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면서 선현들의 주옥같은 말씀에서 큰 위안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스크랩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매일 넘기는 달력 밑에 적힌 현자들의 명언을 모아 노트에 정성스레 옮겨 적었다. 틈이 날 때마다 그 노트를 펼쳐 읽곤 했는데, 그 말씀들은 어려울 때 위로가 되었고, 때로는 해결책이 되기도 했다.
신혼 시절, 남편은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했다. 요리 솜씨가 서툴렀지만, 요리책을 펼쳐 놓고 남편이 좋아할 만한 메뉴를 골라, 주방을 잔뜩 어질러가며 정성껏 음식을 만들었다. 상을 차려놓고는 시계만 쳐다보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몇 시간을 기다리다 결국 늦은 저녁을 혼자 맛없이 먹기를 여러 날. 정성 들여 만든 음식을 남편은 먹지도 못하고 내가 먹는 것이 왜 그리 아까운지 몰랐다.
차츰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피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시에는 전화가 없어서 밥을 해놓고 무작정 기다리던 시대였다. 처녀 시절 직장생활을 했기에 남편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나, 그 긴 저녁 시간이 무척 무료했다. 지금처럼 TV도 없던 시절이라 더 그랬는지 모른다.
초저녁에는 이것저것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신혼에 방 두 칸을 얻어서 쓰던 터라 할 일도 별로 없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면서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혹 교통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방정맞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통행금지 시간을 어겨 파출소에 붙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안절부절 못하며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렇게 불안해서야 어디 살 수가 있나. 가뜩이나 약한 몸이 이렇게 불안해하다간 남아나질 않겠어.’ 나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대로는 내 심장이 견디질 못하겠어. 어차피 죽고 사는 것은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 그것은 운명이고 팔자다. 하느님께 맡기자.’ 스스로에게 계속 이렇게 말했다.
주기도문을 천천히 낭독하고 이책 저책 뒤적이다가, 좋은 글을 모아 놓은 노트를 펼쳤다. 주옥같은 말씀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이겨온 사람은 모든 경우 숭고한 인간성에 이를 것이다. -아그네스 고왈즈->
<진실로 내 의사에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어찌 남이 내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 것을 탓하면서 자신의 마음과 몸을 자기의 뜻대로 복종시키려고는 하지 않는 것일까>
<돈만이 재산이 아니다. 지식도 재산이고 건강도 재산이며 재능도 재산이다. 그리고 의지는 다른 어떠한 재산보다 훌륭한 것이다. -슈와프->
<자기가 원하는 방향을 잃지 않고 생활해 나갈 수 있는 사람만이 자유스러운 사람이다. 차가 자유롭게 가려면 운전을 잘해야 하듯이 내가 자유롭게 살려면 내 마음이 내 육체를 잘 운전해 나가야 한다. -에픽테토스->
<관용의 피를 지닌 사람은 또한 가장 진실한 용기의 피를 가진 사람이다. -E기번->
<진실한 사랑은 인격을 높이고 그 마음을 살찌게 하고 또 그 생활을 정화한다. - 아미엘->
<고역으로 인하여 거칠어진 손은 복 있는 손이다. -에머슨->
<참다운 지혜로 마음을 가다듬는 사람은 저 호머의 시구 하나에서도 이 세상의 괴로움에서 벗어 날 수 있다. -페이터의 산문 중->
이렇듯 좋은 글귀를 읽다 보니 어느새 내 마음은 차분해지고 평화로워졌다. 명언 집이란 약을 금방 먹었기에 내 몸과 마음은 너그러워져 있었다.
그때쯤 남편이 귀가하여 ‘띵똥 띵똥’ 벨을 울렸다. 시계를 보니 자정도 훨씬 넘긴 시간인데 야경꾼에게 들키지도 않고 잘 들어왔다 싶어, 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남편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듯했는데, 누군가 우산을 받쳐 들고 옆에서 부축해 주고 있었다.
“여보! 이분 얼른 모셔. 이 아래 골목에서 만난 분인데 빨리 계란후라이 하고 술상 좀 차려줘요. 끄윽, 꿀떡” 딸꾹질하는 소리가 났다.
환한 현관으로 안내하여 마루로 올라서는데 물이 뚝뚝 떨어졌다. 완전히 비에 흠뻑 젖어 머리부터 양말까지 다 젖은 상태였다. 그런데 손에는 누런 찢어진 봉투를 들고 있었고, 그 끝에 연시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얼른 올라오세요. 선생님도 수고가 많으시네요.” 하고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남편의 옷을 갈아입히는데 결혼 때 맞춰 입은 단벌 신사복이 모두 젖었고, 런닝 팬티까지 다 젖었으니 이 빗속에서 그 비를 다 맞고 온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삼송리행 마지막 버스를 타고 잔 것 같은데 운전기사가 흔들어 깨웠다고 했다. 버스도 끊기고 삼송리에서 갈현동 언덕배기 끝에 있는 우리 집까지 비를 맞고 걸어오는데 야경꾼 아저씨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술상을 차리고 계란후라이를 해서 뒤풀이를 했다. 어쨌든 그 야경꾼 아저씨 덕분에 파출소 신세를 면하게 된 것만 해도 고마웠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명언집이 나에게 대단한 약효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마음이 한껏 너그러워져 있었기에 짜증도 내지 않고 남편의 시중을 들었고 단벌옷을 다 버려놓았는데도 화를 내지 않았다. 또 야경꾼 아저씨에게도 감사한 마음으로 대했기에 즐겁게 담소할 수 있었다.
신혼 때 남편의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 명언집의 약효를 소개했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좋은 글들이 나에게 계속 작용하여 나 자신은 물론 남편이나 모든 사람을 대할 때 좋은 영향을 미쳤다.
세월이 오래 지난 뒤 남편이 나에게 푸념 아닌 푸념을 했다.
“당신이 젊었을 때부터 잔소리하지 않아서 술을 마음 놓고 마셔 이렇게 장이 나빠졌잖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세상이 한 번 더 돌아 당신을 만난다 해도 그런 시시한 잔소리는 안 할 거예요. 자기 몸은 자신이 알아서 해야지,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해서 될 일은 아닌 것 같네요.”
남편은 그 후로는 그런 소리를 다시 하지 않았다.
남편은 장 때문에 몹시 고생했다. 변이 늘 묽어서 갖은 좋다는 약은 다 써봤고, 한번은 포도 단식을 너무 철저히 하는 바람에 기력이 떨어지고 혈압이 내려가 회복하기까지 몇 년을 고생했다. 기분이 나빠도 설사를 한다고 해서 나를 아주 조심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막내 시누이가 유명하다는 한의원을 소개해 주어 진맥을 했는데, 그 한의사는 남편이 너무 술을 많이 마셔서 창자의 융모가 녹아 설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그 한의사 덕분에 술을 많이 줄이고 노력한 결과, 평생 나을 것 같지 않던 장이 좋아져서 젊어서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잔소리를 하지 않은 것은 명언이 가져다준 ‘부작용’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이 우리 부부에게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신혼 시절 그 불안했던 밤부터 지금까지, 명언집은 줄곧 내 곁을 지켜왔다. 위에 소개한 명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그 짧은 문장들이 내 삶에 미친 영향은 실로 컸다. 힘들 때면 위로를 주었고, 화가 날 때면 마음을 가라앉혀 주었으며, 혼란스러울 때면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지금도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명언집을 펼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 시대를 초월한 지혜가 거기에 있다. 명언집은 내게 가장 좋은 스승이자, 평생을 함께할 가장 믿음직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