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제: " 너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애잖아"

by 초록 향기


1-17.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제: “ 너는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애잖아”

학원을 떠나 세상과 부딪쳐보자는 마음으로 보험영업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보험회사는 숱한 거절에도 상처받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신감을 키우는 교육을 시켰습니다.

매일같이 거절을 당해도 다시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을 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각 영업소장들은 거절을 극복하고 큰 계약을 따낸 성공사례들을 반복해서 들려주며

우리에게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으려 했습니다.

어떨 땐 세뇌교육처럼 느껴졌지만,

암울하고 자신 없던 제 삶에

그런 교육들이 조금씩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도 했습니다.


보험회사의 시계는 참 빨리 갑니다.

특히 월말마감 때는 더 그렇습니다.

저는 출근길에도 생각이 많아

강남역에서 내려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역삼역까지 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역삼역에 내려 “여기가 역삼역인가요?” 하고 묻는 일이 잦다 보니,

한 동료는 그 말을 흉내 내며 저를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아침에 출근을 하면

작은 비닐봉지에 사탕 서너 개를 넣고,

그 위에 ‘S생명보험설계사 향기’라는 스티커를 하나하나 삐뚤어지지 않게 정성스럽게 붙였습니다.

명함과 보험 안내서를 챙긴 뒤,

회사에서 지정한 역삼동 사무실들을 방문했습니다.


책상마다 스티커가 붙은 사탕봉지를 놓으며

“안녕하세요, S생명입니다” 하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보험 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냥 마음 붙일 곳이 없으니 세상을 보러 다닌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역삼동에서 우연히 봉천동에 사는 남편 친구의 사무실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기가 막힌 우연이었고,

더 놀라운 건 그렇게 다니다 보니

어느 사무실의 여직원이 보험상품에 관심을 보이며

처음으로 한 보험상품에 가입을 했습니다


속으로 수없이 말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훗날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꼭 식사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보험가방을 들고 포기할까 말까 흔들리던 저에게

용기를 준 첫 계약자였으니까요.


어느 날, 회사에서

신입사원 중 실적이 좋은 사람을 뽑아 사례 발표를 하게 했습니다.

자리에 앉아 발표를 기다리는데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울렸던 친구,

연주를 닮은 거 같았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20년 가까이 본 적이 없었기에

설마 싶었지만, 발표를 들으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서류를 정리하며 발표를 듣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성공사례 발표는

당시의 저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발표가 끝나고, 그녀가 돌아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책상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혹시… 향기 아니니?”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그 발표자가 정말, 연주였던 것입니다.


“응, 나 향기야. 연주 맞니?”


“어, 나야! 아까 사무실 들어가면서 너를 봤는데,

설마 싶어서 소장님께 물어봤어. 향기 네가 맞다고 하시더라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우리는 1층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연주라니... 정말 연주였구나.’

오래된 기억이 천천히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 한 번 연주 집에 놀러 간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까운 거리였지만 ,

그때 어린 마음에는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동네였습니다.


D삼거리에서 왼쪽 골목 안쪽에 자리한 작고 아담한 단층집이었습니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왼쪽엔 부엌이 있었고 , 마루로 연결된 안방과 작은방이 나란히 있었습니다.

그 작은방이 연주의 방이었고, 그곳에서 함께 놀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연주는 키가 크고, 단정한 단발머리에

예쁘장한 얼굴을 한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때는 같은 학교를 다녔지만 특별히 친하지는 않았고,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저는 시골을 떠났습니다.

연주와의 마지막 기억은,

중학교 시절 교복을 입고 있던 모습입니다.


카페로 내려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저는 어린 시절 연주 집 골목길과

연주의 얼굴, 그리고 개구장이 같던 내 어린시절 꼬마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카페에서 만난 연주는

반가움보다는 의아함이 섞인 얼굴로 말했습니다.


“향기야, 사례발표 하러 들어서는 순간

맞은편에 네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너무 놀랐어.

나는 여기 있어도 되지만,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애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어. 어쩌다 보니…”


만약 그때 연주가

“어머, 널 여기서 보네?”,

“아니,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니?”

라고 했더라면 저는 그냥 쓴웃음을 짓고 뒤돌아서 또 울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제가 누구였는지를 기억해주고 있었습니다.


600명이 넘는 보험 설계사들이 모여 있는 강남역 사무실에서

저는, 어린 시절 친구를 20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연이었지만,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애잖아”라는 그 한 마디는

제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했는지를,

그리고 누군가는

여전히 내 어린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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