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이가...

by 초록 향기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이가 있었다면

그날 나는 그렇게 허한 가슴으로 헤매지는 않았을 것이다"



2-7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이가...

겨울이 올 무렵,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한국에 갔습니다.

비행기를 타면 항공료가 비싸니, 학생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저렴한 배편을 이용했지요.


여럿이 함께 타는 배는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혼자 타는 배는 쓸쓸함을 줍니다.

가장 대견한 사람은 혼자서 여행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요.


배 안에서 먹을 과일과 과자 등을 준비하고,

천진 탕구항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배를 타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합니다.

늦어도 오전 7시에는 집을 나서야 탕구항에 8시가 넘어서 도착할 수 있습니다.


아직 학기 중이라서 학생들은 많지 않았고,

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따이공’(보따리 무역상)들이었습니다.

여러 번 배를 타다 보면 여행객과 그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됩니다.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중국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중국에 사업하려고 갔다가 조선족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람,

뭔가 기대를 품고 중국을 한 번 가보려는 사람,

조선족 여자를 만나 결혼하러 들어가는 사람,

한국에서 몇 년간 무당집에서 돈을 벌고 귀국하는 조선족인 하얼빈 출신의 전직 중학교 교사 등등,,,


정말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탕구에서 인천까지는 뱃길로 26시간이지만,

아침에 집에서 출발해 도착하면 다음 날 오후 4시가 넘으니

거의 이틀이 걸리는 셈입니다.


후에 진천호는 객실이 나뉘어 있어 침대칸도 있고 다다미방도 있어 개인 공간이 확보되지만,

그 당시 가장 싼 이코노미 좌석은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큰 바닥방에서

각자 자리를 만들어 바닥에 모여 자는 형태였습니다.


밤이 되면 책을 덮고 혼자서 갑판에 나가봅니다.

깜깜한 바다 위, 배는 쉬지 않고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데, 이 배는 어떻게 이토록 잘도 가는 걸까?’

앞이 보이지 않는 까만 밤바다는 마치 내 앞날처럼 어둡기만 했습니다.

‘나, 그냥 이대로 바다에 뛰어들면 죽을까?’

‘아무도 내가 죽은 줄 모르겠지. 내일 날이 밝으면 바다 위에 내 시체가 떠오를까?’

‘아니, 고기밥이 되어 시체도 찾지 못할지도 몰라.’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중국 대학 박사 유학 중, 남편 죽음을 못 이겨 남편 따라간 순애보.”

그런 기사로 신문에 날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얼굴, 리아… 내 딸 리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밤바다가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소리 없이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흔들리는 배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다시 잠을 청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 밝아 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배는 인천항에 도착합니다.


항구에 도착하기 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전화를 합니다.


“집에서 출발했어? 나도 다 도착했어. 지금 서해 앞바다야.”

“그래도 한두 시간은 더 지나야 나갈걸. 그래, 좀 있다 보자.”


그런 통화를 들을 때면, 나도 전화를 하고 싶어 집니다.

‘자기, 어디야?’

‘응,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해.’

‘그래, 자기 차 타고 빨리 와. 보고 싶어.’


그렇게 어리광 부리듯이, 빨리 마중 나오라고 말하고 싶은 단 한 사람.

그 많은 사람들 중 단 한 사람, 내 남자.

그의 모습이 보이면 손을 흔들며 나의 존재를 확인해 주던 때가 나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랬었는데...’


그런 쓸쓸한 마음으로 입국장을 지납니다.

그가 없을 걸 알면서도, 나도 누군가를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봅니다.

모두 낯선 얼굴들입니다.


맞은편 한 남자가 환하게 나를 보며 손을 흔듭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니, 내 뒤의 여자를 향한 미소였습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려 서둘러 짐을 밀고 나옵니다.


인천항 앞에는 줄지어 선 택시 기사들이 다가옵니다.

“서울요? 서울! 서울 안 가세요?”

“남편이 마중 나오기로 했어요. 갑자기 회사에 일이 생겨서 못 나오게 됐어요.

그냥 가까운 전철역까지만 태워다 주세요. 시간도 많고 지금은 차도 많이 막히니까요.”


묻지도 않은 남편 이야기를 꺼냅니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되뇝니다.


‘정말로 그가 일이 생겨서 마중 나오지 못하는 것일까?

정말이라면 좋겠다.

진짜 그랬다면, 나 절대 화 안 낼 텐데.

제발, 정말 그런 이유였으면 좋겠다.’


무언가가 가슴에서 욱 치밀어 오릅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기사님이 볼까 얼른 고개를 돌려 창밖을 봅니다.


평범한 부부들의 평범한 대화,

평범한 안부 전화들이

우리 사별 가족에게는 한이 되고 가슴이 맺힙니다.


“자기 어디야?”

“응, 그래. 일찍 들어와. 오늘은 술 마시지 말고.”

“내일 새벽에 나가야 한다며?”

“알았어. 끊어.”


“당신, 나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먼저 먹어요.

나 오늘 좀 늦어. 회식이 있어.

너무 늦으면 불 켜놓고 먼저 자요. 알았지? 알았다고, 끊어요.”


이런 말들이,

이런 평범한 말들이

이토록 가슴을 아프게 하고,

이토록 말하고 싶고 듣고 싶게 만들 줄이야…


‘아니,

오늘은 술을 많이 마셔도,

심지어 오늘 밤 외박을 하고 돌아온다 해도,

그래도 괜찮아.


제발 돌아오기만 해 줘.

오기만 해 준다면,

언제가 되었든,

나 기다릴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는 언제 온다는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외로움 # 기다림# 그리움 # 겨울 # 허전함#

#밤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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