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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은 Sep 17. 2024

순례 27일 차: 까미노에 시작과 끝이 있듯 삶도...

Fillobal





4월 초 시작한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느덧 벌써 27일 차 5월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맘쯤 따뜻해야 할 날씨는 이상하게도 너무나 추웠다. 높은 고도 탓에 내가 서있는 곳이 하늘에 맞닿아 있듯 나는 자욱한 안갯속을 걷고 있었다. 이상기온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 날의 날씨는 비와 눈의 중간쯤 되는 것이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습한 기운은 피부에 찰싹 달라붙어있었다.


나는 까미노 가족을 만나 함께 걸었다. 아침 일찍 걷기 시작한 Y와 산으로 가는 오르막의 중턱에 있는 한 카페에 들어섰다. 이 정겹고 소박한 마을과 지금의 날씨에 잘 어울리는 오두막집이었다. 카페로 들어서자 거대한 벽난로가 시선을 끌었다. 실제로는 본 적 없는 영화 같은 것에서 본 적 있는 듯한 그런 비주얼의 벽난로였다. 네모난 벽난로 안쪽엔 장작들이 버얼건 불빛을 내고 다닥다닥 따뜻한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차갑고 축축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벽난로 근처에 자리를 잡고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오르막을 올라오며 느꼈던 갈증은 해소됐고, 몸을 감쌌던 습기가 날아가고 있었다.





카페에서 몸을 녹인 우리는 목적지인 필로발이라는 작은 마을로 향했다. Y는 이 지역의 특색인 칼도 갈레고(caldo gallego)라는 음식을 이야기했다. 우리나라의 시래깃국 또는 된장국 같은 맛이 나는 음식인데, 꼭 맛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뜨끈한 국물이 간절히 먹고 싶어지는 그런 날씨였음으로 나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칼도 갈레고를 파는 맛집을 예약하기 위해 그녀는 전화기를 꺼냈다. 우리가 오늘 도착하는 알베르게의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식당이라고 했다. 그녀는 그 식당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간단한 영어로 오늘 식당이 운영은 하는지, 우리가 도착 예정인 오후 6시 즈음 저녁으로 그 음식을 먹을 수 있을지를 물었다.

전화기 속으로 들려오는 푸근하고 다정한, 머리는 힛긑하며, 얼굴엔 세월의 잔 주름이 웃는 표정으로 지긋하게 지어지는, 짧은 콧수염을 가진, 그 60대 후반의 한없이 다정한 식당 주인아저씨의 "sí, sí!"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간단한 대답을 하는 전화 속 목소리로 나는 그가 어떤 인상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모습의 사람인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출발하기 전 알베르게도 예약을 했고, 오늘 저녁을 먹을 식당도 예약했다. 눈앞으로 펼쳐진 눈 내리는 설산을 넘어가는 일이 남았다. 습도 가득한 공기 속에서 추위에 맞서기 위해 우리는 우비와 바람막이의 모자를 쓰고 단단히 동여 맺다. 장갑과 양말을 있는 대로 노출되는 피부를 숨겼다. 그럼에도 얼굴에 닿는 차가운 공기는 어쩔 수 없었다. 새벽 밤 일찍이 내린 서리가 녹고 있었다. 정오가 되니 우리가 걷는 흙길이 질퍽거렸다. 걸음도 불편했고 추운 날씨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 펼쳐진 상고대가 반짝반짝 달린 나무들은 너무 아름다웠으며, 그 나무를 품고 있는 이 새 하얀 설산 가운데의 우리는 마치 스노우볼 안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담아두고 싶어 셔터를 연신 눌러 찍힌 내 핸드폰 속 사진은 눈앞의 경관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해발고도 1270m를 넘어선 때는 오후 1시 를 넘기고 있었다. Y와 나는 한 카페에 들어가 뒷따라오는 H와 S를 기다리며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시작한 후로 나는 주로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카페 콘레체(café con leche)를 마시게 됐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빠지게 된 스페인의 음식은 토르티야(Tortilla)이다. 토르티야는 스페인 가정식으로 감자와 치즈 등을 넣고 한 두툼하고 포슬포슬 오믈렛이다. 바 또는 카페에서 와인이나 커피를 시키면 곁들여 먹을 수 있게 토르티야를 주는 곳이 있다. 그렇게 처음 맛보게 된 토르티야는 내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제일 많이 시켜 먹었던 음식 중에 하나이다. 간단한 점심으로 토르티야와 곁들여 나온 빵을 먹었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이곳 갈리사아 지역의 날씨가 개기 시작했으므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오고 있는 일행을 기다리며 와인 한잔을 마셨다.







날이 갰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내리쬐는 햇빛이 따스하다가도, 금세 먹구름이 태양을 가리면 여전히 쌀쌀했다. 일행을 만나 목적지의 알베르게로 걸어가는 길에는 다시 눈이 흩뿌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날씨였다.

오후 5시경, 우리는 목적지인 마을 필로발에 도착했다. 필로발은 알베르게도 이곳 하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도 오전에 전화 예약 했던, 바로 옆 식당이 유일한 아주 작은 마을이다. 알베르게에 들어선 우리가 체크인을 하려는데, 옆의 식당 사장님이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서 그곳에서 저녁을 먹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베르게 주인은 예약을 취소해 줄 수 있으니, 원하면 다음 마을로 가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궂은 날씨에 더 이상 걷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우리는 그냥 이곳에 머무르겠다고 했더니, 알베르게 주인이 무료로 저녁을 제공해 주겠다고 했다.



