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당신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바로 이것이었구나
누구에게나 운명이라는 거, 그런 것은 있나 봅니다.
정말로 정리가 되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고, 납득이 되지 않을 때에는
그저 운명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게
그렇게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우리 마누라, 빨리 박사학위 받으라고. 그럼 나 자랑 좀 하게.”
그러던 사람이, 제가 박사반 2학기 때
그냥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모든 일은 다 벌려만 놓은 상황이었고,
모든 것은 다 진행형인 상태였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가 나에게 남겨준 것은 여섯 살 딸아이 하나,
그리고
나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것.
리아 동생을 낳고 싶다고 말했을 때,
“지금은 안 돼. 너 힘들어서 안 돼.”
내가 리아 동생을 가지고 싶다고 하자 일주일을 거실소파에서 자며 방에 들어오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 리아 동생 가지면 네가 힘들어. 공부 다 끝나고, 마흔 넘어서 낳자.
만약 학위 받고 리아 동생 안 낳아주면, 그땐 내가 이혼하자고 할거야.”
그렇게 겁으로 위로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친구 손에 이끌려 천안에 있는 절에 갔습니다.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든데,
절을 가든, 성당을 가든, 교회를 가든,
그 종교가 다름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디든지…
내 마음을 다잡을 수만 있다면,
위로받아 나를 추스릴 수만 있다면 되는 거지요.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못하겠습니까?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
스님을 뵈었습니다.
“대주 사주를 보면 지금쯤 대학 강단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뭐 하고 있는 거요?”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스님, 저는 하느라고… 하느라고 했는데요.
스님 말씀에 의하면 저더러 선생하라고 하시는데,
저 선생 하려면 더 공부해야 하거든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지금 저는우리 딸아이와 단둘이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고, 딸아이와 둘입니다.
스님, 저는 돈도 없습니다.
제가 남은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도와주는 이들이 있어서 하게 될 거요.”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애초에 리아 아빠하고 결혼하면, 대주가 혼자가 될 거라고 했다면 믿었겠소?”
“안 믿지요… 안 믿지요. “
스님은 나무라는 듯한 어조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 대주는 지금도 안 믿고 있소, 지금도… 기도 많이 드리세요.”
돌아오는 길 내내 차 안에서 친구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너 혹시 스님에게 이야기한 거 아니냐고…
나 이런 이유로 내가 그 사람 먼저 보냈다는 이유로…
이런 이야기, 못 믿겠다고.”
…
......
그래, 당신이 나에게 남겨줄 것은 이것이었구나.
아마 당신은 어쩌면
나와 리아 곁을 떠날 것을,
알고 있었나보구나.
그래서 그렇게 리아 동생도 못 갖게 하고,
그렇게 나에게 공부를 하라고 했구나.
그래, 그래.
당신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이것이었어.
그래, 이젠 나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리아를 위해서 공부 할게.
아빠 없는 리아이지만
세상의 편견과 선입견 속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랄 수 있게
내가 당신 몫까지 할게.
그래, 나 다시 공부 할게.
공부하러 다시 중국에 갈게.
시작한 거… 마치러,마치러…
당신 그렇게 공부하고 싶어 했었지.
내가 공부하면,
그게 당신에게 대리만족이 된다고 했었지.
그래.
시작한 거… 마무리하러 갈게.
그런데… 나 너무 막막해.
정말 너무 막막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