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마흔을 기다리는 간절한 시간들

by 초록 향기

1-30. 마흔을 기다리는 간절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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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

그렇게 70만 원 때문에 나를 아프게 하고,

내 기억에서 지우고 싶었던 친구도 있었지만

인천에 사는 한 친구는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1호선 전철을 타고 하염없이 가다 보면

동암역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골목,

그 안엔 사람 냄새나는 큰 시장이 있었고

그 친구의 작은 학원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 시장을 참 좋아했습니다.

물가도 서울보다 훨씬 저렴했고,

우리네 사는 모습이 보여 좋았습니다.


주말에도 마땅히 갈 데 없던 나는

그 친구가 쉬는 토요일이면,

지하철을 타고 그곳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 가까운 친구들은 만나서 술 마시거나 노래방 가기보다는

그저 식사하고, 차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런 친구들과의 시간은 제게는 위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같이 간 친구 종은이가 말했습니다.


“향기야, 우린 아직 인생이 시작되지 않은 거래.

여자는 마흔부터 인생이 새롭게 시작된대.

그땐 아이들도 좀 자라고,

자기가 진짜 뭘 원하는지도 알게 되고,

세상도 조금은 덜 무섭게 느껴지거든.

작은 일에는 쉽게 흔들리지도 않고 말이야.”


그리고는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아까 네가 잠깐 화장실을 갔을 때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했어.

지금은 네가 가장 힘들어 보이지만,

마흔이 넘고 10년쯤 지나면

우리 중에 네가 제일 근사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다고.


우리가 지금 너의 답답한 심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너에겐 우리가 가지지 못한 뭔가가 있어.

그게 너의 40대를 화려하게 만들어줄 거야.


그러니까 우리들의 화려한 마흔을 위해서 살아보자.

우리의 새로운 인생, 마흔을 위해서.”


그 친구 종은이가 한 말들이

가슴 깊이 콕 박혔습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래.

향기의 화려한 마흔을 위해서.

내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그래.

내 인생은 마흔부터 시작이야.

마흔이 넘으면 지금보다는 나을 거고,

마흔이 넘으면 나는 다시 사랑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모든 건 마흔부터야.’


그때부터 내 모든 비밀번호에 “40”이라는 숫자를 넣었습니다.

기대하고, 갈망하고, 붙잡고 싶었던 희망의 숫자.

그 숫자 하나로

나를 버티게 할 미래를 매일같이 되뇌었습니다.


‘향기야, 네 인생은 마흔부터 시작이야.

초년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우린 나이 들어서 고생하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어서 마흔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서, 어서 마흔이 되었으면…’


향기의 30대는

그렇게 마흔을 갈망했습니다.

향기의 30대는

그렇게 간절하게 마흔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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