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파서 살게 되었다.
사람이 그리웠고, 사람이 아쉬웠다.
어린 나이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가장 힘겨운 사람들과 살게 되었고, 그게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과 살면서도 과연 내가 사람들과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몹쓸 생각이지만,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매일 묻고, 또 물었다.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답을 찾고자 독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 안에 있는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고, 다음에는 학교 도서관, 그 다음에는 시청 도서관... 별에 별 책들이 세상에는 참 많았다. 말도 안되기도 했고, 중학생이 보아도 이걸 책이라고 썼을까 할 정도로 의심되는 책까지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더 외로워졌다. 이제 생각해 보니, 책은 혼자 읽는 거다. 혼자...
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들로부터 멀어졌는데, 나는 그 답을 엉뚱한데서 찾고 있었다.
아무도 찾아주지 않고, 그 누구도 말걸어주지 않는데, 더욱더 찾을 수 없고, 그 누구든 조용해야만 하는 도서관 한 귀퉁이에서 나는 사람을 고파했다.
다행히 그 기간은 얼마가지 않았다.
동네 작은 교회에 건성으로 출석하던, 정확히는 새엄마와 아빠의 계약아닌 계약으로 온가족이 마치 '행복한 가족 코스프레' 하는 것처럼 다녔던 그 교회에서, 어느날 한 아저씨가 찾아왔다.
그 아저씨는 일요일 아침마다 날 찾아 집에 왔고, 그 아저씨의 성화로 창피해서 교회 중고등부에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억지로 끌려가는걸로 보였겠지만, 사실 그 때 내 마음에는, '아... 날 찾아 주는 사람이 있네!!!' 하는 기쁨에, 가지고 있는 몇 벌의 사복 중에서도 더 좋은 옷을 챙겨 입고 따라나섰다.
교회 학생부서는 교회 크기 만큼이나 작았다. 내가 가자마자 이목을 끌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어디에나 있는 텃세가 있었지만, 그 텃세도 동네 같은 중학교 선배의 알은척으로 금방 끝나게 되고, 덩달아 나도 거미줄 친 입에서 방언터지듯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람이 고팠지 않나? 금방 허기진 사람처럼 사람들과 치대기 시작했다.
일요일에는 아침에 나와 밤늦도록 집에 가지 않았다. 평일에도 왠만하면 교회에 나갔다. 아무도 없는게 뻔해도, 나갔다. 집이 싫어서 나가기도 했고, 동생에게 미안하지만 그 부담도 한 몫했다.
그리고 교회에는 사실 늘 사람이 있었다. 평일에 학교 마치고 돌아와 교회에 나가면 늘 전도사님이 있었다. 그냥 전도사님이랑 있는거다. 청소하면 청소를 거들고, 주보를 만드면 같이 주보도 만들고, 기도를 하면, 기도하는 척도 하고... 그리고 밤에 집에 들어온다. 밥은 전도사님이랑 라면이나 끓여먹고... 아님 굶고!
굶어도 안죽더라. 한 두끼는... 그거보다 날 찾아주고 반겨주는 사람배가 더 고팠으니까.
그렇게 이사오고 재결합가정이라는 꼬리표에 적응할 무렵이었다.
여전히 나는 위인이 되어야할 운명이었나 보다.
갑자기 아버지 노가다 판의 십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원이란다.
병원. 그 지겨운 병원.
그 병원에 아버지가 누워계신단다. 또. 또. 또...
고층에서 용접하시던 아버지를 H빔(H 모양으로 생긴 기다란 철기둥)으로 쳐서 떨어지셨다고 한다.
간신히 떨어지다 용케 중간에 있던 구조물을 잡았으나, 이미 허리는 부러지셨고, 오른쪽 머리를 크게 다치셨다. 누군가는 천우신조(天佑神助)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이어지는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겨우 낙하하다 잡은 다섯손가락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다.
그 다섯손가락으로 움켜쥐지 않았다면, 나와 내 동생은 천애의 고아가 되었을 것이다.
다섯손가락 아파서 살게 되었다. 참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