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기적소리를 울려 봅니다.

일등석 기차 여행, 다니 토랑, 엄지영 역, 요요

by 아침햇살

원치 않는 삶의 풍파를 경험하면 대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정상적으로 기능을 하기 어렵습니다. 삶이란 경험해 보지 못한 일 투성이인지라 겪어보기 전에는 그것이 또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하기 어려운 일도 많지요. 특히 그 일이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일일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상황이 어긋날 때 정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습니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고 학교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젊은 시절 꿈이었던 전공을 다시 시작해 보려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다행이 아이를 낳고 근처 학교에 학과가 개설되어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진학을 했습니다. 즐거운 공부였지만, 아이들 키우고 실습과제들도 하느라고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분주한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다행이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주어 크게 힘들지 않았고, 남편은 바빠서 쩔쩔매는 저를 보고는 알아서 세탁기 빨래 담당을 해주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또 사람을 돌보는 일이었기에 보람과 기쁨도 있는 자리였습니다.


이왕 시작한 김에 박사과정까지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기회가 있으니 해 보자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회라는 것이 생각과는 너무나도 다른 일이었습니다. 갑자기 학과에 문제가 생기면서 학생들까지 수군거리에 되었습니다. 일은 일파만파 커져 수업은 진행되어야 했기에 교실에 가야했지만,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이 일어나고 이야기가 와전되고 서로 눈치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여 그 피곤함과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갔다오는 길은 늘 이걸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다니게 되었고, 수업의 내용과 질이야 더 말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졸업을 해도 무엇을 배웠는지 알수도 없고, 이렇게 해서 박사가 되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 전공과목을 거의 다 수강해가려는 시점에서 학교는 새로운 전공교수를 임용했습니다. 박사논문의 틀을 거의 완성시켜가는 지점에서 전공교수가 바뀌게 되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공교수와 오랜 시간 학술지와 논문을 위해 방향을 정하고 적절한 주제를 선정하여 깊이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한 논문의 과정을 모두 다시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의지,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온전히 외부적인 요인들 때문에.


그래도 좋은 교수님이 오셨으니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결단하고, 신임 교수님과 이야기를 여러 차례 나누어 보았습니다. 다시 주제를 선정하고 기본적인 문헌조사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실제로 논문은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한 학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뭔가 알 수 없는 무기력함이 제 안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받아들이고 새로 시작해 보자라는 생각이 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은 머리로 생각한 것이고 제 마음은 그걸 허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논문자료를 펼쳐야 하는데 다른 일들에 시간을 허비하고 오히려 다른 일들을 더 벌려놓기까지 했습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아무 소득 없이 한 학기가 마무리 되는 것을 스스로 보면서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찬찬히 저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였습니다. 제 안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한 깊은 원망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제 감정은 잃어버린 시간, 포기해야 할 논문 주제, 반쯤 써놓은 논문 원고에 대한 안타까움, 그 동안의 교수님들과의 관계, 슬픔, 속상함, 그리고 거기에서 시작된 분노와 그 무엇 하나도 내가 바꾸어 놓을 수 없다는 무력감이 제 안에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자연재해, 갑작스러운 사건과 사고, 건강상의 문제, 경제적 어려움이나 전쟁과 같은 수많은 변수들이 가득합니다.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내 삶을 조금씩 만들어오고 단단하게 해왔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갑작스러운 운명의 장난들은 삶에 어김없이 존재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일은 정말로 다른 문제였습니다.


그림책의 주인공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가난하지만 딸을 잘 키워 좋은 가문에 시집 보내려 애쓰던 부모님과 외동딸은 난데없는 전쟁으로 인해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가진것 없는 빈 털털이 신세가 됩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가운데 주인공은 혹여나 근사한 신랑감을 만날까 싶어 전 재산을 다 털어 1년짜리 일등석 기차 여행을 시작합니다. 때로 남자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마음을 내어주지도 못했고, 부유한 그들의 거들먹거리는 태도가 불편하기만 합니다. 오히려 일등석 기차에서 만난 젊은 차장의 담백하고 건강한 모습에 더 마음이 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년을 다 허비해버린 어느 날, 주인공은 새로운 기차의 차장으로 등장합니다. 그녀는 전쟁과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상황에 대해 낙심과 절망으로 한탄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부모가 만든, 세상이 만든 기준에 따라 자신의 삶의 모양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에게 의지하여 그 사람의 취향에 맞춰주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혹독한 삶의 시련 속에서 세상에 대한 원망을 벗어버리고 자기를 깊이 성찰하여, 드디어 내 안의 움츠린 본연의 나를 꺼내놓기로 결정합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세상에 대해 분노와 무기력으로 대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내는 사람으로 살기로 결정합니다.

저의 슬픔과 분노는 전쟁과는 비견할 수 없는, 부모님의 죽음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임이 명확합니다. 동시에 현재 진행형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튀르키예의 지진과 그 현장의 사람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떠오르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전쟁을 희망하거나 지진을 예측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분노와 슬픔이 그들 안에 있을 것인지 감히 가늠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저의 작은 경험이 이 일을 진심으로 헤아려보는 작은 출발점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이 그것을 가늠해 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 또한 아직은 선로를 이탈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이 흐트러진 나의 기차를 좀 다듬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차장의 자리에 다시 앉을 용기를 내어봅니다. 삶이 가르쳐주는 지혜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다시 나만의 길을 내어 보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기적 소리를 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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