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부탁한다.간곡히 부탁한다!

은사님 은사님 나의 은사님 1

by 초록 향기

18. 부탁한다.간곡히 부탁한다!

臺灣 中國文化大學 타이완 중국문화대학




18. 부탁한다.간곡히 부탁한다.




타이완 유학 시절, 석사과정 4학기를 마치고 논문을 써야 하는 시기에 여자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공부하는 학생으로서는 조금 이른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습니다.


스무 살, 대학 1학년 첫 미팅에서 만난 동갑내기 남자친구와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했지요.


타이베이에서 유학생 부부로 시작한 신혼생활은 가난했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우린 젊었고, 우리에겐 미래가 있었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가 보상해 줄 거야’ 하고 믿었던 시절이었지요.


그런데 결혼 직후 남편의 형님이 하시던 사업이 크게 부도가 나면서 우리 부부도 더 이상 집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저는 모교인 대학교에서 석사과정 입학 후 2년간 교비장학금을 지원받았고 집에서도 약 6개월 정도 생활비를 보내주셨지만 더는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도 하게 되었습니다. 양띠 딸을 갖고 싶었거든요.


그 무렵엔 석사 논문은 아예 포기하고 싶어 졌습니다. 지도교수님께도 거의 1년 가까이 연락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여보세요?”

“향기 씨 댁인가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향기 석사 지도교수입니다.”

“아, 교수님! 근데 어떻게 제 집 전화번호를 아셨어요?”

“졸업할 때가 됐는데 연락이 없어서, 다른 한국 유학생들에게 물어봐서 네 이사한 집 번호를 알아냈단다. 그런데 향기야, 이번에 논문 제출 안 하니?”


“교수님,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지금 직장 다니고 있어요. 그리고… 저, 사실은 임신도 했어요. 논문에 신경을 전혀 못 쓰고 있었어요. 이렇게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죄송해요.”


“그랬구나! 축하한다. 예정일은 언제니? 그럼 우선 아기부터 잘 챙기거라. 출산하고 나면 다시 연락 줘. 지금은 다른 생각 말고, 아기에게만 집중해.”


말씀을 듣는 내내 황송하고 죄송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리아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님은 금목걸이를 선물로 가지고 오셨습니다. 대만에서는 처음 만나는 아이에게 ‘見面禮(지엔미엔 리)’라 하여, 紅包(홍바오, 빨간 봉투)에 돈을 넣거나 금반지나 금목걸이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렇게 논문을 쓰지 못해 제때 졸업하지 못한 저를 교수님은 전혀 탓하지 않으셨고, 제가 포기하지 않도록 조용히 기다려주셨습니다.


교수님은 서울 H대학교 중문과에서 2년간 교환교수로 계셨었기에 김치도 담그실 줄 아셨고, 한국 쇠고기가 맛있다며 대만으로 갈 때마다 사 가신다 하셨습니다.


어느 날은 이렇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향기야, 오늘 저녁 시간 괜찮니? 퇴근길에 우리 집에 오렴. 김치도 준비했으니 같이 식사하자.

잘 먹어야 기운이 나서 논문도 쓸 수 있는 거란다.

남편도 시간이 되면 같이 오고.”


그 자상한 지도 아래, 저는 늦게나마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남편도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무역 일을 시작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고요.


하지만 남편은 자신이 하고 싶었던 공부를 포기한 대신 저에게는 계속 공부하라며, 리아를 데리고 타이완에 남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여름 박사시험을 준비하던 책을 덮었습니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가슴 아팠지만, 남편과 함께 귀국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시험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남편에게 말했고, 그가 다시 생각해 보라고 했지만 “이미 결정했으니 시험 얘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말아 달라”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교환교수로 계시다가 가신 서울의 S대학교 이 교수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향기 씨는 왜 박사과정 진학을 안 하려고 해요?

이왕 시작한 공부인데, 계속해보는 게 어때요?”


이 교수님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제 진학 문제를 말씀하신 게 좀 의아스러웠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교수님께 전화를 드려 제가 시험에 응시하러 가게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던 거였습니다.


그래도 저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시험에 불참하는 사실을 지도교수님께는 직접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교수님,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시험에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니? 혹시 시부모님이나 남편이 향기 너가 공부 하는 것을 반대하니?”


“아닙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아요. 지금 상황은 제가 감당할 수 없어서요. 극복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문제입니다.”


그랬더니교수님은,사정하듯이말씀하셨습니다.


拜託你,求求你,參加考試好不好?你先參加考試以後再考慮好嗎?

부탁한다! 간곡히 부탁한다! 내일 입학시험에 응시하면 안 되겠니?

우선 시험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되겠니?


교수님의 그 간곡한 말씀은 제 마음을 더욱 죄스럽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교수님, 시험을 보게 되면 저는 반드시 합격해야 해요. 합격하면 포기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만약 떨어지면너무 화가 날 것 같아요. 그래서, 시험에 응시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공부할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중국대륙에 가서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리아와 단둘이 타이완에 남아 공부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나요?” 박사학위를 따려면 최소 5년은 걸릴 텐데,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하고,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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