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웃는다

아이는 웃는다

by 아침햇살

마흔이 넘어 내 아이를 품에 안게 되었습니다. 한 번의 유산 뒤, 나이도 많은 터라 병원에서는 시작부터 고위험군으로 분류되었지요.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자며 이런저런 검사도 하라고 권유를 받았지만 우리 부부는 하늘이 주신 대로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고 편안하게, 그러나 정말 들뜬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렸습니다. 고위험군 산모라 진통 없이 그냥 예정일에 맞춰 병원에 들어갔고, 촉진제를 맞고 하루를 꼬박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어서 결국 수술로 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루를 꼬박 진통으로 기운을 다 빼고, 거기에 수술까지 했으니 몸은 정말 만신창이였습니다.


첫 시작은 무엇이나 그러하듯 어수룩하고 실수 투성이입니다. 천국 같던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산후도우미 아주머니와 시간을 보내면서 근근히 젖도 물리고, 아이와 놀기도 하고, 집안 일도 조금씩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젖을 물리는 일도, 아이의 뱃고래를 만족시키는 일도, 아이 울음소리의 의미를 구별해 내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낳고야 진짜 시작이라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고 산넘어 산을 매일 만나는 듯 했습니다. 산후도우미 아주머니는 표정도 없고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맛사지를 받으라고 권유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기력이 없어서 몸의 회복이 더딘 나이든 산모인 내게 맛사지는 몸을 더 힘들게 해 오히려 정상 컨디션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악수였습니다. 온 몸의 감각이 둔해 생각마저 둔하던 그 시절, 내 몸과 마음은 그렇게 휘둘려졌지요.


그래도 아이는 돌보아야 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일어나 아이를 안고 먹이고 입히고 씻겼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잠들면 나도 모든 걸 제쳐두고 그냥 쓰러졌습니다. 신생아 마냥 그렇게 잤지요. 아니 아이가 늘 나를 깨우러 왔으니 신생아보다 늘 늦게 일어난 셈입니다. 더 잘 놀아주고, 잘 반응해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무엇을 할만한 에너지, 의지가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과 스스로 몸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가득했지만 산후 우울로 몸도 마음도 무엇하나 추수릴 수가 없었습니다. 친정은 너무 멀리있어 도움을 받기가 어려웠고 다행히 남편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 우리 둘을 잘 보살펴주었지만 저의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일으켜 낼 방법을. 아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일상을 살아내고는 있지만 굳어져 버린 마음, 닫혀진 감각들을 살려내야 했습니다. 책방으로 갔습니다. 책 모임을 찾아다녔습니다. 지방 소도시에 살고 있는 저에게는 이마저도 쉽지는 않았지만, 책과 사람을 통한 마음의 환기가 절실했습니다. 작은 소모임을 만나 잠깐씩 밖을 다녀오면서 마음에 온기를 넣어보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그때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아이가 잠 자리에서 일어나 여전히 누워있는 내 옆에 다가와 그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말했다.


“엄마, 잘 잤어요?”


해 같이 맑고 빛나는 얼굴과 눈빛으로, 세상의 모든 사랑을 품은 싱그러움으로 내게 말해주었습니다. 물론 이 말은 제가 아이에게 아침마다 늘 해주던 말이었지만 저의 목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 순간에 온 사방을 빛나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찬란한 아이의 웃음과 목소리였습니다. 아이를 꼭 안았습니다. 따듯하게 오래오래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볼에는 눈물이 한 없이 흘렀고, 아이는 영문도 모른채 품안에 안겨있었습니다. 아이의 한없는 신뢰와 사랑이 담긴 그 순수한 목소리와 웃음이 저의 마음에 깊이 담겨진 순간이었습니다.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엄마한테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말해줘, 알았지?”


아이의 웃음이 약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과 몸의 고단함은 여전했지만, 아이가 보내준 햇살 한 조각이 굳은 마음, 칠흙 같이 어두운 나락과 같은 마음에 틈이 생기고 바람이 불고 빛이 스며들게 했습니다. 아이의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긴 호흡을 내쉬며 한 걸음 한 걸음 평온한 일상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말을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웃는다.

웃는 것 밖에 모르기 때문에, 아이는 웃는다.

더 이상 웃지 않는 어른을 보고,

아이는 웃는다.


아이를 위해 세상에 보내진 신의 대리자를 엄마라고들 하지만, 혼탁하고 상처 가득한 세상에 보내진 진정한 신의 대리자는 아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조건없는 사랑과 온전한 신뢰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아이들, 더 이상 웃지 않는 어른들을 향해 생기 가득한 웃음을 내보이는 아이들, 그럼으로 세상을 여전히 따듯하고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작은 존재들. 저 깔깔거리는 소리는 새소리 보다 아름답고 초가을의 미풍보다 청량하여 잠든 영혼을 단숨에 흔들어 깨웁니다.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닦아내며, 혼돈과 무질서를 완전히 잠재우고 온전하고 따듯한 것으로만 그 시간과 장소를 마법같이 채웁니다. 가장 순결한 것으로, 가장 정직한 것으로, 가장 작고 보잘 것 없지만 가장 중요한 본질로. 이것을 위해 창조주는 인간 세상에 또 다른 신들을 매일 선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도 내 앞에 온 창조주의 선물들에 감격하고, 그들에게서 웃음을 배우고 전적인 신뢰를 배우며 조건없는 사랑을 배웁니다. 내가 아이를 젖먹이며 키우는 줄 알았는데, 아이가 나를 햇살 같은 웃음으로 키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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