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그 해 겨울

by 초록 향기

2-2 그 겨울은 너무도 추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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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어붙은 시간을 건너며,

난방이 들어오지 않던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의 추운 날들,

칙칙한 회색빛 도시 천진의 겨울,

손끝이 시리고 마음마저 얼어붙은 날들 속에서

나는 그저 살아내야만 했다.

전기조차 끊기던 밤,

책상 앞에 앉아

뜨거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시린 손을 녹이면서

대답 없는 그에게 밤새 혼잣말을 하며 버티던 그 긴 겨울밤.

그해 겨울은

몸도 마음도 너무 추웠다.



9월과 10월은 천진의 날씨가 좋습니다.

한국 가을처럼 파란 하늘을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춥지 않고 좋은 날들입니다.


그 가을을 지나 11월이 오면서, 집이 너무 추웠습니다.

시멘트 바닥이라서 이사 들어올 때 장판을 사다가 깔아 냉기가 올라오는 것을 차단하긴 했지만, 날이 추워지면서 실내가 너무 추워졌습니다.


특히 벽에 있는 라디에이터는 11월 중순이 되어야 난방이 들어오는데,

그래서 난방이 오기 전 10월 말에서 11월 중순까지는 실외보다 실내가 더 춥게 느껴졌습니다.


11월 중순, 난방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다 찬이 엄마가 쓰라고 준 작은 전기난로를 의지삼아 추위를 녹였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돈을 곶감 빼먹듯이 써야 하니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아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하니 다른 필요한 가구나 이런 걸 살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집에 큰 가구나 다른 살림이 없이 텅 비어 있는 데다가,

덩그러니 작은 책상 하나, 그리고 접이식 침대 하나만 있는 상황이니 더 휑하고 추운 것 같았습니다.


중국에서 겨울 난방은 중앙난방으로, 1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약 4개월 정도 지속되며

대부분 벽에 라디에이터가 부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12시가 넘어서 라디에이터를 만지면 온기가 없었습니다.


조끼를 입고 두툼한 실내화를 신고 앉아 책을 보다 보면,

어느새 손이 시리고 코가 시렸습니다.

창문의 이음새가 엉성해서 바람이 불 때마다 겨울 찬바람이 들어왔습니다.


찬이 엄마가 빌려준 작은 전기난로를 책상 밑에 켜놓고

그렇게 책을 보는 밤은 그래도 나았습니다.


추위도 추위지만,

밤이 되면 고요한 방 안에 위층 발소리가 쿵쿵 울렸습니다.

슬리퍼를 끄는 소리, 침대에서 일어나 뚜벅뚜벅 걷는 소리, 화장실로 가는 소리, 물을 내리는 소리까지.

저는 원하지 않아도 위층 사람의 일상을 그대로 듣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이면, 위층의 코 고는 소리가 벽을 타고 내려왔습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그 소리는 따라왔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이 아파트의 1층에 총계량기가 달려 있고,

집집마다 분할계량기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얼마나 사용했는지 분할계량기에 나타나는 숫자로 계산해서 전기요금을 내곤 했었는데,

계량기의 전력 수용이 적은 것인지 걸핏하면 전기가 나갔습니다.


낮에 전기가 나가면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집 앞의 구멍가게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휴즈를 갈아 달라고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밤에 전기가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왜 전기가 나가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서민 아파트이기도 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전기를 무진장 아껴 씁니다.

아껴 쓰다 못해, 우리가 볼 때는 집이 어둡다고 느낄 정도로 낮은 촉수의 등을 사용합니다.


계단에는 계단 등이 없어서 밤에 올라가려면 후레시를 켜고 올라가야 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겨울에 일찍 자고, 냉장고를 쓸 일도 없으니

전기가 나가도 밤늦도록 잠을 못 자니 애가 닳는 사람은 바로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겨울밤 대부분 10시만 되면 다들 자는지,

모두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건너편 동에 환하게 불이 켜진 집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한국 사람이 사는 집이 틀림없습니다.


전기가 나가는 밤이면, 그나마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방송도 들을 수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 밤이면 전기장판을 사용할 수 없어 추워서 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다행히 가스로 물을 끓여서 계속 물을 마시며

촛불 아래에서 책을 보며 그렇게 온밤을 지새우다 보면 동이 틀 무렵이 됩니다.


동이 트면 시장에 갑니다.

한국과 달리 중국인들은 아침도 사서 먹기 때문에

겨울에도 6시가 되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한 사람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날 아침에, 아무런 바람막이도 없이

그렇게 하루 종일 물건을 팔려고 나오는 사람들.


부스스한 얼굴로,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새집을 지은 것 같은 머리에

겉옷은 언제 빨아 입었는지 모를 정도로

때가 타 아예 시커먼 색이 되어버린 옷을 입고 나온 사람들을 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저는 그래도 저들에 비해 너무 고급스러운 곳에서 사는구나 싶었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뜨거운 물로 세수도 하고,

추운 바람을 피할 작은 집도 있고...


그러나 이런 물질적인 위로 말고,

정작 세수도 하지 않은 듯한 그들의 얼굴에는

제가 가지지 못한 건강한 미소가 있었습니다.

환한 웃음이 있고, 창백한 제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기,

살아야 할 이유가 얼굴에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순간온수기로 물을 데워 샤워를 합니다.

그런데 가스를 사용하는 순간온수기는 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지만,

전기 순간온수기는 벽 위에 달린 통 속 일정한 양의 물을 미리 데워야 사용 가능합니다.


통이 크면 물이 많이 들어가지만,

저희 집의 순간온수기 통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물을 많이 쓰는 저에게는 이 물이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다시 생각했습니다.

전기온수기로 물을 데우는 30여 분 동안,

가스 위에 큰 물통으로 다시 물을 데웠습니다.

그러면 그나마 뜨거운 물로 넉넉하게 추운 몸을 씻을 수 있었습니다.


그 해 겨울은 너무 추웠습니다.

정말로, 몸도 마음도 추워서

그렇게 온통 꽁꽁 얼은 몸과 마음이 되어 지냈습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왜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저 살아야 하는 이유만으로…

그냥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 해 겨울의 간절한 소망은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눕는 것이었고,

뜨거운 물이 철철 나오는 목욕탕에서

몸을 녹이며 사우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간절히 필요했습니다.


혼자라는 시간이,

소리 없는 저만의 공간이 두려워서

항상 그가 옆에 있는 듯 앉아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공부한 것과,

오늘 제가 생각한 것,

제가 바라는 것…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마치 그가 옆에 있는 것처럼…

그렇게 책상에 앉아 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대답 없는 그가 없음을 알고

그런 제 모습이 처량해서 또 울었습니다.


그 해 겨울은 정말 너무도 추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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