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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은 Aug 27. 2024

순례 11일 차: 존재 자체가 고마워

Ortega





Y를 처음 봤던 때는 순례 1일 차 론세스바에스의 공립알베르게에서였다. 그때 나는 여자공용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막 나오던 참이었다. 샤워를 하면서 동시에 빨래도 같이 해버렸던 나는 젖은 머리에 원피스형 잠옷을 입고 손에는 그날 입었던 옷과 속옷들 빨래한 것을 하나로 뭉쳐 들고 나왔다. 내 머리와 그 빨래 더미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가 공용욕실로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어! 빨래 어디서 하셨어요? 세탁기 어디 있어요?"


나의 빨래를 보고는 세탁기가 어디 있는지 다짜고짜 한국어로 물었던 것 같다. 순례길에 한국인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한국인이라는 어떤 확신을 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질문에 대한 한국어 답변이 급했던 것인지 그녀와는 그렇게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뭐라 뭐라 말이 많았다. 그녀의 말이 너무 빨라서 내 대답은 갈 길을 잃었고, 그 한 가지 질문에 대답을 내뱉기도 전에 그녀가 말을 했다.


나는 가져온 짐이 얼마 되지도 않았고, 소량의 빨랫거리를 5유로씩 주고 돌려야 하는 세탁기는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녀에게 '모르겠다'라고 간단히 대답을 했고, 원피스 잠옷을 이미 흠뻑 적셔버린 빨랫거리를 널 자리를 찾아 욕실을 빠져나왔다.


처음 그렇게 그녀를 마주했을 때, 그녀는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순례길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은 좀처럼 흔한 일이 아니기에 그 화장은 굉장히 화려한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공용욕실의 모든 조명을 한데 모아 그녀의 얼굴에 스포트라이트를 쏘는 것 같이 내 의식은 그녀가 화장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가있었다. 그녀의 손톱 위에는 네일아트가 화려하게 올려져 있었다는 것을 그다음 날 아침이 돼서 목격하게 되었다. 순례길을 걷기 위해 가슴께 까지 왔던 긴 생머리를 쇼트컷으로 자르고 왔던 나와는 결이 맞지 않겠거니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아침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마주한 그녀는 테이블 위에서 다음 목적지의 알베르게를 예약하지 않은 것에 대한 온갖 걱정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 테이블에 앉아있는 한국인 순례자들에게 다음 알베르게를 예약해 놨는지 안 해놨는지를 한 명 한 명 묻고는 예약을 안 했던 나에게 어떻게 할 건지, 왜 예약을 안 했는지, 그래서 만약에 만실이면 어떻게 할 건지, 걱정은 안 되는지 등을 불안감을 한가득 품은 조급한 목소리로 정신없게 물어보는 탓에 무계획이 계획이었던 나와는 맞지 않는구나 확신을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순례길 위에서 종종 그녀를 보게 되었다. Y의 나이는 대략 40대 초반이겠거니 줄 곧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걷는 것 같았고, 동키서비스를 이용하는 것 같았다. 아주 간소하고 작은 가방을 메고 양손에는 스틱을 들고 땅을 짚으며, 급해 보이는 그녀의 성격과는 다르게 아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나도 이 순례길 위에서 걸음이 느린 편에 속했지만 Y는 나보다 걸음이 더 느렸다.




그녀의 나이가 곧 50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나이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숫자였다. 혹은 그녀가 그 나이와 어울리지 않거나. 그녀가 동안이라는 것도 한몫했지만, 그녀의 말투나 행동 같은 것들이 더 그런 생각을 들게 했던 것이다. 그녀의 겉모습에선 50년 가까이 살아온 삶의 무게감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늦은 저녁 시간, 어느 알베르게에서 바로 옆 2층 침대에 Y와 나란히 배정받게 된 날이었다. 짐 정리를 하고 있던 나는 그녀가 작고 투명한 봉지를 뜯어 하얀색의 조금한 고체덩어리를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셔 그것을 꿀떡 삼키는 것을 흘긋 보게 되었다. 그러고 그녀는 한참 침대 자리를 정리하고는 옆에 있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곧바로 잠이 들 거야. 혹시 내가 잠꼬대를 하거나, 잠시 비명을 지르더라도 놀라지 마."


나는 그냥 그녀를 쳐다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그 말을 들은 난 아까 그녀가 삼켰던 그 하얀 고체덩어리가 수면제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작은 투명한 봉지를 뜯어서 나온 그것은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수면유도제가 아닌,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수면제였을 것이다.

침대에 눕자마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잠들어 버린 그녀는 드르렁거리며 작은 코골이를 하더니, 얕은 잠이 든 내 의식을 깨울 만큼 꽤나 큰 비명을 "으어억"하며 몇 번 지르고는 이내 또 잠잠 해지다 한 차례 더 잠꼬대 같은 것을 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도 깊은 잠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무겁게 짓눌러 괴롭히고 있던 것일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다, 그 명확한 이유가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녀의 나이가 됐을 땐 세상의 모든 게 더 명확해질 거라고.. 내 앞에 놓인 삶 앞에서 나는 더 현명해질 수 있다고.. 그런 경험과 지혜가 내게는 쌓여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진짜 그녀를 가려버린 이질적인 그 겉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것이 슬프다고 느꼈다.