알베르게에 배정받은 침대에서 각자 짐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고 빨래를 했다. 하루 일과가 마무리되고 저녁식사와 일과의 뒤풀이를 하려는데 날씨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비가 억수로 쏟아졌으며, 천둥 번개마저 내리치기 시작했다. 하늘이 뚫린 것 같은 빗소리와 천둥 번개 소리에도 이상한 적막함이 감싸는 슬프고 쓸쓸한 날씨였다. 알베르게 안 우리 일행 네 명을 제외하고, 또 다른 네 명이 있었다. 총 여덟 명의 순례자가 제공되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긴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가 먹고 싶었던 칼도 갈레고와 토르티야, 바게트 빵 그리고 와인이 제공됐으나, 여느 때와 다른 저녁식사 분위기가 알베르게 안을 감돌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순례자들끼리 와인잔을 부딪치며 오늘의 순례길의 에피소드와 느낀 점을 공유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떠들썩한 저녁분위기 일터이다. 우리는 서로 어느 나라에서 온 누구인지 간단한 소개를 나눈 뒤로는 창 밖으로 내리치는 빗소리와 음식을 먹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우리는 무료로  저녁식사를 대접해 준 알베르게 주인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뒤, 설거지를 하려고 일어섰다. 그리고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다. 알베르게 주인이 나서더니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며 우리를 말렸다. 그녀는 우리가 정리하던 그릇을 뺏어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 설거지를 하는 그녀 뒤에 우물쭈물 있던 나는 갑자기 그녀의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보게 됐다. 오늘 오전 전화기 속에서 들렸던 그 다정했던 목소리의 식당주인, 그 아버지의 심장마비 소식을 전하는 딸은 지금까지 애써 꾹꾹 눌러왔던 슬픔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설거지를 하는 손은 계속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자신을 슬픔에 잠기지 않도록 뭔가를 해야만 하는 힘겨운 몸부림 같아 보였다. 그 모습이 더 힘겨워 보였던 그녀에게 나는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를 안았다. 꽤 긴 시간 동안 나와 그녀는 안고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그녀보다 더 큰소리로 이성을 잃고 울고 있었다. 이것은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나 자신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마구 쏟아졌다. 통제할 수 없었다. 나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그녀를 안았던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슬픔의 덩어리가 내 안으로 무겁고 깊숙하게 쑥 하고 덮쳐 들어왔기 때문에 너무 고통스러웠다. 뭔가에 압도당한 느낌이 들었다. 대략 이십 여분이 흘렀을 때, 나는 간신히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나는 진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므로,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 잠이 들길 기다렸다.



무섭게 쏟아지는 비, 거칠게 내리치는 천둥과 번개, 먹구름이 감싼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절벽 위에 서있는 그녀는 가만히 그 비를 맞고 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끼며 울고 있다. 구슬프게 우는 소리가 마음을 아리게 한다. 나는 그녀가 그 절벽 아래로 걸어 들어갈 것만 같아 마음 졸이고 있다.

악몽을 꾸다 벌떡 일어난 내가 침대를 박차고 공용거실로 뛰어간 것은 누운 지 한 시간가량이 지난 후였다. 저 공용거실 앞, 입구에 있는 저 문을 열면 그녀가 서서 비를 맞으며 울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꿈이다.





내가 다시 침대자리로 돌아왔을 때, 일행들이 나에게 괜찮은지 물었다. 괜찮지 않았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한테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인데 같이 슬퍼한 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으므로, 우리는 가져왔던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산티아고 순례. 앞으로 걸을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까미노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끝이라는 아쉬움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함께 울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마지막 퇴실 시간인 8시까지 기다린 나는 결국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쪽지를 남겼다. 내 감정을 정확히 담을 수 없는 제대로 번역되지 않을 핸드폰의 번역기를 돌렸다.



나는 결코 당신의 그 슬픔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다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순례길의 까미노에 시작과 끝이 있듯,

삶에도 탄생과 죽음이 있습니다.

마음껏 슬퍼하도록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너무나도 불안정하며 너무나도 많은 조건에 의존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사소한 변화(예컨대 몇 도 수준의 지구온난화)만 주어지더라도 낭떠러지 아래로 떠밀려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죽음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잠시 동안만 살아 있을 뿐이다. 삶이란 부존재에 맞선 끝없는 투쟁이다. 더 중요한 점으로 삶이란 우리가 승리할 수 없는 투쟁이다. 결국에는 부존재가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삶이 무엇인지 고려했을 때 삶이 결국 끝난다는. 그것도 꽤 빨리 끝난다는 사실은 가장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 만물이 지나간다는 사실, 만물이 시시각각 변화한다는 사실, 만물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 시간이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는 사실은 모두 참이다. 하지만 기억은 시간이 소멸시킨 대상을 간직하고 있다가 그 대상에 다시 숨결을 불어넣는다....

미하엘 하우스켈러(2021). 『왜 살아야 하는가』, 추수밭출판사




나는 이곳을 벗어난 이후, 까미노를 걷던 날들 중 가장 힘들 날들을 맞이하게 됐다. 그날의 슬픈 감정은 아직 남아있었고, 궂은 날씨는 계속 이어졌다.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걷는 길은 진흙탕이 돼버렸으므로, 바지 밑단과 신발을 더럽혔다. 신발 안까지 빗물이 들어와 며칠 동안 발을 꿉꿉하게 만들었다. 또 두세 번 길을 헤맸기 때문에 예상도착시간 보다 훨씬 늦게 도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H와의 생긴 오해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하루 종일 걷는다는 것은 지옥을 걷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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