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그 새벽 빈소에서 말없이 소주 한 병을....

by 초록 향기

26. 그 새벽 빈소에서 말없이 소주 한 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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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과의 인연은 대학 입학 시절부터였습니다. 예비역으로 입학한 그는 조용하고 성실했으며, 책을 좋아하는 분이었습니다. 강의를 함께 듣는 일이 많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저는 언제나 그의 말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는 아는 것도 많았고, 좋은 문장이나 시구를 자주 인용했기에, 그의 말은 제게 잔잔한 울림을 주곤 했습니다.


그는 한때 학교를 다니면서 학교 앞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고, 그때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함께 식사하러 간 적도 있습니다. 졸업 후에는 따로 연락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일 년에 한 번쯤은 꼭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한 번은 대만 유학 중 여름방학에 귀국했을 때, 혼자 길을 걷고 있었는데 누군가 “향기야! 향기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습니다. 택시를 타고 가던 그가 저를 발견하고 급히 차를 세우고는 다급하게 달려와 부른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대만 유학생활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눴고, 결혼 전에도 둘이서 인사를 드리러 갔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는 D도시에서 입시학원을 크게 운영하고 있었고, 사업적으로도 열심히 확장을 하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중국 유학을 앞두고는, 가기 전에 꼭 한번 다녀가라고 연락이 와서 남편과 리아와 함께 인사를 드리러 간 적도 있었습니다.


중국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인사를 드리고 온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1997년 5월, 리아 아빠의 부고를 접한 그는 밤 1시까지 학원 수업을 마치고 곧장 택시를 타고 서울 장례식장으로 올라왔습니다.

새벽 3시가 넘은 장례식장은 고요하기만 했고, 조문객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는 한마디 말도 없이 혼자 앉아 기가 막힌 얼굴로 조용히, 소주 한 병을 천천히 다 마셨습니다.


“미안하다. 아침 수업이 있어서 이제 가야 해. 이렇게라도 와서 얼굴 보고 가고 싶었다.”


그는 다시 택시를 타고, 새벽 4시 무렵 장례식장을 떠났습니다.


그 후 저는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S생명에 다니며 세상과 사람을 다시 배우던 시기였습니다.

말 한마디에도 쉽게 상처받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시기였지요.


리아 아빠가 떠난 지 1년이 되어가던 어느 날,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향기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니? 뭐 하고 있니?”


“학원 강사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보험회사에 설계사로 다니고 있어요.”


제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는 버럭 화를 냈습니다.


“야, 이 녀석아. 네가 지금 보험회사 다닐 때냐?

당장 내려와. 나한테 왔다 가!”


그렇게 저는 다시 그를 찾아갔습니다.


“내가 향기 너를 생각해 봤는데, 하던 공부를 마치는 게 어떠니?

왜 다시 공부하러 안 가는 거야?”


저는 당시 처해 있던 상황과, 유산 상속 한정승인을 신청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경제적 형편을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랬구나, 그랬구나. 내가 직원이 많다 보니 한 달에도 애경사가 많은데, 대부분은 교무실장이 대신 가거든.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는, 이번엔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고3 수업을 마치고 나니 너무 피곤해서 운전할 수도 없고, 기차는 이미 끊어졌고… 그래서 택시를 대절해서 올라간 거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돈이라는 건 정말 중요하단다. 하지만 남에게 돈을 빌려줄 땐, 그 사람이 정말 절실할 때, 꼭 그 순간에 빌려주는 게 더 중요해. 나도 대학 졸업하고 학원을 시작할 때 돈이 없었는데, 친구가 700만 원을 빌려줬단다. 처음엔 작게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잘돼서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고, 학원이 커졌지. 그리고 나는 그 돈을 다 갚았어.


향기 너에게 10년 뒤의 1억 원은, 지금 천만 원보다 덜 중요할 수도 있어. 지금 너에게 필요한 건, 하던 공부를 마치는 일이야. 학위를 받고 와서 자리를 잡고 말고는 그다음 문제고, 지금은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 할 때야.”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네가 지금 돈이 없어서 하던 공부를 못 하고 있는 거라면, 내가 필요한 만큼 빌려줄게. 중국에 가서 논문 쓰고, 학위 받는 데까지 얼마나 필요한지 얘기해 봐. 나중에 천천히 갚아도 돼. 다행히 내가 그 정도 도와줄 여유는 있으니까. 내가 아는 향기는 꼭 필요한 만큼만 이야기할 거라고 믿어. 필요해도 더 달라고 하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


살다 보면 단돈 70만 원 때문에 나를 울게 만든 친구도 있고, 이렇게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고 도와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향기’라는 이름만으로 누군가는 저를 믿어주고, 그 믿음 하나로 삶의 벼랑 끝에 서 있던 저를 붙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그날 저는 뜻밖의 그의 제안이 너무 고마워서 또 눈물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돈을 제가 정말 받아도 되는 걸까?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 앞에서 저는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본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많이 고민하지 마.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 네가 공부를 완전히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하겠다면 몰라도, 다시 공부를 시작할 마음이라면, 이건 거절할 일이 아니야. 그냥 떠나는 게 맞아. 지금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보험회사가 아니라, 다시 공부하러 가는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저도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그래, 만약에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뒤 대학에 자리를 못 잡더라도, 이렇게 큰 학원이라면 국어 논술을 가르쳐서라도 빚을 갚으면 되지. 아니면 중국어 강사라도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가서 엄마와 상의해 보고 연락드릴게요.”


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 다가오는 9월 새 학기에 맞춰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하다가 만 공부를 마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지난 1년 동안의 시간이 한순간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고마움과 서러움이 또다시 눈물이 되어,

제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선 자꾸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도움을 받아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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