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그 시간만큼만, 그리고 멈출게)
1-23. 당신하고 산 시간만큼만 아파할게
(부제: 그 시간만큼만, 그리고 멈출게)
휴일이 되면 리아를 데리고 유일하게 갈 수 있었던 곳은 바로 교보문고였습니다. 만날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들에게 힘겨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쯤은 내가 휘청거리는 모습이 동정으로, 이해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두 번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남은 건 다 내 몫, 철저하게 나 혼자 다 삭여야 할 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이날, 아이를 데리고 어디를 갈 수도 없었습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나온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더 이상 초라한 자신을 마주하기 싫어 책을 좋아하는 리아와 함께 교보문고에 자주 갔습니다.
리아는 두세 시간 동안 책에 빠졌고, 저는 나를 강하게 해주는 책들을 읽으며 마음을 다졌습니다. 때로는 연애소설을 읽었습니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이야기 속에서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는 고통에도 공감이 갔습니다. 살아 있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고통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아주는 글귀에 밑줄을 그으며 또 하루를 버텼습니다.
그중 법정스님의 산에는 『산에는 꽃이 피네』를 많이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며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 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 쪽에 한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느껴지며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 나는 아직도 지나간 과거에 매달려 있었어.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있는 ‘이 시간’이야. 불안해하고 아파하는 건 과거와 미래 때문이지.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에만 집중하자.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
그렇게 읽고 또 읽고, 공감 가는 문장에는 줄을 그으며 다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KBS 라디오에서 근무하던 여성분이 사별 7년 후 펴낸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의 남편은 KBS PD였고, 해외 출장 중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KBS에서는 남편 대신 아내를 채용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서점 한가운데서… 누가 옆에 있는지도 모른 채 그 책을 읽으며 울었습니다.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었고, 그 사람의 한이 내 한이 되었습니다. 소리를 낼 수가 없어, 입을 막고 참으며 울었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묻고 싶었습니다.
7년이 지나면 지금의 이 고통이 담담해지나요?
견딜 만한가요?
살 만한가요?
잊혀나요?
나도 7년 뒤엔, 지금의 이 감정들을 담담히 쓸 수 있을까요?
아직은 너무 아파서, 마음에 담기도 벅찬데…
그래서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먼저 사별을 겪은 이들의 말 한마디에라도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나, 당신하고 산 시간… 7년이 안 되지.
그래 , 나도 당신하고 산 시간만큼만 아파할게. 그 시간만큼만. 그리고… 그리곤 잊고 싶어.
그 시간만큼만 나, 아파할게.
시간이 흘러, 7년이 지나면 지금 이 시간과 내일이라는 미래는 이미 모두 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내일, “아프지 않고 싶은 내일”마저도 결국은 과거가 될 거예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순간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