은 하나도 없고, 빚만 있어요.

여섯 살 딸아이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그 말들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꾹꾹 눌러 삼켰습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 동거 중이라고 했습니다.

남자친구가 오토바이를 사고 싶다고 해서 500만 원을 줬는데,

새로 산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 사고가 났고,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오토바이는 완전히 망가졌고 수리비가 많이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그 사람과 함께할지, 헤어질지를 고민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 남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너무 괴롭다고,

그래서 오늘 혼자 와서 술을 마시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함께 계시는 게 좋을 거예요.

같이 있고 싶어도,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은 함께할 수 없답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꾹꾹 눌러 참던 슬픔을 더 이상 주체하기 어려웠습니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그 순간,

다행히 두 영어 선생님이 호프집에 들어왔습니다.

마침 안쪽 자리에 있던 손님들도 일어나,

그녀에게 제 슬픔을 들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생맥주 한 잔의 취기에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터졌습니다.


늦은 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는 손님이 몇 명 타지 않았고

덜컹거리는 버스 소리에 창피한 줄도 모르고

저는 또 엉엉 울었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붙잡을까, 놓을까 고민할 수 있는 그녀가 부러웠습니다.

죽은 사람은 붙잡을 수도,

살아야 할지 말지 고민할 수도,

다시 만날 수도 없습니다.


처음 보는 저에게

“나 너무 힘들어요”

“지금 너무 괴로워요”

하고 말하며 자신의 아픔을 쏟아내는 그녀가

차라리 부러웠습니다.


나도 지금, 아무라도 붙잡고

“나 지금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

나 너무 힘들어요.”

그렇게 소리 내어 울고 싶은 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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