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독자 Apr 07. 2024

피해자


  Y의 이혼 소식은 맑은 물에 떨어뜨린 물감 한 방울과 같이 기이한 궤적을 그리며 마음속에 파동을 만들어냈다. 상황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도가 일어나 Y와 나를 집어삼키려 들었지만, 막상 내 마음에 미치는 충격은 그에 비해 소소한 것이었다. 지인이기는 하였지만, 내일은 아니었기에 그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어쩐지 평소 주변의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Y에게 이혼은 살면서 한번은 거치는 의연한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과는 별개로 Y에게는 견뎌내기 어려운 상황일 수 있었기에 조곤조곤 위로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그랬구나, 야 너 괜찮아?」     


「힘들지.」     


  세상에, Y의 입에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오다니. 힘들면 차라리 도망칠지언정 입 밖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내뱉는 Y가 아니었다. 얼마나 힘들었길래 대번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는지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무슨 말이라도 건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니가 얼마만큼 힘든지 차마 다 알수는 없지만 그래도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해줘서 고맙다야.」     


「ㅋㅋㅋ괜찮아 너무 걱정하지마」     


「다 같이 잘살아야지.」     


「그래 그래야지. 그래도 말할 데라도 있어서 좀 낫다.」     


「뭐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누고 살아야지.」     


「ㅋㅋ좋네. 나 그럼 하나만 더 얘기해도 되?」     


「뭔데?」     


「나 이번이 두 번째 이혼이야.」    

 

 Y의 이야기가 어디서 어디까지 흘러가게 되는 것 인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새로운 형태의 물결들이 대화의 틈바구니에서 새어 나왔다. Y의 말에는 어디든 습한 기운이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아니, 못본 6년 사이 동안에 너 진짜 많은 일이 있었네.」     


「많은 일이 있었지 정말. 그 첫 번째 전남편 그 새끼 때문에 노아랑 헤어진 걸 보면 진짜 끔찍한 6년이었다.」     


  Y의 직전 독일인 전남편은 노아라는 이름을 가졌다. 가끔 뜬금없는 단어에 꽂혀 머릿속에서 상상이 펼쳐지곤 하는데, 이번에는 노아라는 이름으로부터 이야기의 맥락과 상관없이 노아의 방주가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격렬하게 휘몰아쳤을 Y의 감정이 홍수가 되었을 때 고고히 방주 위에 올라 Y의 곁을 떠나는 그런 장면 말이다. 알고 있던 성경 속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지만, 내게 익숙한 Y의 성격과을 덧붙이면 아마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저절로 그려진 상상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주곤 한다. 내가 알던 Y로부터 꽤 긴 시간이 지났으니 Y도 어쩌면 꽤 괜찮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관계에 책임을 다하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며 상처를 끌어안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Y가 하는 이야기들이 다시 한번 관계에서 도망치는 비겁한 자기합리화가 아니길 바랬다. 특별히 Y를 위해서 그렇다기보다는 이 나이쯤 되니, 그런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몹시 피곤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리는 이야기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편을 들어주며 ‘그래 그놈이 잘못했네.’라고 하기에도 꺼림직한 느낌이 드는 데다, 참다못해 ‘그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야.’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가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한 개인의 과거를 두고 논쟁을 벌이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Y의 첫 번째 남편이 어떤 식으로 Y와 두 번째 남편인 노아와 헤어지게 되는데 일조했는지는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Y의 영혼이 지난 시간만큼 성숙했든 아니든, 일반적으로 이미 지난 인연이 현재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너는 내 운명’과 같이 영화나, 뉴스에서 가끔 접하는 자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전남편이 어땠는데? 아니, 그 사람이 어떻게 했는데 그렇게 된 거야?」     


「그 새끼가 연애할 때랑 결혼한 이후 사진들 노아한테 다 보냈어.」    

 

