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엄마 각서 쓰세요.

by 초록 향기


6 엄마! 각서 쓰세요!

부제: “엄마는 절대 시집 안 갈 거예요”


그렇게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그 봄에 양라오스에게 많은 용기와 격려를 받은 저는 참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평일에는 학교와 도서관, 그리고 시장 가는 일.

일요일 오전에는 미사만 참석하는 아주 단순한 생활이었습니다.

손 빨래 하는 것도 운동이라 생각하면서

저녁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청소하고, 맨손체조를 하는 것이 규칙적인 일과가 되었지요.


논문을 쓴다는 건 연애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애할 때 오로지 그 사람만 생각하듯,

논문도 다른 일을 병행하면 안 되는구나…

그렇게 책과 연애하는 마음으로 몰입했습니다.


쉬지 않고 얼른 논문을 써서 일찍 졸업할 생각으로

여름방학에는 엄마와 2학년이 된 리아를 천진으로 오시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리아를 데리고 26시간이나 배를 타고 천진에 오셨습니다.

오랜 시간 배를 타는 것을 귀찮아하시지 않고 여행으로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엄마가 오시고 나서 날이 너무 더워 밖에 나가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리아와 엄마가 함께 있는 시간이 혼자 있는 시간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엄마가 오시니 반찬도 다양하게 만들어 주시고,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반찬거리도 사 오게 되고,

함께 밥을 먹으면서

비로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아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시집 안 간다고 각서 쓰세요.”


깜짝 놀라서 리아를 바라보았더니,

“엄마가 시집을 가면 나는 그 집에서 천덕꾸러기가 돼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물으니,

그냥 무조건 싫다면서 각서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왜 리아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을까, 엄마에게 여쭤봤더니

엄마는 혹시 내가 너무 마음을 닫고 살까 봐 그렇게 이야기하신 거라고 하네요.


“ 리아야 엄마는 시집을 가야 한다, 엄마가 시집가면 너는 할머니랑 살아야 한다”는 말을

일부러 하셨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어린 리아에게 그런 말을 하시는 엄마에게 너무 화가 났지만,

이내 혼자된 딸을 바라보는 엄마 심정은 또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생각이 들어

제가 불효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결코 제가 원한 일이 아닌데,

결국은 저의 사별로 저 때문에 온 가족이 이런 멍을 안고 살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사위 잘 얻었다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다가

어느 날 기운 없이 초라해졌을 우리 엄마,

그리고 통곡하며 울부짖던 작은 오빠의 모습도 떠올랐습니다.


“야 이 새끼야, 이 병신 같은 새끼야.

이렇게 좋은 세상에 너 왜 죽냐.

나 너 정말 좋아했다.

매제가 아니라 내 친동생 같았다고.

근데 너 왜 벌써 죽냐고…”


나는 리아의 손을 꼭 잡고

손바닥 위에 ‘각서’라고 썼습니다.

리아가 말하는 대로 받아 적었습니다.


한 손으로는 썼다가 지우는 시늉을 하며,

다른 손에는

‘리아 엄마는 리아를 두고 절대로 시집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도장 찍는 시늉을 하자,

글자 없는 손바닥을 보면서 리아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시집...’

그 단어는 왜 나에게 이렇게 낯설고 멀게 느껴졌을까?

시집이라니?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말처럼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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