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은 못생겼다. 거무튀튀하고 화강암을 연상케 하는 피부에 주먹코, 작은 눈, 작은 키는 어린 시절부터 여자들에게 남성이 아닌 하나의 덜떨어진 인류 정도로 인식되기 충분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M에게는 공부 머리가 있었고, 못생긴 외모로 기인한 소심한 성격 탓에, 동성 친구조차 몇 없었으므로, 원치 않게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색의 시간으로 인해 나름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M의 장점을 아는 친구들은 M의 매력에 한없이 빠져들어 영혼을 탐색하는 시간을 즐기곤 했지만, 대개 청소년기 남자아이들이란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보통은 운동장에서 축구나 농구를 즐기거나, 교실에서 슬리퍼를 날리며 놀았고, 하교 이후에는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 M은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외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언제나 구부정한 자세로 다녔고, 앞머리는 최대한 눈썹 아래로 내려 기르며 조금이라도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대개 검은색 후드티를 입고 다니면서, 옷에 달린 모자를 머리 깊숙이 눌러썼다. 그러다 보니, M은 자연스럽게 어린 나이임에도 척추측만증으로 고생했고, 혼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것으로 시력을 혹사해, 자연스럽게 높은 도수의 안경을 착용했다. 그렇게 물 흐르듯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불행하게도 M은 게임 실력도 형편이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M은 학창 시절 반에서 한 명 정도는 꼭 있을 법한 ‘조용하지만 공부는 잘하는 친구’ 정도로 인식되었고, 가끔 급식을 같이 먹는 한두명의 친구 외에는 어울리는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M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은 십수 년이 지난 2024년의 일이었다. 존재감 없던 친구였던 기억과는 달리 M은 인터넷 기사에 실릴 정도로 유명 인사가 되어있었다.
M은 살인자가 되어있었다.
동창들 사이에서 떠들썩했던 M의 살인사건은 처음에는 ‘M이 그럴 리 없다.’로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녀석 언젠가는 그렇게 될 줄 알았다.’로 끝났다. 학창 시절 M이 쉬는 시간에 혼자서 샤프를 가지고 나무 책상 모서리를 파는 모습이 섬뜩해 보였다던가,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고개를 까딱이는 모습이 소름 끼쳤다는 등의 지금으로써는 확인할 길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이 난무했다. 특히, 학교에서 다들 슬리퍼 형태의 실내화를 신었는데, M만 유독 초등학교 때나 신었을 법한 신발형 하얀 실내화를 신고 다니고, 신발주머니도 매번 들고 다녔다는 것을 봤다며, 어딘가 가정에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 돌았는데 내 기억에는 M이 특별한 모양의 신발을 신고 다닌 기억이 없었다.
어떻게 다들 그리 오래전 이야기를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는지 의아했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이건 아니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M은 무미건조하고 답답한 사람들의 현실을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자극적인 도구에 불과했다. M의 끔찍한 사건을 동창들은 거리낌 없이 소비했다.
22살 무렵, U가 자살했을 당시에도 그랬다. 대학에 번번이 떨어지고, 가정형편도 좋지 않아 신세를 비관해서 자살했다는 것이 주된 지론이었지만, 사실 그 누구도 U가 왜 자살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지 못했다. 개중 누군가는 U의 자살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대학 3수 생활을 하던 P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부모님이 주는 돈으로 재수학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공부에는 통 관심이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주는 생활비로 종종 또래 친구들과 홍대에서 술을 마시거나 여자를 꼬시며 놀았고, 노는 것에는 재주가 있었던 P는 2010년대 홍대 골목에서 나름 알아주는 한량이 되어있었다. P는 돈이 떨어지면 아는 형, 아는 누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용직에 나가 술 마시고 놀 돈을 벌었고, 가끔 부모님의 걱정 어린 전화를 받는 날이면 양심상 다음날은 재수학원에 출석하기는 했지만, 그때 뿐이었다. 그러다 예고없이 서울로 올라와 타지에서 공부하느라 고생하고 있을 아들을 만나러 온 P의 부모님에게 그간 P의 행적이 낱낱이 밝혀지고 말았고, P는 그날부로 다시 고향에 붙잡혀 내려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후, P와 부모님의 사이에 형언할 수 없는 형태의 금이 갔음은 불을 보듯 뻔했지만, 그 즈음 U가 자살했고, P는 부모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엄마, U가 죽었대요. 자살이래요. U 알죠? 엄마도. 걔 학교 다닐 때 그래도 공부 좀 했었는데, 이번에도 공부가 잘 안됬는지 대학에 떨어졌거든요. 걔네 집이 좀 형편이 어렵긴 했었는데, 그 와중에 대학까지 떨어지니까 아마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아. 아뇨, 그렇게 막 많이 친한 친구는 아니에요. 그렇게 친한 친구가 아닌데 또 그렇게 갔으니, 사실 장례식장에 안가는게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고요. 그래도 엄마 아들이 다른건 몰라도 정신건강은 좋잖아. 하하하」
