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살면서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면

by 초록 향기

32. 살면서 누군가의 가슴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면

사춘기 학창 시절은 누구에게나 좋은 추억들이 있습니다.

나 혼자 짝사랑했다거나, 상대가 나를 좋아했다거나,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나서 불현듯 생각이 나면,

“지금은 어디선가 그 아이도 아이 아빠가 되어 늙어가겠지?”

하고 혼자서 미소 한 번 지어보겠지요.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닌 저는 중2 겨울방학에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말이 학원이지 지금 같은 학원이 아니라,

허름한 창고 같은 빈집 방 한 칸에 연탄난로를 피워 놓고

열 명 남짓한 학생들을 모아 수업을 하는 작은 과외방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 당시 시골에서 학원은 전에는 없었던 낯선 공간이었고,

서울에서 대학생이 방학 때 내려와 과외라도 하면

그 존재 자체가 우리에겐 한없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때 함께 공부하던 남자아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키도 작고,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얼굴이 붉어지던 아이.

수업이 끝나고 신발을 신으려고 하면 내

뒤통수에 대고 조심스레 말하곤 했습니다.


“야, 이따가 저녁에 또 와서 공부하자.

짤짤이 (당시 남학생들이 하던 동전놀음?을 그렇게 말했습니다)해서 돈 따면 뻥과자 사줄게.

아니면 고구마 구워줄게”


그렇게 수줍은 고백을 하던 그 아이는,

시험만 보면 영어든 수학이든 백 점을 맞고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를 만나면 지난 날 그 아이 앞에서

당당하고 자신 있었던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 아이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했었던 시간들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지금 그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그는 C도시로, 저는 D도시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연합고사를 마치고 돌아온 날 밤,

그 아이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말하며 조약돌 하나를 내밀던 그 아이에게

나는 그 조약돌을 집어던지며 말했습니다.


“ 이거 너무 유치하다.

좋은 고등학교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


그로부터 2년 뒤, 크리스마스 자정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나를

그 아이는 성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향기야, 나,

내가 심수봉이었다면, 너한테 노래라도 지어줬을 거야.

너 자취방 주소 좀 알려줘.

친구선미한테 주소 물어서 네 자취방 찾아 갔었는데 못찾고 왔어.

그리고 나 나중에 미국에 갈 거야.

그때 너랑 함께 가고 싶어.

같이 가자.”


나는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 너 아직 어려서 그런데

초등학교 동창 중에, 아니면 네가 지금까지 아는 여자애 중에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게 나인 것 같은데 착각이야.

네가 앞으로 좋은 대학에 가게 되면 그 때는 더 예쁘고 멋진 여자가 많아.

그때 가서 후회하지 말고,

나중에 우리 만나게 되면 부끄러운 얘기는 하지 말자.

우리가 이런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고.”


그렇게 그 아이를 매몰차게 거절했었던

그렇게 당당했던 향기의 그 모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 아이는 결국 재수 끝에 S대에 합격했고,

입학 전 그 겨울에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던 롯데리아 매장까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안으로 숨어버렸습니다.

나 오늘 근무안한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내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갔습니다.


2년이 다시 지나

대학 3학년 겨울방학에 시골에 갔을 때

다방에서 다시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향기야 우리 집 수원으로 이사 간다. 아마 분식집 할 거야.

연락 줘.

아, 그리고 나 여자친구 생겼어.”


그는 수줍은 듯이 여자친구의 이름과 번호가 적힌 수첩을 보여줬습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그래? 축하해.”


그가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 순간, 서운함보다는

가슴에 자리잡고 있던 돌덩이 하나가 툭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만큼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아이의 마음이 많이 부담이 되었었나 봅니다.

그 아이의 마지막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근데, 그 여자친구가 너하고 꼭 닮았어.”


대학 4학년 봄, 그에게서 학보와 함께 편지 한 통이 왔습니다.


“향기야,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행복해했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파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

건강하렴.”


그것이 그의 마지막 편지였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그 아이가 보고 싶은 걸까요?

아마도 어린 시절의 그 아이 앞에서

자신 있었던 내 모습을 찾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를 아프게 했던 기억이

내 안에서 벌처럼 되살아나서일지도요.


그래서 그의 모교 과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전화를 받은 사람이 그 아이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시골 친구라고 연락처를 알고 싶다고 하자 담당자가 말했습니다.


“연락처 드릴게요.

작년에 박사학위 마치고 미국으로 포닥 갔어요.

전화번호 0081-000-0000입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아, 너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그때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눈 내리던 그 크리스마스 밤에

미국 가고 싶다고 나에게 했던 말, 빈말이 아니었구나.

너는 일찍부터 너의 인생을 계획해서

열심히 너의 꿈을 이루려고 살았구나.


나는 뭐지?

나는 뭐지...


그래 그래, 나도 남은 공부할게.

그래서 우리 어느 날 다시,

생각지 않은 어느 날

어느 대학의 캠퍼스에서 마주칠 때


“어, 향기 너 여기 웬일이냐?”라고 네가 물어오면

“나 이 학교에서 강의하는데, 너는?”

그렇게 대답할게.


그래, 그런 날이 올 거야.

그런 날이 올 거야.


그날이 되면 향기가 더 이상 지금의 초라한 모습이 아니라

어린 시절 너 앞에서 당당했었던

그런 모습이 다시 되어 있을 거야.


그때면 내가 너한테 말할게.


그땐 정말 미안했어.

나 때문에 너 많이 아팠었니?

그런데 사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겠지?

다 지난 추억이라도 웃으며 말할 수 있을 거야.


살면서 우리는

내가 원하지 않았어도

상대에게 상처를 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해도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난날 내가 누구가를 마음 아프게 한 적이 있다면

누가 나로 인해서 마음이 아팠었다면

그걸 내가 지금 다 받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7년 6월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러 향기 생각


그냥 오랜만에 왔으니까,

멀리 시골에서 2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왔으니까,

차 한 잔 마시고 밥 한 번 먹고,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냈어도 됐을 텐데…


스므살의 나는 만나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 주지도 못하면서 만나면 큰일 나는 줄 알았습니다


왜 그때는 그렇게 숨어버렸을까?

왜 그렇게 그냥 보냈어야 했을까?

그 일이 나중에, 내가 더 나이를 먹고 나서는

내내 후회로 남았습니다.


그것이 그 친구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1. 1년만 지나면 돼, 1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