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지금까지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돈만 있는 우매한 농민과 같았단다.
추운 겨울 아침, 길가에 놓인 탁자 앞에 앉아
논문 제목을 정하고 개요를 쓰면서 한없이 부족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생각의 꼬리를 물고 그래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처럼 그렇게 매일 책을 봐도 여전히 답답하고 갈증이 났지요.
부족한 공부도 할 겸 논문 관련 자료를 보는데 도와주실 한 선생님을 소개받았습니다.
60이 가까워 오는 陽老師(양라오스, ‘노사’, 즉 라오스는 중국어로 선생님이라는 뜻입니다)와의 만남은 제가 논문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다잡는 데도 큰 힘이 되어 주신 분이셨습니다.
양라오스는 북경대학을 졸업하시고 남개대학 고적연구소에서 근무하시다가 마침 퇴직하신 분이셨습니다.
비록 나이는 드셨지만, 여자로서 북경대를 공부하신 최고의 인텔리라고 할 수 있겠지요.
남편은 천진대학 역사학과 교수님이셨는데, 그 당시 5년 전에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모든 문제를 선생님이 감당하고 계셨습니다.
하나 있는 아들은 유학을 보낸 상태였기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우신 상황에서, 시간이 되는 대로 한국인들을 상대로 중국어 과외를 많이 하고 계셨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오전에 두 시간씩 자료를 보면서 토론도 하고, 모르는 부분은 가르침도 받았습니다.
중국에 오면 사람들이 자기의 물병을 가지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양라오스뿐 아니라 학생들도 자기가 마실 물을 물병에 담아 항상 가지고 다닙니다.
샹라오스도 항상 물병과 컵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아침마다 그걸 챙겨 오는 게 번거로우실 것 같아 나가서 제 컵과 선생님 컵을 하나씩 샀습니다.
“이 컵은 선생님 물 컵이니 앞으로 컵 챙기지 마시고 그냥 오세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씩 웃으시더군요.
전기가 나가서 제대로 잠을 못 자거나 아침에 너무 추울 때는 나가서 ‘牛肉拉麵’(니우러우라미엔, 소고기 국수)을 사 먹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침, 바람막이 하나 없이 허름한 탁자 몇 개를 길에 놓고 장사를 하는데,
저도 그곳에 앉아 쇠고기 국물에 달걀 하나, 약간의 시금치나 야채를 넣은 국수를 사 먹는 것도 참 별미였습니다.
달걀을 하나 더 추가하면 국수 한 그릇에 2.0위안(한화 약 300원)이었지요.
한국 식당에서 짜장면을 25위안에 팔고 있는 걸 생각하면 아주 저렴한 편이라 가끔 사 먹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공부를 하다가 니우러우라미엔을 사 먹었다고 말씀드리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위생상 더럽지 않으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저는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 사실 길에서 먹는 게 더럽긴 더럽워요.
그런데 그게 팔팔 끓인 물에 면을 삶아서 주는 거라서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만 먹는 게 아니라 중국 사람들도 다 사 먹잖아요. 다들 아무 탈 없잖아요.
그리고 정말 맛있어요.”
그러자 제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나도 길에서는 잘 안 사 먹는단다. 첫째, 위생상 불결하기 때문이지.
하지만 너희 한국 사람들은 한국 식당에 가서 비싼 국수를 사 먹지 않니?”
“선생님, 저는 한국식당 너무 비싸서 못 가요.
저는 가난한 유학생이거든요. 그리고 한국 식당만 다니면서 한국 음식만 먹다가 돌아가면
중국 음식에 대해서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저는 중국을 느끼고 싶어요. 그리고 직접 중국 사람들 같이 생활을 체험해보고 싶어요.
그래야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도 학생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아지지요.
그런데,사실 가끔 길도 그렇고 환경이 더럽긴 정말 더럽다는 생각은 많이 들어요.”
선생님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향기야, 내가 지금까지 한국 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인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점은,
한국인들은 돈만 있는 우매한 농민 같다는 것이었다.
가난하다고 중국인들을 무시하면서도,
정작 한국인들은 먹는 데 돈을 쓸 때에는 인민폐 수백 위안은 우습게 쓰다가도
중국인과의 거래에서는 몇십 원, 몇 위안 아까워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그런데 오늘 네 말을 듣고 보니, 모든 한국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잠시 후, 선생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향기야, 왜 가끔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죽음을 당하는지 이해가 가니?
그건 돈을 제대로 쓰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자기 지갑 속의 돈을 자랑하면서,
그 지갑을 보는 이의 빈 주머니를 조롱하기 때문이지.
나는 정말 네가 중국을 제대로 보고 느껴서 좋은 선생님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더 이상 중국에 있는 한국인들이
돈만 있는 우매한 농민이라는 생각을 바꾸어 보마.”
선생님의 그 칭찬이 오히려 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만큼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돈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일부 몰지각한 한국사람들은
술집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달에 얼마 벌어요?” 하고 묻곤 한다지요.
“1000위안요.”
“그거 한국 돈으로 얼마 안 돼요. 십 몇만 원 밖에 안 되잖아요.”
그렇게 단순한 숫자로 사람을 비교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답니다.
그들은 삶의 가치와 무게를 환율표 안에 가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나 봅니다.
양라오스의 그 말씀,
“돈만 있는 우매한 농민 같은 한국인.”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제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