P는 그날 이후로 부모님이 자기에게 잘해준다며, 내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이번 M의 살인사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느새 30대를 넘긴 동창들은 결혼이나 연애, 사업, 직장에서의 일 등으로 나름 버거운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일들이 뜻과 달리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아무리 발버둥 치고 노력해봐도 절대 불가능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몸소 경험하고 있기도 했다. 30대를 넘기는 나이는 생각보다 상징적이었다. 나와 동창들은 지금까지 배워왔던 사실들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특히 모든 것은 내가 흘린 땀만큼 정직한 노력으로 극복 가능하다는 말은 어린 시절 울지 않으면 선물을 준다는 산타와 맥락을 같이하는 말임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자신은 이 세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아주 작은 톱니바퀴지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그런 작디작은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서서히 받아들이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실들을 모두 마음에 담을 정도로 영혼이 성숙한 것은 아니었기에 우리는 어딘가 한군데씩 고장 난 마음들을 매일 밤 침대에 누워 의미없는 유투브 쇼츠로 달래고, 아침 출근길에 양산형 ‘이 세계물 웹툰’을 보면서 잠시나마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우리 딸, 우리 아들 최고! 어쩜 이리 잘생기고 예쁘고, 똑똑할까! 누굴 닮아서 그래?」
「엄마 닮아서 그렇지!」
「아유 내 새끼 이쁘기도 하지.」
이미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났지만, 무얼 해도 이뻐해 주던 어린 시절 엄마의 기억들은 다들 생생했다.
그리고, 지금 짊어진 무거운 짐을 잠시라도 내려놓고, 그저 조건 없이 사랑받던 그때의 감각을 다시 느껴볼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연인이 볼을 쓰다듬는 손길에는 어떠한 조건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은 숱한 소통의 부재와 배신의 결과물이리라. 그래서 그들은 M의 살인으로부터 잠시나마 가슴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잊고, 가차없이 M을 물어뜯었다. 주변에서 일어난 실화는 자신의 삶이 그리 최악이 아님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부모님에게 전화해서 ‘엄마, M이 사람을 죽였대요. 인터넷에 떴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마치 어린 시절 학교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아 자랑하는 것과 크게 맥을 달리하지 못했다. 그때와 다른 것은 더 공고히 쌓인 사회생활의 경력으로 좋지 못한 소식을 전하는 목소리 톤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이었을 뿐이었다. 이 끔찍하고 불행한 소식을 듣는 부모님이 내 자식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이고, 부족하나마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한 아이로 자라줬음에 기특하게 여겨줬으면 하는 어린 마음으로 약간 흥분되고 빨라지는 말투조차 숨길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모두가 M이 그래서 왜 사람을 죽였는지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뉴스에서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이별을 통보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던 것도 있었지만, M의 이야기보다는 술김에 ‘그 외모에 여자를 사귈 수 있었다니’라는 말로 시작해서 ‘요즘 사회의 데이트 폭력과 안전 이별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어쩌다 ‘그래서 왜 그런 거래?’라는 말이 나올라치면, 그런 살인자의 사정 따위야 알 필요 없다는 식으로 빈정대는 답이 돌아왔다. 그와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상당히 불쾌하다며, 학창 시절부터 낌새가 좋지 않았다느니, 그런 애들은 일찌감치 격리해서 따로 수용해야 한다느니 라는 식의 말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어느 날, 동창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어김없이 M의 이야기가 나왔고, 모두가 알코올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닐 때쯤,
「야 너도 예전에 얘 20살 때인가 남자친구가 바람나서 걔 죽이니 살리니 그러지 않았냐?」
라며, 누군가가 보편적인 테두리 안에 머물며 암묵적으로 그어놓은 선을 잠시 넘기 시작했다.
「야, 그러면 바람 피는게 맞냐? 그리고 말이야 다 하지.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거랑 같냐」
「아니야 얘 그때 막 나한테 울며불며 난리 치면서 인터넷에다가 막 사람 죽여주는 곳 찾고 그랬다니까. ㅋㅋㅋㅋ」
「미친 새끼네. 야 취했으면 곱게 집에 들어가. 여기서 지랄하지 말고.」
한번 넘은 선은 밀물이 시작된 바다처럼 감정을 담고 바위에 부딪치며 하얀 거품을 쏟아냈다. 그리고, 밀물이 시작된 바다는 항상 그렇듯 만조가 될 때까지 밀려드는 법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그때 그랬잖아 너ㅋㅋㅋ 아니 얘들아 진짜라니까? 얘도 막 사람 죽이려고ㅋㅋㅋ」
「야이 씨발 새끼야 그만하라고.」
「야 알았어. 장난이야 장난 미안해.」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만해 왜 그래 다들 모였는데.’, ‘그래 너가 말이 심했어’, ‘야 너가 참아 얘가 원래 좀 그래 장난도 심하고.’라며 밀려드는 밀물로부터 잠겨들었을 두사람을 끄집어 올리기 시작했다.
