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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은 Sep 24. 2024

같은 침대에 눕고 싶어

Leon ~ Astorga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루트, 순례 20일 차~23일 차   2024.04.24~04.27




순례 20일 차 오늘의 목적지는 레온이다. 레온 또한 순례자 길 위에 손에 꼽히는 대도시이다. 우리는 여전히 넷이 걷고 있었다. 

오후 두 시경, 레온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도시에 매력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레온 대성당 앞의 알베르게를 예약했고, 레온 대성당에서 정각마다 울리는 종소리에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해가 저문 저녁, 우리는 다 같이 레온의 밤을 구경하려 거리에 나섰다. 레온의 밤, 느낌은 낮과는 또 달랐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연상케 하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길거리의 조명, 밤하늘 아래, 또 다른 모습으로 서 있는 레온 대성당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름다운 레온의 밤 풍경에 빠져들었고, 나는 이 매력적인 도시 레온에서 연박을 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S와 Y는 계획대로 다음날 계속 걷기로 했다. H는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나와 같이 레온에서 연박을 하기로 했다. 





이 로맨틱한 도시에 나는 H와 단 둘이 남겨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내가 H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다른 일행과는 조금 다른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도 느끼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나에게 집중하기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른 이 산티아고 길 위에 매일 같이 등장하는 그에 대한 생각이 괜한 시간낭비가 될까 봐, 그 시간이 가치 있게 쓰이지 못할까 두렵기도 했다. 그에 대한 생각이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 혼자만의 상상이고 착각일까 봐. 


감정이란 것을 무엇으로부터 확인받을 수 있을까? 내가 느끼는 것을 너도 느끼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그것을 서로가 확인한다는 것은 무슨 결말을 낳게 할까? 




어제 레온의 밤을 늦게까지 즐긴 우리는 오전 느지막이 일어났다. H와 나는 S와 Y의 순례길을 응원하며 배웅을 했다. 넷이 있다가 그와 단둘이 남겨진 느낌은 묘했다. 

이 날의 날씨는 쌀쌀했고, 살짝 흐렸다 개었다 했으며,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다 같이 있을 때, 들떠 있던 기분이 한 층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이 레온이라는 도시를 더 매력적이게 만들어 줬던 날씨와 기분이었다. 혹은 그와 단 둘이 같이 보낼 수 있었기에 그 도시에서 느꼈던 모든 것을 매력적으로 느꼈다. 


나는 그의 무엇에 매력을 느끼는가? 우리가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러한 감정을 나는 그에게 느낄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서로에게 느끼는 이 감정은 이곳에서만 한정되는 순간적인 감정인 것인가? 


나는 서로를 운명이라 생각하며 온갖 것들을 꿰맞추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힘들었던 사건을 겪었던 것이, 내가 퇴사를 결심하고 산티아고를 가야겠다고 결정했던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했다. 보통은 프랑스 도심에서 바욘까지 기차를 타고 가지만, 그와 내가 굳이 힘들고 느린 야간버스를 선택했다는 것과 동시에 같은 시간 때의 버스를 타고 왔다는 것이다. 바욘에서 내가 버스에서 내렸을 때, 바욘의 그 거리의 벤치에 앉아있는 그를 내가 좋지 않은 인상으로 봤다는 점과 그가 나에게 티켓팅 도움을 요청했지만 내가 도와줄 수 없었던 사실에 괜한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이, 내가 원하지 않음에도 그와 같이 있을 의무감 같은 것을 부여했다. 그 의무감으로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나는 그의 어떤 것이 편하다고 느낀 동시에 미묘한 설렘을 느끼고 있었다. 팜플로나의 저녁,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내가 그를 연민하게 된 것에 나는 내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와 마주하게 된 모든 사건들에 서사적 논리를 부여하고 있었다.  





나의 실수는 이 애정의 호르몬 옥시토신이 일으키는 화학적 반응이 운명적으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라 한정적으로 믿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호르몬의 장난질에서 내가 그에게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하는 일은 내가 산티아고에서 결심했던 것, 머리를 따르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이 흐르는 데로 하는 일이었다.  




나는 레온의 그 매력적인 도시에서 그에게 매력을 느꼈던 순간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우리는 레온의 그 우산을 쓰기도 안 쓰기도 애매한 날씨 아래, 추적추적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 가랑비가 옷을 적시려 할 때, 즉흥적으로 들어간 소박하지만 세련된 와인바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표현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의 어떤 행동들에서 그의 반응을 유추하고는 했는데, 그가 뭔가에 동의를 하거나 무언가에 긍정하는 생각이 들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앞뒤로 천천히 흔든다는 사실이었다. 또 그는 오랫동안 나와 눈이 마주치면 머쓱한 듯 "뭐"라는 입모양을 만들어 내곤 했는데, 그러한 행동과 그가 짓는 표정들에서 나는 그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낭만적인 밤을 가진 이 도시에서 우리는 같이 거닐었고, 특별한 내용 없는 이야기를 나눴으며 감정에 충실했다. 




"섹스는 본능적이고, 반성하지 않으며, 자연발생적이다."라고 알랭 드 보통의 저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말하고 있다. 사랑을 확인하는 것에서 섹스는 과연 몇 퍼센트의 비중을 둬야 할까?


일행과는 하루 차이만큼 거리가 벌어졌으므로, 우리 넷이 어느 도시에서 만나자고 따로 약속을 잡기 전까지 H와 나는 둘이 걷게 되었다.


 순례 23일 차의 목적지 아스트로가까지 오는 길은 순례길을 걸은 이례로 꽤 많은 양의 비가 왔기 때문에 배낭 속에 자고 있던 우비를 처음으로 깨우게 됐다. 우비를 입고 걸어도 쌀쌀한 날씨 탓에 내 온몸은 걷는 내내 으슬으슬 떨리고 있었다. 이 신체적 반응은 우리가 서로를 육체적으로 끌어당기는데 확실한 기여를 했다. 심리학적으로, 이 신체 반응의 변화인 떨림을 사랑의 감정으로 오인하기 쉽다는 것이다.  




아스트로가의 한 알베르게에 도착한 우리는 수속을 밞았고, 룸을 배정받았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는 2층이었고, H가 배정받은 침대는 1층이었다. 그는 나에게 1층 자리를 양보해 줬다. 비가 오는 날씨 덕분에 알베르게의 작은 룸 안의 공기도 싸늘했다. 나는 비에 젖은 몸을 씻기 위해 공용욕실로 향했다. 공용욕실의 물은 온몸에 둘려 싸인 냉기를 씻어낼 만큼 충분히 뜨겁지 않았다. 물이 꽤 차가웠으므로 씻고 나온 나는 오히려 더 춥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1층 침대에 펼쳐놓은 침낭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때 H가 젖은 머리로 들어왔다. 2층 침대 위를 정리하더니, 1층 침대를 나에게 양보해 준 것을 마치 후회라도 하듯,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이더니 1층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같은 침대에 눕고 싶어”  




그가 말하며 내 침낭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그의 살갗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으므로 내 몸을 감쌌던 추위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내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을 때, 그것이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심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알랭 드 보통에 따르면,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생각은 신중하고, 말려들지 않으려고 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나는 이성의 끈을 붙잡고 키스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알베르게에 있으며, 절제가 최선이고, 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것에 육체적 본능이 아닌 정신적 판단을 원했다.  




“못 참겠어, 빨리 2층으로 올라가”  




나는 그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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