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알아

괜찮을 거야

by 아침햇살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세계가 여전히 술렁입니다. 우한발 코로나 시작 때 만해도 이렇게나 오래도록, 이렇게나 전 세계적 문제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요. 좁아진 지구촌, 빨라진 세상은 바이러스도 순식간에 확산시켰고, 백신을 맞아도 재 감염 될 수 있고, 치료제는 금방 나올 듯하다가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변이로 언제나 가능할지 기약이 없는 상황입니다. 접촉에 의해 전파되기 때문에 모임이 제한되었고, 직장, 학교 등이 재택근무와 온라인으로 대부분 전환되었습니다. 이마저도 2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보니 익숙해지기도 했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불안감과 답답함은 마치 이 그림책의 표지 속 아이의 얼굴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는 홀로 버스를 타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시내로 나아갑니다. 회색빛 도시의 차가움 속 혼자라는 두려움으로 온몸이 움츠러들지만 아이는 큰 가방을 등에 매고 높은 빌딩 숲 사이, 작은 골목 사이사이를 누빕니다. 설상가상으로 날이 어두워지며 바람에 눈보라까지 휘날리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획대로 쉼 없이 움직입니다.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통풍구에서 몸도 녹이고, 익숙한 생선 가게와 빈터, 빨간 벽돌로 지은 교회와 공원 등등을 홀로 뚜벅뚜벅 걷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책의 마지막 즈음 작가는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 살짝이 보여줍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기 위해 한 나절을 차갑고 무서운 도시와 궂은 날씨를 뚫고 움직였던 것이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책은 그림에서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글에서는 누군가가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골목길을 지나갈 때도, 뽕나무 덤불 아래를 지나갈 때도, 통풍구 앞, 빈터를 지나갈 때도 그곳에서 함께 했던 추억과 더불어 주의해야 할 것을 일깨우는 따뜻한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 골목골목마다 등장합니다.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서, 어두움이 덮이고 세찬 눈바람이 흩날렸지만 아이는 그곳에서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를 마음으로 들으며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자신의 길이지만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잃어버린 작은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지고.


저에게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때까지 꽤 오랜 기간 삶 가까이에서 함께 해주신 선생님이 한 분 계십니다. 철없는 중학생, 고등학생 때, 늘 옆에 선생님이 계셨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고 그다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때가 되어 대학교에 들어갔는데 하늘 같은 선배들이 그 선생님과 책 읽는 모임을 하는 게 어찌나 부러운지. 책 내용과 상관없이 무조건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책이 눈에 들어오고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의 첫 책 모임이었지요. 그런데 이 모임에서 그 선생님이 늘 저에게 예쁜 말들을 해주셨습니다. “난 네가 너무 이뻐. 늘 이렇게 성실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니” 집에서 늘 못났다고 구박을 받고 자란 저로써는 너무 신기하고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선생님께서는 성실한 나를 칭찬하는 말씀이셨지만 이쁘다는 말이 고팠던 저는 거기에 무게가 실리고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떠들 말도, 지식도 없었지만 그냥 배시시 웃으며 선생님과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20대 절반을 보냈습니다. 매주 한 번씩 5년을 그렇게 만났으니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길로 헤어졌습니다.

30대가 되어 다시 만난 선생님은 여전히 선한 웃음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선생님은 해외로 이민을 가게 되셨고, 잠시 일이 있어서 한국을 들렀는데 우연히 연락이 닿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옛 추억 가득한 사건들, 언니 오빠들과 함께 놀러 갔던 장소들을 되짚으며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 선생님을 숙소에 모셔드리고 인사를 드리고 차를 몰고 나오는데 선생님은 제 차가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옛날, 인정과 사랑의 말이 고팠던 내게 예쁘다고, 사랑한다고 말과 눈빛으로 보여주셨고 꽤 시간이 지난 지금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껴주고 믿어주는 선생님의 모습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사랑을 전하는 방법을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과 눈빛은 저의 마음에 깊이 남아 저를 그 선생님의 사랑과 믿음에 부족하지 않게 자라게 하였고, 이제는 그 믿음의 말과 눈빛이 다른 이들에게로 나가 또 다른 이들을 키워내는 힘이 되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를 알아. 너는 괜찮을 거야.”


오늘날 우리 모두가 듣고 싶은,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 말을 작가는 책 속에서 여러 번 반복합니다. ‘나는 너를 알아’라는 말에 마음이 뜨끔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이들이 나 하나 들여다볼 용기도, 여유도 없는데 너를 안다니. 여기에서 너를 안다는 말은 해결할 지혜와 용기가 있는 너의 능력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의 ‘너를 알아’라는 말은 너를 믿고 지지하고 응원한다는 편에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지금까지 내가 준 마음, 한없이 베푼 인정과 사랑의 말과 눈빛이 상대의 마음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내 아낌없는 사랑이 네게 닿아 너를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리라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내가 경험했던 그 사랑의 말의 힘이 이제 네 마음에도 있어 너를 자라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실수 없이 일을 해낼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실수하여도, 부족하여도 네 존재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가 안다는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님의 ‘그대 그 사람을 가졌는가’ 속 ‘한 사람’처럼, 긴 시간 속에서 인정과 사랑을 함께 주고받은 그 한 사람이 내뱉을 수 있는 시간과 경험에 근거한 응원의 말인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할 때입니다.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은 불안과 공포를 우리보다 더 온몸으로 받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인정과 사랑의 말과 눈빛을 쏟아부어 주리라, 가까이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 시간에 더 뜨겁게 말과 행동으로 사랑하리라고 다짐해 봅니다. 내 사랑의 깊이로 아이를 알아갈 수 있도록, 내 사랑의 너비로 아이를 안다고 말할 수 있도록. 아이 안에 우리의 사랑이 충만히 쌓여가는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그래서 서로에게 ‘괜찮을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 어느 날엔가 내 아이 안에서 이 믿음이 깊이 뿌리내리고 자라 또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과 눈빛을, 삶을 기꺼이 내밀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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