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다
한옥의 기와지붕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계절에 외출을 하려고 나서면 춥지도 덥지도 않은 딱 좋은 기온이 온몸을 휘감는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인 순간이다. 추운 겨울엔 걸으면서 외부의 세계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 한결 가벼운 옷차림으로 거리를 산책할 수 있는 좋은 계절이 온 것이다. 지난 주말에 경복궁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궁 담장 뷰의 카페에 들어가 <쑥 라테>를 마시며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카페의 분위기가 있다. 통창의, 큰 유리를 통해 보이는, 풍경이 궁이든, 숲이든, 바다든, 거리든 아름다웠으면 좋겠고, 커피를 내리는 곳의 사람들과 분위기로 그 카페의 커피가 맛있을 것 같다는 매우 주관적인 기준이 있다.
내부 장식이 과하지 않은 모노톤의 분위기와 좋은 음악, 친절함까지 더해져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들이 곳곳에 많이 있다. 책이 있는 북카페면 더욱 좋다. 걷다가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며 경복궁 둘레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겨울을 벗어던지고 걷는 사람들에게서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나는 from time to time, 서울로 여행을 간다. 서울의 거리를 걷고 전시회나 음악회를 가기도 하고 좋은 숙소에서 일박을 하기도 한다. 좋은 공간을 탐색해서 찾아 나선다. 아름다운 공간을 보고 그 안에 있을 때 영감을 얻기도 하고 즐거운 마음이 든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지만 공간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클 것인가.
어느 해인가 물이 빠져야 길이 생겨 들어가는 제부도에서 걷기를 하고 대하를 맛있게 먹은 후, 느끼함을 없애기 위해 마셨던 서해바다 뷰의 카페에서의 커피의 맛. 엄청 좋았다.ㅎ 비 내리는 바닷가의 그날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제부도를 종종 가는 데 갈 때마다 아름다운 카페들이 오픈을 해서 섬에서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점점 많아진다.
일본 여행 중 교토에서 갔던 <GOKAGO 카페>에서는 말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보여준다. 그 과정을 보고 알았다. 녹차는 잎을 우려 마시는 차고, 말차는 잎을 갈아서 가루를 녹여 마시는 차라는 것을. 맛도 좋아 제주 오설록 말차를 주문해서 꿀을 조금 넣어 마시며 교토여행을 회상한다. 내가 사는 곳의 수원 화성 성곽길 뷰 카페들도 파리 부럽지 않다. 화원과 같이 운영하는 카페는 사계절 잘 가꿔진 식물과 꽃을 볼 수 있어 가족모임 후 꼭 들르는 곳이다.
외관이 멋진 건축물들도 흥미롭다. 그 내부공간도 우리가 어떻게 조성하는 가에 따라 아름다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나는 학교 행정에 관한 일을 한다. 겨울방학 동안 교사 내부의 천정을 무석면텍스로 교체하고 LED 조명을 새로 설치하는 거대한 작업을 했다. 어렵고 큰 공사다. 준비기간도 길고 여러 업체들이 서로 일정을 조율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학교의 모든 집기를 옮기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무사히 개학을 할 수 있을까부터 모든 설비가 제대로 다 작동이 될 수 있을까 까지 시설전문가가 아닌 나로서 그 부담과 책임감에 힘겨운 겨울을 보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봄을 맞이할 날이 올까 했다.
3월이 왔다. 사무실 천장을 쳐다본다. 매끄럽고 깨끗해진 천정의 질감과 밝아진 조명에 변화를 느낀다. 학생들에게 더 나은 교실환경이 주어졌다.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공간의 변화가 마법 같다. 그러나 이 작업은 이미 했어야 할 기초적인 작업이고 더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학교 공간이 예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나는 공사가 싫다. 그 과정의 처음에서 끝이 힘겹고 어렵다. 그러나 드라마틱하게 변화된 결과를 보니 좋긴 좋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몇몇 학교들은 학교시설환경이 전면적으로 바뀌는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변화되는 것은 좋은데 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너무 힘들어한다. 그 규모가 크고 과정이 어려운 석면공사나 그린스마트사업은 전문적으로 일하는 팀이 구성되어 학교행정에 도움을 주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천편일률적 교실공간과 학교시설공간은 북유럽의 학교와 같이 예술적으로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 일부 고등학교에는 카페도 있고 학교 공간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우리가 일하고 공부하고 먹고 잠자는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그 일을 맞닥뜨릴 때 받는 엄청난 스트레스로 인한 근무여건의 개선도 필요하다.
봄이 왔고 공사판의 겨울을 지나 학교는 문을 열어 학생들이 뛰어다닌다. 공사가 너무 어렵고 싫은 나다. 온화해진 교정은 언제 공사판이었냐는 듯 목련이 꽃을 피우려 하고, 학교 앞 탄천에는 벚꽃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봄은 우리나라 전역의 공간을 변화시킨다.
작년 7월부터 머릿속을 괴롭혔던 학교의 석면공사는 나에게 공간의 의미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