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고와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면서 박사반 진학을 고민하고 있던 무렵,
타이완의 지도 교수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향기야, 잘 지내니?
이번에 내가 중국 티엔진에 있는 남개대학에서 개최하는 학술 세미나에 참석했었단다.
남개대학 중문과는 중국에서도 아주 유명하니까,
네가 그곳에서 박사를 했으면 좋겠어.
마침 학과장님이신 陣 교수님께 네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너를 박사생으로 받아주겠다고 하시더구나.
한번 陳 교수님에게 연락해 보렴.”
마침 옆에 있던 남편이 지도 교수님과의 통화 내용을 함께 들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바로 중국 지도를 펼쳐 천진을 찾았습니다.
“티엔진이 어디 있는 도시지?”
“베이징 가는 것보다 더 가깝네!”
“서울에서 비행기로 2시간도 안 되는 거리네.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보다도 더 가까운 거리잖아.”
우리는 새삼 중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웃었습니다.
“향기야, 잘됐어.
티엔진 가서 박사반 들어가.
내가 당신에게 내 노후를 투자할게.
사업하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우리 향기 운전기사로 취직해서 살면 되지.
앞으로 중국 쪽도 사업을 시작해야 하니까,
리아 데리고 먼저 들어가 있어.
나도 자주 중국을 다녀야 할 것 같아.
우리 리아는 지금부터 중국어 가르쳐서 중국통으로 키워야지.
이번에 티엔진에 한번 다녀와.”
신록이 온 세상을 감싸던 5월,
그가 건네준 중국 비자가 담긴 여권과 비행기 티켓, 그리고 달러를 들고
저는 처음으로 티엔진 땅을 밟았습니다.
우리들의 보랏빛 앞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저는 남개대학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박사반에 진학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찬란하게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 5월에…
자기 노후를 위해 나에게 투자하겠다고 하던 그가,
나와 다섯 살 리아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그렇게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나버렸습니다.
어이가 없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악몽을 꾸는 듯싶었습니다.
꿈이라면 얼른 깨어나고 싶었습니다.
숨조차 쉬기 힘들어 가슴을 움켜잡고 누워 있는데,
타이완의 석사 지도 교수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향기야! 너 공부 포기하지 마라.
너, 공부 포기하면 안 된다.
내가 이번에 다시 티엔진에 가서 네 박사 지도 교수인 천 교수님 만나고 왔단다.
너를 정말 부탁드린다고, 너를 기다려 달라고, 앞으로 너를 도와달라고…
같이 식사도 하고, 작은 선물도 하나 드리고 왔단다.
그러니까 향기야, 너 정말 공부 포기하면 안 된다.
절대로… 절대로…”
“교수님… 감사해요.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제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다시 생각할게요.
지금은 공부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너무 힘이 들어요.
감사해요…”
교수님 전화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나는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걱정해 주시는 큰언니 같은 교수님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포기하는지 마는지는,
지금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막혀 숨이 끊길 것 같아…
그저, 숨부터 쉬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