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2 나 이렇게 라도 살아야 해?
침대에 누워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링거를 보았습니다.
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니 간호원이 어떻게 혈관하나 제대로 못 찾아서 사람 손에 피가 나게 이렇게 찔러 놔요?”
그 사람의 화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리아 임신 4개월 때 집 앞에서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습니다.
횡단보도보다는 그냥 편한 대로 건너 다니는 대만의 교통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살던 시절이었지요.
그날 아침에도 길을 건너려고 길을 반 정도 건너고 나서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살피느라고 차도 중간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곤 얼마 후에 흔들리는 느낌과 무릎이 쓰리다는 생각에 눈을 뜨니 하얀색 가운을 입은 간호원과 의사가 나를 침대에 뉘인 채 어디론가 급하게 밀고 가고 있었습니다.
병원이었습니다.
나는 눈을 뜨자마자 “우리 아기는요?” (워더하이즈너?)
이게 저의 첫마디였답니다.
모성애라는 것이 본능이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그와 동생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습니다.
반대차선에서 달려오던 작은 트럭기사가 차도의 중간에 서 있었던 나를 보질 못했다고 합니다.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내가 차에 치이면서 공중으로 붕 뜨면서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안고 그리고 땅에 떨어졌답니다.
저는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차도 중간에서 맞은편 차가 오나 안 오나 쳐다보던 기억밖에는 ……
거긴 길도 좁고 속력을 낼만한 도로가 아니었지요.
그리고 기절을 했고, 병원까지 실려 오던 그 시간 아마도 20여분 정도일까요?
그 시간은 기절을 했었기에 차에 치일 당시의 아픔도 통증도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다행히도 다른 곳은 큰 부상이 없었지만 눈언저리는 마치 부부싸움을 해서 얻어맞는 것처럼 멍이 들었고
무릎과 팔은 찰과상으로 심하게 까진 상태였습니다.
제 몸과 태아의 상태를 본다고 일주일 병원에 입원을 했었습니다.
매일매일 링거를 맞았었습니다.
그때 혈관을 못 찾아 여기저기 세 번이나 피를 내면서 바늘을 찌르던 간호원에게 그가 화를 냈었습니다.
‘그때 나도 죽었더라면, 죽는다는 것이 그런 것인가?
나도 그때 죽었더라면 아무런 아픔도 없이 그냥 그렇게 죽었겠지.’
‘이런 우리 마누라, 눈이 쑥 들어갔네. 뱃살도 푹 들어갔네. 날씬해졌네?’
그가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로 안쓰러운 얼굴로 내려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가깝게 지내는 준이 엄마에게 와달라고 전화했습니다.
“언니 진작에 전화 좀 하지 그랬어”
“다들 바쁘잖아. 새천년 맞이 여행하고, 새해 맞이 하느라고.. 연초부터 아프다고 사람들에게 말할 수가 없어서....”
준이 엄마가 와서 엉망이 된 집을 청소하고 죽을 끓여 주고 갔습니다.
몸이 천근만근 늘어지듯이 그렇게 기운이 없었습니다.
‘일어 나자 일어나자. 정신 차려야 해 정신. 죽 먹어야 해. 죽 먹고 약 먹어야지. 약 먹어야지.’
그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죽을 퍼서 먹다가 다시 울컥 울음이 나옵니다.
‘자기야, 나 이렇게 서라도 살아야 해? 나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느냐고.. 자기 지금 나 보고 있어? 나 좀 도와줘, 나 너무 아파’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울면서 죽을 먹고 그리고 약을 먹고 다시 약 기운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온몸으로 새 천년을 맞이하던 그 해, 너무 혹독하게 앓고 나니
하느님은 제게 신체의 고통을 통해서 나를 더 세우려고 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감사하자!
감사하자, 살아 있음에 감사하자
살아 있음에... 아프지 않고 살아 있음에 감사를 드리자
성한 목숨 주셔서 걸어 다닐 수 있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자
살아 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