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쁘다고?
“되게 예쁘다.”
옆 짝꿍인 김경희가 수업을 듣다 말고 주인공에게 던진 이 말 한마디는 내내 그 아이의 마음에 질문을 만들어 냅니다.
“내가 예쁘다고?”
쉬는 시간에도, 수업시간에도, 밥을 먹으려고 줄을 서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운동장 정글짐에서 친구들과 놀면서도, 축구 교실에서도. 심지어 꿈에서도 이 질문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이 말이 익숙하지 않아서, 의미를 잘 알 수가 없어서, 내 옷같이 편안하지 않아서 자꾸 스스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해주신 이쁜 내 새끼라는 말을 떠올리며, 엄마가 해주신 예쁜 노을이라는 말에서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느끼기 시작합니다.
저의 어머니는 평생 날씬한 몸매에 크고 쌍꺼풀이 짙은 눈을 가진, 작지만 매우 여성스럽고 귀여운 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말도 많고 잘 웃기도 하고, 형제 많은 집에 막내로 태어나 나이가 들어도 애교가 많고 소녀 감성을 그대로 지니고 계시지요. 그에 반해 아빠는 큰 얼굴에 넓은 이마, 머리 숱도 적고 눈도 작고 과묵하신 성격으로 옛날 부모님의 신혼 초 경찰들이 초서에서 검문을 하면 주민등록증을 보자고 할 만큼 부드러운 외모는 아니셨습니다. 그분들의 첫째 딸인 저는 아버지 유전자만 독차지한 듯 판박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자식이 귀하지 않고 예쁘지 않은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다 내어주는 것이 부모인데 그 아이가 귀하지 않을 수 없고, 예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어른들의 언어는 반대로, 때로는 이중적인 의미를 띄고 사용해 아이들로 하여금 정확한 진의를 알기 어려운 때가 많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와 다르지 않아 가장 소중히 여기시면서도 ‘안 예쁘다’, ‘뭘 입어도 태가 안나니’라는 말씀을 때때로 무심결에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저의 말이 되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예뻐하고, 교회 오빠들이 예뻐라 하는데도 저에게는 그 말이 제 말이 아니니 편안하지 않았고, 제 옷이 아닌 듯 불편하였습니다. 뒤돌아 보면 ‘예쁘다’는 말에 그래 맞아, 고마워라고 긍정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몸둘 바를 모르고 고개를 숙이고 몸을 비틀어 댔고, 오빠들이 그렇게 말해주면 그 말이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내꺼 아니야’라고 스스로 그 말들을 마음에서 밀어냈습니다. 마음에 마음으로 반응하고, 사랑에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에 서툰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은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자신과 주변을 채워나가는 능력을 스스로 획득하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긍정적 자아상, 긍정적 성 정체성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거기로부터 더 멋지게 자신을 꾸미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성장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과 건강한 여성으로 말이지요. 부정적 신체상을 지닌 채로 사춘기를 경험하면서 더 많은 위축감을 느끼게 되었고, 다른 영역에서는 주도적으로 일을 하다가도 외모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말을 꺼내지 못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엄마는 바쁜 딸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딸의 옷을 사다 주었고, 저 스스로도 자신을 꾸미거나 아름답게 가꾸는 것과는 거리를 두고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몸의 외형에 마음과 영혼을 담고 있는 존재입니다. 마음도 나이며 몸도 나인 것입니다. 몸인 나를 무시하거나 돌보지 않으면서, 몸인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온전한 건강한 나로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타고 태어난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며 긍정적 자세로 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엄마로 인한 것이든, 아빠로 인한 것이든 그것에 대한 나의 잘못된 생각을 수정하고 이제라도 돌보며 가꾸며 살아야만 힘있고 건강한 여성으로 살 수 있으며, 동시에 내 두 딸아이에게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의 가치를 가르치고 보여주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예쁜 것은 행복하게 합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아이에게 그래서 늘 말해줍니다. “참 예쁘다.” 그런데 놀라운 건 아이의 대답입니다. “엄마가 더 예뻐.” 처음 아이의 이 말에 심장이 멈출 정도로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놀란 티는 내지 않고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행동했지만요. 이젠 아주 익숙하고도 능청맞게 대답합니다. “그럼 예쁘지. 예쁘고 말고.” 오늘도 아침, 저녁으로 누가 더 예쁜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안아주고 살을 비벼댑니다.
예쁜 것은 바로 나입니다. 예쁜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