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마지막 날, 노을을 따라가다.

by 초록 향기

2025년 마지막 날, 노을을 따라가다

아라전망대 노을.jpg

2025년의 마지막 날, 노을로 유명한 무의도 하나개 해수욕장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출발하려고 시간을 보니 이미 오후 세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도착하면 노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에서든지, 25년의 마지막 지는 해를 보내고 싶었다.


집에서 가까운 아라전망대로 방향을 틀었다.

노을로 가득 찬 해변이 아니면 어떠랴!

차를 세우자 나뭇가지 사이로 막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차 안에 앉아 음악을 틀고

천천히 기울어가는 2025년의 마지막 해를 여유 있게 바라보았다.

춥지 않아서 좋았고, 조급하지 않아서 좋았다.

비록 화려한 노을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더 조용하게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 안에서 이대로 잘 수만 있다면

그냥 이대로 어디론가 떠나도 괜찮겠다는 생각...

목적지가 없어도,

어디쯤인지 몰라도,

이 노을을 따라가도 좋겠다는 생각...


그래서 사람들이 차박을 하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평소에 음악을 자주 듣지 않는 사람이다.

음악을 싫어하는 건 아닌데,

노래 가사 속으로 내 감정이 깊이 들어가면

그게 버거워서 일부러 피하던 때도 있었다.


20대에 대만으로 유학을 갔을 때,

그때는 인터넷이 없어서

한국 노래를 들으려면 유행 가요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가져가야 했다.


주말이 되면 타이베이가 집인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어느 순간 텅 비어버린 4인실 기숙사에

혼자 남게 되곤 했다.


그럴 때면 신이 나서 음악을 크게 틀었다.

하지만 한국 노래를 들으면

가사 하나하나가 너무 그리움으로 크게 다가와

향수병이 밀려왔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슬퍼지면

노래를 끝까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어떤 노래는 가사를 몰라 사전을 찾아보며 들었고,

어떤 노래는 가사 한 줄 한 줄이 가슴에 와닿아

그 노래만 반복해서 듣기도 했다.

그 선율들을 따라서 말이다.


그렇게 반쯤 알아듣는 노래를 틀어놓고

그 시절의 향수와

그리운 시간들을 견뎠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한국 유행 가요와 점점 더 멀어졌다.

제때 유행하는 노래를 잘 알지 못했고

한참 지난 뒤에야 듣게 되면

‘이 노래 참 좋다’ 하며

언제 나온 노래인지, 가수는 누구인지 묻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

차 안에서 오랜만에 다시 등려군이 부른 ‘첨밀밀’을 들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선율을 듣다 보니

이렇게 우리에게 좋은 노래를 남긴 사람이

왜 그렇게 젊고 예쁜 나이에 타국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나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는 여전히 그 시절처럼 감미로운데

이 노래를 남기고 떠난 사람이나

그 시절 나와 함께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즐겨 들었던 사람이나

뭐가 그리도 급하게 떠나야 했었는지....


순간 알 수 없는 아픔이

가슴 한편을 조용히 파고들었다.


해는 어느새 거의 넘어가고 주변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2025년의 마지막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첨밀밀’을 듣던 그 시절의 나도, 그도 어둠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 옆에는 또 다른 ‘그’가 미소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노을을 보려고 서두르지 않아서 좋았다.

차 안에서 따스한 커피 향과 함께

2025년을 보내는 마음들이, 그 순간들이 너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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