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미혼모인 줄 알았어요
우리 가족 중 남편과 가장 정이 든 사람은 아마도 제 여동생, 즉 처제였을 것입니다.
타이완에서 대학을 다닌 여동생은 저희와 함께 거주한 적이 있습니다.
한여름, 에어컨이 저희 방에만 하나 있었기에 셋이 함께 같은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유난히 형부와 외모가 닮은 편이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종종 친동생인 줄 알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남편의 장례식 때 울고 있는 제 동생을 보고, 남편의 친여동생으로 오해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남편의 친구에게서 동생을 자기 후배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다는 연락이 온 적도 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동생은 타이완의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지금은 학부 유학생도 많지만, 80년대 후반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 후 해외로 대학을 가는 일은 드물었기에, 대부분 유학생은 석·박사 과정을 밟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하나뿐인 여동생이기에 저는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런 제 뜻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도와준 사람도 남편이었습니다.
처음 타이완에 도착한 동생은 어학연수를 하며 대학 입학을 준비했습니다.
그 시기 한국에서 온 학생들과 어울리는 일이 있었고, 간혹 밤늦게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무리 늦더라도 외박은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확고했습니다.
“여기서는 우리가 보호자니까 처제는 우리의 말을 들어야 해.
혹시라도 나쁜 친구를 만나거나 사고가 나면 장모님께 면목이 없어.”
그의 이런 말에 저는 동생에게 그냥 “잘 놀다 와.” 하고 자고 있었지만,
그 사람은 새벽 1시, 2시가 되어도 처제가 들어올 때까지 안 자고 기다렸습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전화를 해서
“선배님, 저희가 이따가 집까지 데려다드릴게요. 기다리지 말고 주무세요.”라고 해도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요 늦어도 괜찮으니까 다 마치고 서로 헤어질 때 전화하면 되요. 그럼 그때 내가 데리러 나갈게요”
그렇게 몇 차례 남편이 밤중에 나가서 동생을 데리고 오자,
처제의 친구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밤에 놀려면 형부 허락을 받아야 돼.”
한번은 여름방학에 일이 있어 제가 한국에 혼자 잠시 들어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생이 밤에 친구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나 다리를 다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언니인 제가 알면 크게 화낼까 봐 둘이 비밀로 했고,
그 여름, 다리를 다친 처제에게 밥을 해다 준 사람 역시 형부였습니다.
남편은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 처제는 예뻐요. 집사람이랑 비교하면 안 돼요.”
그리고는 슬쩍 제 눈치를 보며 장난스럽게 처제 자랑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형부가 살아 있을 때, 동생은 동네 전체의 처제가 되었습니다.
남편 친구들, 후배들 모두 “처제 님” 혹은 “처제씨”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찍 세상을 떠날 걸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요?
리아를 나 대신 잠시 돌봐달라고 미리 부탁하듯, 처제에게 진심으로 잘해주었습니다.
형부를 누구보다 의지하고, 모든 일을 상의하던 동생에게
그의 부재는 단순한 이별이 아닌,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습니다.
형부가 죽은 후, 동생은 바로 다니던 회사를 옮겼습니다.
제가 중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동생은 리아에게 엄마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주말이면 목욕탕에 데려가거나 공연을 보러 가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며
젊은 감각으로 리아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해주었습니다.
리아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늘 이모의 회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아직 핸드폰이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회사 전화를 자주 이용했는데,
리아의 굵은 목소리로 “우리 이모 바꿔 주세요.” 하면
직원들은 “남자아이인가?” 하고 묻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 리아의 여권과 비자 문제로 여행사와 통화를 하던 중
동생이 “엄마는 지금 중국에 있고, 아이는 엄마 여권에 동반으로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통화 내용을 사무실 직원들이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날, 동생회사의 사장님이 퇴근길에 태워주겠다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고 주임 우리가 고주임을 오해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고 주임이 미혼모인 줄 알았어요.
사연이 있어서 애를 본인 호적에 못 올리고, 이모라고 부르라고 하고 키우는 줄 알았어요.”
직장 동료들은 동생이 리아를 키우는 모습을 보며
“엄마 이상으로 챙긴다”고 느꼈던 것이겠지요.
그날 이후, 회사 사람들은 동생을 시집보내야 한다면서 선자리도 알아봐주고,
애인 없느냐고 물어보면서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이처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과 잣대로 타인을 판단하고 단정짓고,
그게 사실인 양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내 속을, 내 처지를 다 보일 수는 없습니다.
그저 나 혼자 속을 태우고,
나 혼자 끙끙 앓으며,
나 혼자 인내해야 하는 시간들이 더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