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70만 원

by 초록 향기

1-29. 70만 원 때문에


사람은 어려움에 처하면 친구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친구, 순이는 아파트를 사느라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며, 계를 해서 제일 먼저 타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돈이 다 필요하지는 않으니, 자기와 반반 나누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전세를 살고 있었고, 돈이 필요하면 은행에서만 빌리는 줄 알았기 때문에, 이런 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리아 아빠에게 말을 하니 “그럼 본인이 500만 원을 쓸 테니 반 계좌만 하는 것도 괜찮겠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만 원짜리 계를 타서 순이와 제가 500만 원씩 나눠 타고, 그 뒤로 매달 저는 순이에게 곗돈을 보내게 됐습니다.


물론 저는 단 한 번도 계모임에 나간 적은 없었습니다.

순이는 대학교 4년 동안 같은 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였기 때문에, 친구를 믿고 친구가 하는 대로 따랐습니다.


그런데 계돈으로 500만 원을 받고 나서 며칠 뒤, 순이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거 내가 계를 타게 해 준 거니까, 사실상 500만 원을 너한테 빌려준 거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나한테 차용증을 써줬으면 해.”


당연히 써줘야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우리 집에서 만나 차용증을 써줬습니다.

처음 써보는 거라 잘 몰랐지만, 순이가 불러주는 대로 그대로 썼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향기야, 차용증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네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방 한 칸을 나한테 전전세로 준다는 부동산 계약서를 써주면 어떻겠니?”


나는 순간 당황했고, 약간 불쾌했지만 참고 말했습니다.

“차용증도 이미 썼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그러자 친구는,

“확실하게 해야지. 그래야 나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아.”

그렇게 말했습니다.


기분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순이가 또 전화를 해왔습니다.


“향기야, 내가 알아보니 우리 둘이 그렇게 전전세로 계약서를 쓰는 건 법적으로 효력이 없대.

네가 세입자이기 때문에 집주인 앞에서, 집주인 동의 하에 네가 나한테 방 한 칸을 500만 원에 전전세로 준다는 계약서를 써야 해.”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불쾌하고 기분이 상했지만 참고 말했습니다.

“순이야, 네가 뭘 걱정하는지는 알겠지만, 나는 주인한테까지 찾아가서 전전세를 쓰면서까지 이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아.

그냥 이 돈 500만 원 다 돌려줄게. 우리 없던 일로 하자. 너 계좌번호 불러줘.”


그러자 순이는 당황해하더니,

“뭐 그럼 할 수 없지. 그냥 차용증만 받는 걸로 하자.”

하며 물러선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된 그 순이는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남은 곗돈 약 70만 원을 빨리 갚으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라면 돈거래는 정확해야 한다며 아침저녁으로 곗돈 독촉을 했습니다.


“너는 남편 죽고 나서 보험금도 못 탔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렇게 누워만 있으면 어떡하니?”

“얼른 일어나서 내 빚부터 갚아야 하는 거 아니니?”

“네가 못 갚으면, 네 동생이라도 대신 갚아야 하는 거 아니야?”


막무가내였습니다.

제 기억에 아마도 마지막 3개월 정도의 곗돈이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내가 공주에 집 지으려고 땅을 사서 돈이 없어.

얼마 안 있으면 둘째 아이를 낳아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다.

그러니까 수술비 하게 빨리 돈 좀 보내줘.”


그때는 5월이었고, 그 친구의 둘째 아이 출산 예정일은 8월이었습니다.


순이야 미안해 나 지금 아무런 생각이 없고 정신이 너무 없어. 해결할 게 너무 많아.

조금만, 나 좀 기다려주면 내가 정리할게.”


하지만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당장 갚으라고만 했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70만 원을 다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돈이 70만 원이 아니라 700만 원이었다면,

그 애는 신문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보다 더 독하고 인정 없는 사람처럼 날 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친구 유진이는 달랐습니다.

조문조차 오지 못한 친구들,

내가 10년 동안 연락 한 번 못 했던 친구들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나의 상황을 알리고 부조금을 걷었습니다.


“향기야, 너 그렇게 집에 있지 말고 나 좀 만나자.

우리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그렇게 힘들게 집에만 있으면 안 돼.

그러니까 제발 좀 나오렴.”


거절도 한두 번이지.

미안한 마음에, 아프고 힘든 몸과 마음을 이끌고 유진이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향기야,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래도 보태서 써.

더 주고 싶은데 너도 알다시피 우리 다 그냥 살림하는 친구들이라서 더 많이 못 줘서 미안해.”


하얀 봉투 속에는

열 명의 친구가 넣어준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친구라고 해서 다 같은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70만 원을 당장 갚으라며 나의 슬픔은 아랑곳없이 인정사정없이 몰아세운 친구가 있었고,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고 싶어 했던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더 마음이 아팠던 건,

앞으로 그 친구를 영원히 보지 않겠다고 결심한 나 자신이었습니다.

그게 더 슬픈 일이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허망하고,

지끄락 짜그락 거리는 사람 사는 소리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시간 속에서

죽음 앞에서는 용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죽일 놈이라고 욕할 필요도 없고,

그저 살아 있다는 게 이런 거구나,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건 내가 살아 있기 때문이구나

그렇게 냉소적인 시선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들 속에서도

사람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일과

내 마음이 용서하지 못하는 일은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내가 아플 때 받은 서러움은 더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나를 좀 기다려줬으면…

나를 좀 위로해 줬으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만의 욕심이었습니다.

남은 건 내 몫이고,

남은 감정도 다 내가 감당해야 할 아픔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저하게,

내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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