이따금씩 Y와 길 위에서 마주쳤고, 그녀와 같이 걷게 됐을 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호감을 갖고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잘 통한다고 느꼈고, 첫인상과는 다르게 어쩌면 서로를 조금은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결이 맞는 사람일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나는 그녀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이를 테면 죽음, 삶, 인생의 가치.. 같은 것에 대해서도 내가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것인지 그녀는 이해하는 것 같았고, 그녀 자신만의 의견도 있었으며, 그것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속 깊은 대답과 진실된 생각을 들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녀가 어른이라 생각했고 또 그런 그녀에게 자연스러운 존경심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그녀가 그녀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는 혹은 드러낼 수 없는 어떤 무거운 것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11일 차 오르테가를 가는 길이었다. 오르테가는 작은 마을이어서 알베르게가 몇 개 없었는데, 그날도 나는 미리 알베르게를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오르테가에 거의 도착했을 즈음,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에 물집이 생겨버린 것이다. 며칠 전부터 발이 쓰라리고 콕콕 쑤시는 통증을 느꼈는데,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발은 퉁퉁 부었고 꽤 넉넉하던 내 운동화에 부어버린 발이 꽉 껴 답답함을 느껴다. 물집이 잡힌 발가락 사이는 꽉 끼는 운동화와 두꺼운 등산 양말 때문에 계속해서 쓸렸고, 물집을 더 크게 만들었다.

오르테가의 한 작은 알베르게에 도착했을 때, Y가 보였다. 그녀는 절뚝거리는 내 다리를 보고는 괜찮냐며 걱정을 하고, 지금 알베르게는 다 만실이라고 말했다.



큰일이었다. 작은 도시 오르테가에는 알베르게가 몇 개 없었고, 그나마 컨디션이 좋은 이곳이 이미 만실이라고 하니 절망적이었다. 나는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우선 이곳에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면서 핸드폰으로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야 겠다 마음먹었다. 내가 간단히 먹을 샐러드를 시키고 먹는 둥 마는 둥 핸드폰을 뒤적이며 알베르게를 찾고 있을 때, 그녀가 다가와 나에게 이야기했다.



"내가 길을 걸으면서 만난 동행이 있는데 그분들과 이 알베르게의 룸을 쉐어 하기로 했어. 그래서 내가 예약한 알베르게 자리를 너가 써도 될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했고, 속으로 안도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을 때, 그녀를 만난 것이 또 알베르게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는 까미노가 데리고 온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와 동행하게 된 분 중 한 분은 약사였는데, 내가 발에 물집이 잡혔다는 것을 알고 물집을 처치하는 방법과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여분의 비상약품까지 나에게 나눠 주셨다.

까미노 위를 걷다 보면 상황이 어려워질 때, 도움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도움의 손길이 있고 그것들을 '까미노 천사'라 부른다고 한다. 나는 오늘 두 명의 까미노 천사를 만났다.




나는 커다랗게 생겨버린 발가락의 물집을 처치하기 위해 샤워를 하고 나왔다. 씻고 나와 나는 발의 상태를 확인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큰 물집 한 개, 왼쪽 새끼발가락에 작은 물집이 한 개가 생겼다. 물이 가득 차버린 수포를 실을 연결한 바늘로 뚫고 고여있는 물을 빼낸다. 그리고 그 물집에 실을 통과시킨 후 바늘만 뺀다. 물집에 끼워진 실을 통해 남아있는 물까지 자연스럽게 빠진다고 했다. 급하게 물집을 처치했음에도 발은 전체적으로 퉁퉁 부어있었다. 며칠 전부터 발에 통증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방치했고 무시했다. 걸으면 또 무뎌지는 감각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난 내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아픔을 모른 척했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라고, 괜찮다고. 그 모른 척의 대가로 나는 일주일이 넘는 기간 까미노 길 위에서 쓰디쓴 고행을 맡보게 되었다.





물집을 처치하고 나는 카페 겸 공용거실인 1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Y와 알베르게 관리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오늘 아침 동키서비스로 보냈던 그녀의 배낭이 이곳 알베르게에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전에 묵었던 알베르게도 통화연결이 되지 않았고, 동키서비스가 배달돼 왔던 배낭의 목록에 그녀의 짐은 없었다. 순례자에게 배낭은 자신의 일부와도 같은 것인데, 그 배낭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그녀는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을까. 그녀와 관리자가 잠시 얘기 후 어떤 결정을 했는지 두 사람이 자리를 떴다.





한참 뒤에 Y가 배낭을 가지고 돌아왔다. 알베르게 관리자의 차를 타고 전 마을의 알베르게에 찾아가서 가방을 찾았다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말했다.


"배낭을 찾아서 다행이에요."


"응, 다행이야. 고마워."


"뭐가요?"


"그냥... 너의 존재 자체가 고마워."


'존재 자체로 고맙다'는 그 말을 나는 머릿속으로 곱씹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울컥하며 나는 그녀 앞에서 에스테야의 침대 위에서 미처 쏟아내지 못한 눈물을 한껏 쏟아냈다. 그녀가 내 안의 깊숙한 곳 그 어딘가를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카뮈의 반항은  세계를 나쁜 곳이라고 일축하고(쇼펜하우어처럼) 삶을 끊임없는 고난의 연속이라고 인식하기는커녕 "삶에 대한 강렬한 식욕"으로부터 영감과 기반을 얻는다. 삶을, 아름다움을, 감각적인 즐거움을, 인체의 따스함을, 인간의 사랑을 강렬하게 갈구한다. 상실감이 깊이 사무치는 순간에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가 지금 그대로 존재하기를, 시간이 실재하지 않기를, "누구도 늙지도 죽지도 않고 아름다움이 소멸되지 않으며 삶이 언제나 활기와 광채를 내뿜는 나라로 도피"하기를 바라도록 만드는 것은, 이런 것들이 불가능하며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뭐라고 주장하든) 앞으로도 불가능하리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바라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삶에 대한 광적인 열정"이다.

미하엘 하우스켈러(2021). 『왜 살아야 하는가』, 추수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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