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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은 Sep 17. 2024

나의 까미노 가족

Carrion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루트, 순례 16일 차   2024.04.20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그 길 위에서 유난히 자주 보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순례길의 출발지인 생장에서 같은 날 출발한 사람들과는 확률적으로 자주 마주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만의 속도가 있고, 갈림길에서 엇갈릴 수도 있으며, 각자 순간의 선택에서 수많은 변수를 낳기도 한다.


그 우연들이 맞아떨어지는 것도 참 기묘한 일이다.


물론, 매일 같이 마주치게 되어도 어떤 것이 서로 맞지 않는다면 인연이 되기 쉽지 않지만, 단 한 번을 봤어도 어떤 것이 잘 맞고 통한다고 느꼈다면, 그 인연을 놓고 싶지 않아 어떻게든 이어가게 된다.  


내가 H와 첫날부터 마주하게 된 것, 13살 나이차이가 나는 Y와 내가 깊숙한 어떤 부분에서 닮아 있다는 점과 그것을 서로가 알아봤다는 것, S의 순수하고 무해한 질문들이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것... 어떤 공통분모도 없는 요소들이 정해진 위치에서 같은 시공간에 맞물렸다는 것, 또는 각자가 뿜어내는 보이지 않는 물질들이 케미스트리 만들어 냈다는 것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이런 것들을 통틀어 '인연'이라는 단어로 간단히 수식하고 싶다. 우리 넷의 인연은 순례 16일 차 카리온에서부터 맞물리기 시작했고, 이들은 나의 까미노 가족이 되었다.  





S는 팜플로나의 공립알베르게에서 만나게 된 나보다 6살이 어린 소녀이다. 어쩜 이리도 사랑스럽고 무해한 존재가 있는지, 그녀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160cm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그녀의 키는 통통한 볼 살과 하얀 피부 때문에 더 아담하고 작게 느껴지는 듯했다. 순례길 위에서는 가끔 길이 가파르거나 더운 날이 될 때면 지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대부분 좋은 기분을 유지했으며, 새로운 아침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에너지를 한가득 뿜어 냈다. 자신이 지금 느끼는 기분에 따라 길 위를 통통 뛰어다니는 그녀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 강아지를 연상케 한다.


그녀는 예의가 바르고 싹싹했다. 말투에 그렇게 느끼게 하는 그녀 특유의 붙임성이 묻어났다. 그녀가 사회생활을 한다면 사수에게, 선배에게 예쁨 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줄 곧 머릿속에 스쳤다. 애교가 많고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지만, 그런 것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는 법 없이 무엇인가 에서는 아주 야무지고 똑 부러졌으며, 자기주장도 똑똑히 했기 때문이다.  


일행 중에서 S는 막내였는데,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막내라는 이유로 잡다한 것을 맡기거나, 자연스레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 때면 모두에게 소리쳤다.   




“왜 막내가 이런 것들을 해야 하냐고!”  




또는 그녀가 막내이니까 자신이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나설 때면,‘사회생활 잘한다’는 그런 폭력적인 말과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꼰대가 따로 없다며 나는 다그쳤고, S에게도 막내라고 하는 게 어디 있냐며 그러지 말라고 한마디 했다. S는 내 친동생과도 같은 나이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그녀를 더 동생처럼 애틋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와 같이 길을 걸을 때면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고, 그녀의 질문은 상상을 초월하며, 그녀와 같이 걷는 시간은 잠시 현실을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S는 느티나무를 좋아하고, 초록색을 좋아하며, 사람을 좋아하고, 기분이 좋을 땐 "지금 딱 기분이 좋다!"라고 하고, 섭섭함을 느끼면 뾰로통한 표정을 가지고 "나는 그래서 섭섭했어"라고 입 밖으로 말한다. 그녀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풀과 꽃, 나무와 나뭇잎, 벌레, 구름, 돌을 보고 만지고 말한다. 돌의 모양이 ‘하트’이고, 구름의 모양이 ‘공룡’이라고 말한다. 새벽하늘의 카시오페아와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찾아 구분할 줄 알고, 쏟아지는 별들의 집단 은하수를 보고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감탄을 연발한다.


지금 걸으면서 우리가 맡는 냄새는 ‘옥수수수염’이라고 얘기하고, 앞에 보이는 산과 흙의 조화가 ‘녹차 초콜릿’이라고 얘기한다. 노을이 지는, 따스한 햇빛이 황금빛으로 가득 채운 나른한 세상의 컬러를 ‘피치 살구’라고 얘기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까르르’하고 웃는 그녀는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이 많고, 별님이라는 고동색 푸들 강아지를 키우며, 동물을 사랑한다. 순례길 위에서 마주치는 개와 고양이에 발걸음을 멈추고, 초원의 말, 목장의 소, 길 위에 지나가는 양 떼를 보고는 그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그녀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며, 말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을 행동한다.


S는 우리가 현재에 존재하게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아니 어쩌면 우리가 오래전 잃어버린 직관적인 시각과 순수한 감성을 여전히 소중하게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사소한 것에서 재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아이였다. S는 우리가 보통 삶에서 느끼는 고통의 이유가 가치가 없는 것으로,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소녀이다. 그런 그녀는 H와 Y 그리고 나, 세명의 영혼을 치유하기에 충분한 존재였다.   





