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시절

by 배니할

‘카톡’
동영상이 올라왔다.
대기실에서 서울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핸드폰을 열었다.
손자가 현관에 앉아 울다가 문을 바라보고,
다시 눈물 콧물을 흘리며 우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가슴이 뭉클하며 짠했다.
‘어쩌지?... 그래 이걸 외면하고 갈 만큼 중요한 일도 아니지.’
나는 바로 차표를 물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손자는 뛰어나와 내 품에 와락 안겼다.

그 순간 나는 손자의 영웅이 된 것이다.
그 아이의 마음을 온전히 얻은 듯 의기양양했고,
그 힘으로 세상이란 전장에서 기쁘게 용감히 살아냈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유난히 무서움을 많이 타던 나는 벽에 걸린 어머니의 치마저고리만 보아도 귀신같아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비가 오면 지렁이가 무섭다고 밖에도 못 나가던 아이.
영화 한 편도 끝까지 못 보던 중증 겁쟁이였다.

그랬던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작은 영웅 노릇을 하더니,
이제는 드디어 손자 앞에서 대장군이 되었다.
맨 앞에서 길을 헤치며 세상을 보여주는 선봉장이 되었다.
그러니 내가 서울을 간다고 하니 아이가 그렇게 울었을 것이다.

손자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한적이 있다.

“물어 볼 게 있어요
왜 할머니가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가고
할머니가 없으면 시간이 느리게 가요?
어른들이 알아 내세요.
그래서 가르쳐 주세요”

유치원 때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난 유치원에서도
미술학원에서도
할머니 생각뿐이야

레고 만들 때도
친구랑 놀 때도
할머니 생각 뿐이야

난 꿈에서도
마음에서도
다 할머니 생각뿐이야

이만하면 그 시절의 나는 가히 영웅이라 불릴 만했다.
비록 그 기간이 손자가 어렸을 때에 국한되었을지라도.

이제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손자는
몸무게도 나를 넘었고, 신발도 할아버지 문수를 추월했다.
어제는 우리 집에 와서 나를 거뜬히 업어주기까지 했다.

나는 그 아이가 했던 말을 동시처럼 기록해 두었다.
내가 한때는 손자의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미소가 절로 지어지며 흐뭇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는
영원히 나의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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