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스케치
병원에 입원하면서 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새삼 느꼈다. 폐렴 치료로 병실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연세 지긋한 환자들을 찾아오는 이는 대부분 딸이었다. 며느리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들도 내 딸처럼 친정어머니를 먼저 챙기면 될 일이다.
탯줄로 이어진 엄마에게 끌리는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그 사랑은 자연스레 상대 부모에게도 전해진다. 사랑하는 이를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 그 기쁨이 곧 자신의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며느리에게 대접받고 싶다면, 아들이 며느리를 행복하게 해 줘야 한다. 아들이 사랑받고 존경받을 때, 그 사랑은 그의 부모에게도 흘러가게 마련이다.
예전엔 시부모가 아프면 좋고 싫고를 따질 새도 없이 관습과 의무감으로 돌봤다. 친정은 뒷전이었고, 시댁 일부터 챙기는 게 당연시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상은 바뀌었고,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권리와 영향력도 커졌다. 결국, 가정의 분위기는 여성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번 병실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한 사위의 모습이었다. 딸 부부가 하루에 한 번 꼬박꼬박 찾아오곤 했는데, 커튼 너머로 들리는 대화가 참 따뜻했다. 처음엔 아들이 말하는 줄 알았다. “어무이~ 엄마, 아! 입 한 번만 벌려봐요. 아! 옳지 한 번만 더 묵자. 아~ 한 입만 더요” 하고 눈을 감고 계신 장모에게 밥을 먹이려 애쓰는 사위의 음성이 병실 안에 고요히 퍼졌다. 이 얼마나 귀하고 드문 장면인가.
‘아내가 예쁘면 처갓집 울타리까지 예쁘다.’란 말이 생각난다. 이 할머니의 딸은 안 보아도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 같다. 그러니 이렇게 장모님께 진심으로 대하는 것 아닌가. 사랑은 배움이나 재산의 유무와는 전혀 상관없다. 진심이 있는 사람만이 이런 따뜻한 행동을 할 수 있다.
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어디 아파? 목욕탕에서 넘어졌나? 눈 좀 떠봐. 말하기 귀찮아! 자고 싶어?”
그 뒤를 이어 사위의 목소리가 울린다.
“엄마, 눈 좀 떠봐요. 한 번만요. 나 간대이, 간대이~”
저녁에는 아들이 찾아왔다. 어머니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엄마. 나 왔다. 한번 눈 좀 떠봐라. 엄마. 나 가까? 엉엉~” 아들의 흐느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 간대이... 자거래이.... 간대이~ 머라 캐 봐!”
그 마지막 한마디에 마음이 아릿해졌다.
나는 침대 위 밥상을 펼쳐놓고 책을 읽다가 그 감미로운 소리를 나도 모르게 종이에 받아 적고 있었다. 왜 '간대이' 라는 말이 이렇게 따뜻하게 들렸을까. 아들의 정이 담긴 그 말은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나에게 따스하게 전해졌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는 아무 반응이 없다.
내 옆 침대의 할머니는 내가 입원한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않으셨다. 우리가 나란히 누워 있었지만, 실상은 아주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병실을 가르는 것은 고작 얇은 커튼 한 장이지만, 마음과 상황을 가르는 거리는 한없이 멀었다.
할머니는 일어나지도 못했고, 세 시간마다 간호인 서너 명이 오가며 기저귀를 갈고 시트를 바꾸는 소리만 들려왔다. “아이고, 또 샜어. 오늘도 두 번이나 시트를 바꾸네”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틈에 내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가 조용해지곤 했다.
앞의 병상 할머니 셋은 비위관으로 식사를 하셨는데, 옆의 할머니는 식사 때마다 입을 열지 않아 주변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 간호사와 실습생들이 번갈아 와서 간곡히 부탁해야 겨우 죽을 몇 숟가락 드셨다.
“할머니 아~ 해보세요. 한 번만요. 꿀꺽, 잘했어요. 국물 한 번만 더요. 좀 쉬었다 먹을까요?”
그 상냥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간호대학 실습생이었다. 두 달 실습 중이라 했고, 그중 2주 동안 이 병동에 있었다. 나는 체온이나 혈압을 잴 때마다 그 학생과 마주쳤고, 참으로 예쁘고 정 많은 모습에 ‘이 아가씨와 인연 맺게 될 사람은 복 많은 사람이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링거줄 덕분인가 싶었다. 왜 쓰러져 입원했는지, 언제부터 이 병실에 계셨는지도 알 수 없었다. 퇴원할 때도 할머니는 여전히 눈을 감고, 고개는 한쪽으로 떨어져 있었다. 마치 머릿속 전원 스위치가 꺼져있는 듯했다.
‘간대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