우리가 함께 까미노를 걷는 것은 서로에게 의미가 있었고, 어떤 이유가 되기도 했다. 우리 넷의 동행은 자연스럽게 계속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대화에 깊이감이 깊어졌다. 그럼에도 우리 넷은 각자가 서로 공유되고 있는 것이 달랐다. 내가 S와 Y에게 공유되는 것은 H가 S와 Y에게 공유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S 그리고 Y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H에게 S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어둠이 빛으로 인해서 사라지듯, 쓸쓸하고 어두운 그는, 순수하고 해맑은 S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나와는 공유되지 않는 S와의 그 무언가에 대한 질투심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가 나와 관계를 맺는 것의 형태와 질량은 S와 관계를 맺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나는 흉내 낼 수도 따라 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그런 모순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H는 사업을 했다. 순례길에 오기 전, 그는 친구와 지인 몇 명과 동업을 했고, 사업의 규모를 꽤나 크게 키웠던 모양이다. 친구라는 관계를 보증으로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기에 버거워진 사업의 규모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나타난 책임 전가와 회피는 차라리 친구가 아니었더라면 잘라 내기 쉬웠을지 모를 일이다. 남은 것이라고는 적절히 처리하지 못한 관계로부터의 허망함, 책임의 대가, 빛 더미. 그리고 믿었던 여자와 친구로부터의 배신…. 배신의 상처….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왜 이토록 우리를 아프게 하는가. 돈도 계약서도 그 어떤 것도 이것에 비할 순 없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H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아픈 감정이 외양으로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는 굳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우리 일행을 잘 알고 있는 어느 중년 부부가 어느 날 나에게 전해준 이야기이다.




“처음에 그 사람은 너무 어두웠어, 얼굴도 새까맣고 옷도 가방도 죄다 새까매서 그런가?” 라며 부인이 ‘호호호’ 웃으셨다.




“근데 지금은 처음이랑 너무 달라. 표정이 밝아졌어. 그런지 몰라도 꼭 다른 사람 같아.”라며 남편이 얘기를 하곤, 그 부부가 서로 맞다고 맞장구를 치며 나에게 얘기했다.




이것은 분명 H에게 우리가 필요한 또는 함께 걷는 이유가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행과 같이 걷는 것이 나 또한 소중했다. 그러나 나는 이따금 일행 속에서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외동으로 자란 S는 혼자 걷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게 될 때면 그녀는 외로움과 지루함을 느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혼자 걷는 방법의 몇 가지 꿀 팁(?)을 일러주기도 했는데, 지루함이 느껴질 때 노래를 들어보는 것으로 순례길에 어울리는 플레이 리스트를 일러주기도 했다. 또 노래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거나 길 위에서 리듬에 맞춰 혼자 춤추는 것.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오감으로 자연을 만끽하는 것. 풍경을 눈에 담고, 흙 길과 돌 길이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감고 햇살과 바람을 피부로 느끼는 것. 지금 내가 느껴지는 감정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 지루함과 외로움을 포함한. 혼자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음으로, 감정에 빠져 슬퍼질 땐 엉엉 울고, 화가 날 땐 쌍욕을 날리고, 즐거울 땐 소리 내어 웃는 것. 또는 어떤 문제나 감정, 주제를 가지고 길을 걷는 하루 온종일 깊게 고민하고 생각에 빠져보는 것 등.


혼자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곤 했지만, 그녀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로부터 느끼는 나에 대한 섭섭함을 내가 모르는 일 없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감정을 무시할 수 없었으므로 이따금 난처해지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 일행의 맏언니인 Y가 나서곤 했다.   




Y는 우리 일행의 중재자 같은 역할을 했고, 리더십도 있었으며, 나, H 그리고 S 세 사람에 대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깊숙이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누구에게 이해시키려 하지도, 개인적으로 은밀히 공유되는 것을 다른 이에게 가볍게 털어놓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통해 우리가 서로 끈끈한 애정을 느끼게 한 것을 나는 줄 곧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Y에게만큼은 진짜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나의 이야기는 Y이기 때문에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는 내 이야기가 들리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이야기를 할 때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작용하는데 표정, 분위기, 말투나 어조, 호소력 같은 부가적인 것들을 다 제거하더라도, 어떠한 방식으로 그녀는 나의 깊숙한 곳까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 또한 그런 그녀를 정말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수준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난 이것을 표현할 방법으로 그녀의 그릇의 크기를 말하고는 했다. 그녀의 내면의 그릇이 얼마나 크고 깊은 지 겉으로는 티 나지 않는 또 티 내지 않는, 외양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그녀이기에, 나는 그녀가 늘 궁금했다.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자신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지만, 만약 내가 그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면, 외로운 그녀 또한 누군가에게 품어지는 그런 그릇을 가진 사람이 옆에 생기길 진심으로 바란다.


난 그녀에게 내가 그런 사람이 돼 주길 바랐지만, 그녀와 함께 할 땐, 그녀가 나를 품어 주기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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