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1년만 지나면 돼, 1년만...

by 초록 향기


1-31. 1년만 지나면 돼, 1년만

제게는 늘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전화를 해도, 뵈어도

용기를 주시는 분.

저를 언제나 지지해 주시는 분.

그래서 그분을 뵙고 나면

더 용기가 나고, 희망이 생기고…


저에겐 그런 교수님이 한 분 계십니다.


저를 가르치셨던 분도 아니고,

같은 학교에 계셨던 분도 아닙니다.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분입니다.


대구의 K대학에 계시는 그 교수님을 처음 뵌 것은

1990년 여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였습니다.


저는 결혼하기 전, 석사 과정 중이었고

그 교수님은 마흔이 갓 넘은 나이셨습니다.


그해 여름방학,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귀국했지만

저는 논문을 준비하느라 기숙사에 남아 공부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교수님이 출장을 오시는 남편분을 따라오셨다가

교류할 수 있는 대학을 직접 알아보시려

제가 다니던 학교를 찾으셨습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라 건물마다 문이 잠겨 있었고,

물어볼 사람도 없던 교수님은 결국 기숙사까지 오시게 되었습니다.


중국어를 못하시는 교수님을 보고,

한국인인 걸 알게 된 사감 선생님이

저를 사감실로 내려오라고 방송을 하셨습니다.


핸드폰도 없었고, 방 안에 전화도 없던 시절

누군가를 찾으려면 방송을 해야 했어요.

기숙사생들은 모두 그 방송을 듣고 알게 되는 구조였지요.


“1008호 향기는 지금 당장 사무실로 내려오세요.”

“1008호 향기는 지금 당장 사무실로 내려오세요.”


방송은 항상 두 번 반복되었고,

그날도 10층 기숙사 전체에 제 이름이 두 번 크게 울려 퍼졌습니다.


그렇게 방송을 듣고 내려가 보니,

낯선 한국인 교수님이 와 계셨습니다.

그렇게 교수님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대만과의 문화 교류와 공연 활동을 해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 인연으로 우리는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고,

직접 뵙는 일은 드물었지만

가끔 전화로 안부를 나누었습니다.

늘 큰언니 같은 마음으로 저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제가 석사를 마치고 한국에 귀국하던 해

1995년에 교수님 남편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어렸고,

세상 경험도 부족한 나이였기에

뭐라고 위로의 말을 드릴 수조차 없었습니다.


불과 2년 뒤,

제가 겪게 될 아픔을 그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 교수님이 제 소식을 듣고

대구에서 서울까지 달려오셨습니다.


“교수님… 얼마나 지나야 제 마음이, 제 가슴이 덜 아플까요?

교수님은 어떠셨어요?

얼마나 지나야 이 아픈 가슴이 괜찮던가요?”


제가 묻자, 교수님은 저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1년만 참아요. 1년만…

1년만 지나면,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예요.

그러니까, 1년만 견뎌요.”


그래서 저는

1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1년만 참자.

1년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셨으니,

1년만 견디다.


그렇게 그가 떠난지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고,,,


그 말 한마디에 온 마음을 잡고

‘1년만 견뎌보자’면서,

‘어서 마흔이 되자’면서

그 한 해를 버텼습니다.


그러나

그가 떠난 봄이 다시 왔는데도

내 마음은 늘 허했습니다.


1년만 지나면 된다더니…

1년이 지났어도,

가슴은 여전히 구멍이 뚫린 듯

찬바람이 숭숭 들어와 시리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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