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어떻게 써

by 배니할

손자가 학교에 가면서 봉투 하나를 내민다. 집에 가서 보라고 한다. 손자가 나가자마자 제 엄마가 뜯어보자고 해서 사각봉투를 열었다. 왼손으로 급히 쓴 글씨가 비뚤비뚤하지만, 글을 읽는 나나 함께 지켜보는 할아버지와 의 시선이 카드에 집중되었다.


내용인즉, 할아버지가 일하게 된 직장이 대구하고 가까워져서 좋다고, 그런데 오늘 가시니까 슬프다고, 섭섭하다는 맘을 슬프다고 했다. 그래도 7월에 오신다니까 기다리겠다고, 7월엔 부루마불과 티켓 투 라이드를 하자고, 밤 9시에 나가자고, 7월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 말은 설명이 필요하다. 이번에 손자와 손녀와 두 밤을 잤다. 저녁 식사를 한 후, 남매를 데리고 문방구에 갔다. 그리고나서 밤거리를 걸었다. 다른 아파트 놀이터에 들러 놀기도 했다. 그다음 날 밤에도 또 나가자 해서 상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또 밤거리를 산책했다. 그게 그렇게 좋았나 보다. 코로나 3년 동안 아이들이 마스크 쓴 채로 엄마와 밤에 거리를 다닐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아이들에게 이번에 할머니와 함께 한 밤거리 산책이 좋았던가 보다. 아이들 눈에는 낮에 보면 밋밋하던 거리가 밤에는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상점들이 전혀 다르게 보였을 것 같다. 그러니 7월을 기다린다 했구나. 웃음이 나오면서 이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바람을 불어넣었구나 싶었다. 제 엄마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지만.


엽서 옆에는 젤리 봉투가 있다. 그 옆에는 만원 지폐 두 장이 들어있다. 편지도 그렇지만 지폐 두 장을 집어넣을 생각을 한 손자의 마음이 감동으로 밀려왔다. 와, 어떻게 돈을 넣을 생각을 했을까? 열 살 어린아이가 이렇게 기특한 생각을 하다니, 셋이서 한 목소리로 같은 말을 했다. 편지도 그렇지만 거기에 돈을 넣어 성의를 표시한 것이 갸륵했다.


딸은 손자 방에 가서 저금통을 들고 나왔다. 내가 작년 어린이날에 사 준 투명한 돼지 저금통이다. 그 속에는 동전과 지폐가 반쯤 들어있었는데 만 원권도 두 장 보였다. 아니 제 재산의 반을 꺼냈네. 좁은 입구에서 끄집어내느라 애썼네. 무슨 생각으로 돈을 꺼내 카드에 넣었는지 그게 여전히 궁금하다. 예전에는 집안 어른들이 오셨다 가실 때면 꼭 여비를 드리고 했지만, 그것을 본 일도 없고, 들은 일도 없을 텐데 말이다.




나는 손자의 마음에 감동하여 집에 오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그래, 손주 키워준 보람이 있네. 누가 외손주 키워주는 것 말짱 헛것이라고 헛소리를 했나 싶다. 사랑은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지만 이렇게 아이의 마음이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벌써 대구 다녀온 지가 한 달이 되지만 나는 손자의 카드를 잘 보이는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수시로 쳐다보고 있다. 아니 이 젤리를 어떻게 먹어? 태권도장에서 그날 받은 것을 할머니 주려고 먹지도 않고 가져온 것 같은데. 또 이 돈을 어떻게 써? 이 초록색의 구겨진 손자의 손때가 묻은 지폐를 어떻게 쓰냐고…. 그걸 저금통에서 꺼내려고 이리저리 애쓰는 손자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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