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공간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전시후기

by 피아노

어느 늦은 가을, 가을이 금방 사라질 것만 같아서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려고 우연히 알게 된 뮤지엄 산으로 달려갔었다. 입구부터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야외공간이 물과 빛, 주변의 산숲과 조화를 이뤄 야외공간과 미술관 자체가 예술이었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Tadao Ando)의 건축으로 원주의 산속에 지어진 이곳에서 요즈음, 영국의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y Gormley)의 <Drawing on Space> 전시회를 하고 있다. 꽤 오래전에 와 보았던 곳이라 그런지 입구 정원에 놓인 야외 조각 전시부터 새롭고, 조소와 사진을 전공한 조카의 설명으로, 보이는 부분이 더 확장된다.

들뜬 마음으로 천천히 걸으면서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본 후, 안도 타다오의 빛의 공간으로 들어가 본다. 천정이 십자모양으로 뚫려있어 노출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공간에 빛이 들어온다. 마음이 경건해진다.

미술관이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워터가든을 지나 뮤지엄 본관으로 들어간다. 차를 한잔 마시고 안토니 곰리의 드로잉과 조각미술을 본다. 한 명의 예술가를 만난다. 모든 작품이 인간의 신체를 형상화했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공간 안에서 생각한다. 이 전시의 제목, Drawing on Space다. 안토니 곰리는 예술의 공간을 새로운 행동, 사고, 감정이 솟아오를 수 있는 '되어감(becoming)' 장소로 정의하고자 하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드로잉과 선으로 인간의 몸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에서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이 느껴진다. 모든 작품에 일관되게 표현된 인간의 몸 사이를 걸으며 안토니 곰리를 만난다. 작품들을 보면서 한 예술가를 직접 만나는 듯한 기분을 처음 가져본다. 이제 안도 타다오와 안토니 곰리가 협업하여 만들어진 곰리관(Ground)으로 향한다. 건축가와 조각가가 만났다.


엇, 이곳은 새로운 공간이다. 동굴구조로 천정이 돔으로 되어 역시 원형으로 조그맣게 뚫려있다. 눈이나 비가 올 때는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창이 있어 투명해 보이는 듯도 하다. 밖으로 산의 풍경과 이어진다. 말을 하면 울림이 커 강제로 조용히 있어야 한다. 명상의 공간이다. 드문드문 안토니 곰리의 조각 작품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재료가 벽돌같이 보였는데 산화된 철이라고 한다. 새로운 공간과 예술이 새로운 감각과 사고로 이어진다. 누워있기도 하고 웅크려 있기도 하고 산을 바라보고 있기도 한 작품들 사이로 누가 조각인지 누가 사람인지 모르게 전시를 보는 사람들이 뒤섞여 공간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이 조각 옆에 가서 똑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새롭게 조성된 공간 안에 전시를 관람하는 사람들까지도 예술의 일부가 된 듯하다. 오랜만에 완전히 몰입하는 전시를 본다. 흔하게 접할 수 없는 조각가의 전시에 이렇게 매료되다니. 경탄한다. 훌륭한 건축가의 공간이 그 아름다움을 배가시킨다. 감사하다. 전시를 보고 돌아와 안토니 곰리에 대해서 찾아본다. 홈페이지에서 작가의 여러 다른 작품들을 본다. 모니터가 뮤지엄이 된다. 전 세계에 안토니 곰리의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인간의 신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는 조각, 설치, 공공미술 작품들이 나를 새로움으로 이끈다. 한 명의 예술가를 알게 되었고 내가 이 자연과 우주 안 어디에 존재하는지 사유하는 시간을 갖는다. 조카와 점심을 먹고 어떤 전시를 보러 갈까 이야기하다가 순간적으로 결정했던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 뜻밖의 큰 영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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