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어느 순간 가운데 레인에서

by 초록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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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논문을 준비하느라 1년 넘게 방 안에만 있었던 나는, 어느 날 마리아와 함께 천진대학교까지 걸어갔다가 심한 숨 가쁨과 무기력함을 느꼈다. 걸어서 30분 정도의 거리였지만, 돌아오는 길은 마치 몇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멀게 느껴지고 몸이 힘들었다. 바닥난 체력으로는 논문을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나는 결심했다.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리아는 내 딸 리아와 한자는 다르지만 음이 같았다. 이전에 짐 정리를 도와주던 아줌마, 떠우지에의 딸이었다.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었던 나는 가끔 마리아와 함께 한국식당에 가서 식사를 같이 하곤 했었다. 대학 1학년이었던 마리아는 나를 큰언니처럼 잘 따랐다. 우리는 가끔 자전거를 타고 서점도 가고, 안 가본 식당도 같이 가보곤 했었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자 어떤 걸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한국 유학생 테니스 모임도 있었지만, 테니스는 라켓을 준비해야 하고 약속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만나서 어울리는 것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을 생각하다가 수영을 떠올렸다. 늘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보던 천진대학교 안에 있는 수영장이 떠올랐다. 마침 열흘간 진행되는 기초 수영 강좌가 있다는 걸 알고 바로 가서 등록했다. 수영장 앞에서 수영복과 수경, 모자 등도 같이 장만했다.


처음에는 물만 봐도 마음이 아려왔고, 물속에 발을 내딛는 것조차 무서웠다.

수영장 가장자리 라인에서 바를 잡고 간신히 연습하며 물속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없애갔다. 그렇게 열흘쯤 연습을 하니 비록 가장자리 라인이었지만 라인을 따라 왕복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어느 날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수영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 좌우를 살펴보니, 내가 어느새 수영장 한가운데 레인에서 혼자서 수영을 하고 있는 걸 깨달았다.


‘어? 나 지금 한가운데에서 수영하고 있어!’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고, 그 놀라움은 곧 밀려오는 성취감으로 이어졌다.

‘내가 드디어 맨 한가운데 라인에서 왕복을 오가고 있구나.’


그 순간, 그가 떠올랐다.

물을 무서워하던 그 사람,

수영을 싫어했던 그 사람.

물속에서 떠난 사람.


‘당신, 보고 있어요?

나 이렇게 물속에서, 수영장 한가운데서도 혼자서 잘하고 있어요.

당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물속에서, 나는 지금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아가고 있어요.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죠?’


처음에는 그렇게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두렵더니, 꾸준히 매일 연습을 하니 결국 내 몸이 자연스럽게 물 위에 떠서 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저녁, 오후 공부를 마친 뒤 수영장으로 향했고,

한 시간 넘게 물속을 오가며 복잡한 머리를 비워내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숨이 가쁘고 두려웠던 물속이

어느새 가장 편안한 나의 놀이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연습을 하고 꾸준히 포기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손을 붙잡지 않아도,

나 혼자서도 충분히 나아갈 수 있다는 걸

그날, 가운데 레인에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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