「뭐? 장난? 야 살인사건 난걸 가지고 남의 옛날 얘기 들추면서 장난? 그러니까 너가 좆소에서 연 3천 받고 있는거야. 능력이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지.」
「너 말이 심하다? 야 친구끼리 좀 장난 쳤다고 그렇게까지 말할 일이야? 15년도 더 넘은 옛날얘기 다들 하고 그러잖아. 야 진짜 친구니까 하는 얘긴데, 너 삶에 좀 여유를 가져. 그게 안되면 상담이라도 받아보던가. 왜 이렇게 예민하냐.」
‘야야 다들 그만해 뭐 하는 거야 둘다.’ ‘얘네들 다 집에 보내자 애들 술 많이 취한 거 같아.’ ‘야 택시 잡아!’ 주변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싸움이 격해지는 두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떨어뜨렸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은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했기에 싸움을 말리는 사람들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서둘로 둘을 분리하고 집에 가는 택시에 태워 보냈다. 밀려드는 밀물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없음을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M도 그랬을까. 한순간 밀려오는 밀물을 막을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원래 살인을 할 수 있는 유전적 정보가 M에게 박혀있어서 다른 사람보다는 M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M이 아니기에 M이 진정으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와 마음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찾을 수 없을 테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었다.
오늘처럼, M의 곁에는 분명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내가 기억하는 M은 못생겼고 소심했지만, 똑똑했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다. 사람을 죽인 마당에 생각이 깊다는 것이 맞는 설명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결과를 두고 과거를 끼워맞추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기에 그냥 나는 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술자리에서 싸운 두 사람은 학교 다닐 때도 M의 외모에 대해 제일 많이 놀리고 무시한 사람이었다. ‘쟤 나중에 결혼할 여자는 진짜 불쌍하다. 저 얼굴 맨날 봐야 하잖아.’, ‘나 같으면 저 얼굴로 태어났으면 자살한다. 진짜.’, ‘M은 부모님 원망해도 될 듯. 유전자를 잘못 물려받았어.’ 킥킥대며 M을 비웃고 아무렇지 않게 놀려대던 그들과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킥킥대던 사람들도 생각났다. 그리고 M과 같은 처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떠올랐다.
나는 그간 불행은 갑자기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만큼 자신에게 닥쳐올 불행을 예측할 수 없기도 하거니와, 불행을 바라는 사람은 없으니 어떠한 경로로든 맞이하는 불행은 당사자에게는 갑자기 찾아오는 것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귀를 기울이면 보이고 들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여태 그것들을 번번이 외면하고 부정해왔지만, 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는다고 있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M도 그렇지 않았을까. 미성숙한 사람들이 만나 자신을 찾아온 불행의 씨앗들을 외면하고 시간이 흘러 자신도 모르는 새 ‘그래도 괜찮았네.’라는 생각이 자라날 즈음, 불행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어 M을 찾아갔다.
후속 기사에서 M은 감옥 안에서 몇 번이고 자살시도를 했다고 했다. 유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으나, 자신이 죽인 여자의 행동과 자신이 벌인 일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M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과 동창들은 입을 모아 M이 사이코패스라고 하기도 했고, 칼부림과 안전 이별, 폭력적인 남성이나 베타남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리고 제각기 자신의 도덕성을 자랑이라도 하듯 누군가가 ‘결혼할 여자가 어느 날 별다른 사유 없이 헤어지자고 하면 죽고 싶긴 하겠죠.’라는 식의 M을 옹호하는 듯한 말을 하면 그 사람은 살인마의 편을 드는 사람, 또는 잠재적 살인마가 되었다.
이쯤 되니, M이 원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건 아니 건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찾아온 불행의 씨앗들을 계속해서 저마다 방법으로 외면하고 있었고, 주로 부덕한 사연에 분노를 드러내며,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찾으려 애썼다. 그리고 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분명 불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 예상하지 못한 어느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M에게도 불행은 M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닥쳐왔을 것이다. 그리고 불행이 닥쳐오기 전에도, 그 이후에도 M에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불행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내라고 말해줄 사람이 M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끊임없이 영혼을 성숙시켜 나가야 하겠지만, 그 옛날 어린 시절 엄마의 사랑, 아버지의 무등을 한없이 그리워하며, 결국 또다시 미성숙한 마음으로 새로운 불행의 씨앗이 싹을 틔우게 만들겠지. 그러면서도 타인의 불행을 재료 삼아 자신의 도덕성과 존재감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마음으로 자신이 키운 불행이 찾아오는 날, 갑자기 찾아왔다며 이성을 잃고 모든 것들을 저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