「뭐? 아니 왜? 그걸 떠나서 그걸 보낸다고 뭘 어쩌겠다고.」     


「말하자면 길어. 그냥 걔랑은 나는 잘 안 맞았거든.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걸 못 받아들이더라고. 그러다 노아를 만나서 결혼한걸 어떻게 알았는지 노아 인스타 디엠으로 사진을 보낸거야.」


「노아라는 분은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노아가 그 사진들 받고 나한테 이야기하기는 해줬는데 그 새끼가 노아한테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어도 노아가 점점 나한테 멀어지더라고.」     


 ‘남녀 간의 사랑은 독점적이어야 하니까.’라는 문장을 썼다가 다시 지웠다. 대신 첫 번째 남편에 대해 물었다.     

「그 첫 번째 남편하고는 어떻게 헤어진 건데?」     


「그냥 잘 안 맞았어. 성격이.」     


「그래서 그냥 그렇게 헤어진 거야?」     


「자기는 죽어도 이혼 못 한다고 울고불고, 자살하겠다고 하고 그랬는데, 이미 감정이 식은 것을 어떻게 하겠어. 누구 말대로 사랑은 동정이 아니잖아.」     


「그래... 그렇지. 그런데 왜 감정이 식었는데?」     


「그냥 뭔가, 서로 함께 있을 때 점점 대화도 적어지고, 가끔 그 사람이 이기적인 때도 있는 것 같고... 내가 이런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기가 참 힘들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운하고 그랬는지. 아, 그 사람한테 이거 마음에 안드니까 고쳐달라고 하면 말은 알았다고 하면서 잘 안바뀌더라. 그리고 거기에대해서 또 뭐라고 하면, 막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 변명을 하더라고.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사람이 왜 그렇게 자기를 방어하려고 하냐고 하면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 그 새끼는 자기가 끝까지 뭘 잘못했는지 모를 거야 아마.」     

「그래 그렇겠네...」     


「그렇지? 내가 그 사람하고 살면서 가끔 속이 너무 답답해서 저절로 멍해지고 그랬다니까. 조금이라도 더 같이 살았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더라고.」     


 Y는 그저 그렇게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Y는 나름대로 참고 견뎌왔겠지만, 그 수준이 보편적으로 우리가 익숙한 사회의 합의 수준의 밖에 있었고, 불행히도 그것은 Y와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과 합의되지 않은 일방적인 것이었다.


 Y는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질 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사과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모범적인 사과의 형태는 상대가 입은 피해를 최선을 다해 복구하려는 노력을 하며, 같은 일이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그간 다양한 갈등을 마주하다 보니 느끼는 것이 그렇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남겼다고 죄다 사과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은 되려 상대에 대한 기만이 되기도 했다.     


「노아씨는 너한테 사과했어?」     


「미안하다고 했지.」     


「너는 괜찮아?」     


「뭐가?」     


「노아씨 한테 미안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괜찮았냐구.」     


「당연히 안 괜찮았지.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어. 상대방이 싫다는데.」     


「같이 첫 번째 남편 그 사람 고소라도 하지.」    

 

「말이야 쉽지. 돈도 많이들고,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 가정도 다 쪼개지는 거 어떻게든 붙들고 있는 것도 힘든데 고소니, 복수니 하는 것들.」    

 

  생각이 복잡해졌다. 무엇이 Y를 이런 상황에 내몰리게 했을까. 이전에 맺었던 인연을 잘 정리하지 못한 까닭이었는지, 아니면 Y가 그간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성향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인과율에 따른 업보 때문인지. 혹은 그 전부인지. 생각해보면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듯이 Y 또한,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학창 시절 불행을 겪었을 때, 가장 믿었던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은 일로부터 빚어진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결과가 불행으로 치닫길 바란 적은 없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Y같은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관계에 무책임하고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깊은 관계가 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Y 또한 사랑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사람임에는 변함이 없다. 나 또한 때때로 관계에서 비겁하고 무책임한 사람이었음을 생각해보면 Y로부터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내 삶의 작은 파편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Y에게 말했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몇분 뒤, Y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마워.」     

이전 05화 파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