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남편은 뭐 하시지요?
그렇게 그가 떠난 잔인한 봄이 지나고, 무심한 여름이 가고, 서울과 부산을 바쁘게 오가던 가을과 겨울이 지나며 해가 바뀌었습니다.
저는 아침에는 S생명으로 출근하고, 오후에는 학원을 오가며 바쁘게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역 승강장에 있는 조그마한 가판대에서 신문을 한 부 사서 들고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그저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있어야만 슬픈 생각이 덜 밀려왔고, 가슴이 덜 시렸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벼룩시장’ 같은 생활정보지를 챙겨 들고, 의미도 없이 활자를 따라가며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강남역에서 내려야 할 때에도 멍하니 있다가, 역삼역에 이르러서야 화들짝 놀라 내려 다시 돌아오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학원 원장님의 사모님이 학원에 찾아오셨습니다. 요즘 학원 운영이 잘되지 않아 집에만 있기가 어려워 D생명보험회사에 나가기로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강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돌리셨고, 한 선생님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보험도 하나 가입하셨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증원해야 해서 그런데 보험회사 시험 좀 봐주실 수 없을까요?”
저는 어쩔 수 없이, 현재 S생명에 다니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원장선생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향기 선생님, 보험회사와 학원 중 하나를 선택하세요.
내가 흙 파서 선생님 월급 줄 순 없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침착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이달 말까지 시간을 주세요. 그때까지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로 가서 또 울었습니다.
저는 S생명에서 오전 시간만 활용했기에, 오후 4시에 시작하는 학원 수업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지각한 적도 없었고, 오히려 학원 교무실 선생님들께 조심스러워 설문지 한 장도 부탁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원장 사모님의 등장으로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봐달라는 부탁을 거절해야 했고, 그로 인해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국어 논술 학원은 그렇게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보험 영업을 해보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큰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기에,
세상을 직접 겪고 부딪치려면
학원보다 보험 영업이 더 빠른 길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을 마칠 무렵, 지점장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향기 씨, 남편은 뭐 하시지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습니다.
회사에 제출한 서류에, 이미 세상을 떠난 남편의 이름을 써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은...
남편은… 집에 있어요.”
저보다 앞서 대답했던 누군가를 따라, 저도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순간, 제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신입 교육이 끝난 후, 저는 신입생 대표로 소감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담담하게 A4용지 한 장에 그날의 느낌을 써 내려갔습니다.
소감문을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
계절이 바뀌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아가던 어느 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하늘은 그렇게도 파랬습니다.
역삼동 사무실을 방문하려고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열려 있던 계단창문 너머로 보니
하얀 목련꽃 봉오리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아, 봄이구나. 목련이 피는구나. 봄이 왔구나…’
하늘이 파란지,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정신없이 지낸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번에 교육비를 받으면 오랜만에 딸아이를 데리고 나가
좋아하는 햄버거를 사줘야겠습니다
소감을 읽어 내려가자, 교육생 모두가 훌쩍이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거기 모인 여자들,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었지만,
제 소감을 들으며 흘리는 눈물 속에서 저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모두가 각기 다른 고통을 안고 있다는 것.
저만 아픈 것이 아니고,
저만 남편이 없어 힘든 게 아니라,
남편이 있어도 그렇게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그 순간, 참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소감을 마치고 나오니, 지점장이라는 분이 제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셨습니다
“글이 아주 감명 깊었습니다. 평소에도 글을 쓰시나요?”
“아뇨. 이런 기회는 처음입니다.”
“우리 집사람이 글을 씁니다. 얼마 전에 박완서 작가분과 함께 식사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또다시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이분의 아내는 글을 쓰시는구나.
이런 남편을 두고, 남편과 함께 작가분과 식사도 하시는구나.’
‘남편’이라는 말 한마디에
남편 없는 제 가슴은,
또다시 베인 상처를 스친 듯이 아파왔습니다.
그 후로 입사지원서를 다시 쓸 때,
배우자란은 비워 두었습니다.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을 유지하려면
끝없이 또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그게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그 후, 누군가 물으면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남편요?
저, 남편 없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