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스캐치
온종일 침대에 누워 표정도 없이 건너편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던 할머니가 그날은 갑자기 얼굴이 환해졌다. 나는 할머니의 시선을 따라 고래를 돌렸다.
아들인 듯한 중년의 남자가 병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할머니의 얼굴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표정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키우던 시간이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듯 모자의 상봉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들은 말없이 어머니 곁으로 다가가 빙긋 웃으며 할머니를 안았다. 그 얼굴에는 '가여운 엄마,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어 팔이 침대에 묶이셨나' 하는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는 침대 난간에 묶여 있는 할머니의 팔을 풀어주고 멍투성이 앙상한 손목을 쓰다듬었다. 이불을 정리하고 몸을 최대한 편하게 해 드린 뒤, 짧게 자른 흰머리를 여러 번 빗질해 주는 모습이 다정했다. 오랜 병환 때문인지, 아니면 본래 왜소하신 분인지, 할머니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딱할 정도였다.
그날 나는 부담 없이 할머니를 찬찬히 바라볼 수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이 온전히 가족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병실에 입원한 지 일주일이 되어 가지만, 평일에는 문병 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밤마다 손자가 10분 정도 들르는 것이 전부였다. 아마도 휴일이라 오늘은 아들이 가족을 데리고 병문안 온 모양이었다.
손자며느리는 아기를 안고 들어와 증조할머니께 보여드리려 했다. 하지만 얼굴에 호스를 끼고 반창고를 붙인 증조할머니의 모습이 무서웠던지 아기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손자며느리가 몇 번이나 아기를 안겨드리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평소 할머니는 병원에서 완전히 아기 같았다. 불과 한 시간 전에도 주사를 맞기 싫다며 “아이 구구~” 하고 신음을 내셨다. 담당 간호사가 달래도 말을 듣지 않자, 잠시 후 간호사 셋이 더 들어왔다. 한 간호사가 아기 달래듯 얼굴을 보며 말을 거는 사이, 나머지 두 명은 할머니의 다리를 붙잡았고, 담당 간호사가 재빠르게 앙상한 무릎 아래 혈관을 찾아 주삿바늘을 꽂았다.
내가 처음 이 병실에 입원해 침대 머리맡에 베개를 세워 쿠션처럼 기대고 앉았을 때, 가정 먼저 보인 것은 코에 줄을 끼운 세 분의 할머니였다. 그중 창가의 할머니만은 침대 머리를 약간 세우고 반쯤 앉아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웃을까 말까 어정쩡한 표정을 짓는 할머니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는 일부러 커튼 뒤에서 식사하거나 스마트 폰과 책, 수첩으로 시선을 돌렸다. 밥 먹는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힘드실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침대에 매달린 팻말이 눈에 띈다. 86세. 절대안정, 욕창 주의. 틀니를 빼서 입은 합죽하고 희다 못해 파리한 얼굴은 아주 작아서 거의 반창고와 호스 줄만 보일 지경이었다. 일주일 동안 할머니의 말은 못 들어 보고 코로 죽이 들어갈 때면 “아이고 으아~ ”괴로운 신음만 들렸다. 가끔 할머니는 호스를 뽑아버리곤 하셨다. 간호사가 와서 침대 난간에 손을 묶어 두었다. 밤에 손자가 오면 할머니는 하회탈 같은 함박웃음은 지었지만, 말은 거의 없었다. 손자는 다정했다. 손을 풀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로션을 발라 주고, 혼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를 즐겁게 해 드리려 애썼다. 그러다 “할머니, 내일 또 올게요. 간대이~' 하고 나가려 하면 할머니는 거의 울상을 지으셨다.
오늘 아침에도 간호사 셋이서 할머니의 대변을 처리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옷과 시트를 바꾸는 모습이 꼭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모든 간호사가 할머니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인다는 점이다. 가끔 “귀여워~”라고 말하며 둘러서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 힘도 없고 누구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할머니를 측은지심으로 돌보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그런데 나는 왜 할머니를 두려워하고 가까이 가지 못했을까. 처음부터 말을 걸면 끝까지 친절하게 대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였는지 모른다. 또 형평상 다른 할머니들에게도 똑같이 다정해야 할 터인데,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안정하려고 입원한 보람이 없을 것 같았다.
이곳 파티마병원 10층은 간호, 병간호 통합서비스 센터다. 고가의 간병인을 쓰지 못하는 환자들을 위해 보호자 없이도 최소한의 간병인과 실습 나온 간호 대학생들이 환자를 돌보는 시스템이다. 일주일 지내보니 환자도 병원도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월요일, 나는 퇴원 절차를 마치고 환자복을 벗었다. 처음으로 할머니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셨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며 안면근육이 실룩거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나는 당황해 할머니 등을 다독이며 안아드렸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병실을 나왔다.
할머니는 치매도 아니고 정신도 멀쩡하셨다. 말을 걸어주는 사람도, 다가오는 사람도 없어서 표정이 굳어 있었을 뿐이다. 그런 할머니를 외면하고 지냈으니 과연 나는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심히 부끄러워졌다.
지금 할머니는 왜 우셨을까. 내가 퇴원하는 게 부러우셨을까, 아니면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 순간 울고 싶으셨던 것일까. 저 할머니의 모습이 어찌 남의 모습으로만 보일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
돌아가셔도 섭섭지 않을 나이에, 호스로 죽을 넣어 연명하는 것에 대해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남편과 ‘연명장치를 하지 말자’라고 이야기했지만, 이번에 할머니들을 보며 ‘이렇게 고생하며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중에 죽을 복도 있다더니, 정말 그렇다. 나는 늙어 기능이 다 한 몸이 자연스럽게 며칠 앓다가 죽는 것을 소망하게 되었다. 이제 기도 제목이 하나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