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도를 좋아한다. 물은 무섭기 때문에 가슴께 너머로 물이 차 있거나 물속에 있을 때 발이 닿지 않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파도는 좋아한다. 특히 먼 바다로부터 밀려오는 너울이 이윽고 육지의 경계까지 밀려와 바위에 부딪치고 하얀 거품을 토해내며 결국 비산하고 흩어지는 파도를 좋아한다. 아주 가끔 맑은 날 바닥 모래가 훤히 비치는 얕은 바닷물 위로 유리구슬을 흩뿌려 놓은 듯 빛이 난반사되는 윤슬도 좋아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깊이가 가늠되지 않는 시커멓고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바닷물이 결국 내 발치에도 이르지 못하고 터져버리고 마는 파도가 좋았다.
파도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를 언젠가 집어삼킬 악의도, 제대로 된 수영을 배우기 전에는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아 끊임없이 가라앉을 차갑고 시꺼먼 바닷속 같은 불안도 결국 부서지고, 닿지 못해 다시 밀려나는 모습은 내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오래전 우연히 보게 된 우키요에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그림 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보았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이었다. 거대한 파도가 덮치면 그 아래 위태롭게 떠 있는 배들을 집어삼키고 부술 것이 분명한 이 그림은 나에게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생생한 파도의 묘사와 무기력한 인간의 묘사는 두려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지만, 그림을 바라보는 나와 저 그림은 분명 다른 차원으로 분리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 그림을 특히 좋아했다.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없는 사악하고 위험한 존재들을 바라보는 것만큼 짜릿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렇기에 Y는 내 상식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작은 체구에 여린 몸을 가진 Y는 내 기준에 현실감각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로 새벽 등산을 하고 나면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하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대는 저체온증 직전까지 도달하는 사람이었지만, Y는 그럼에도 등산을 좋아했다. 한겨울 혼자 지리산을 종주하는가 하면, 파도가 휘몰아치는 겨울 바닷가에 느닷없이 들어가 온몸이 쫄딱 젖고, 다음 날 열병 감기로 고생을 하더라도 「그래도 재밌었지?」라며 웃는 그런 사람이었다.
Y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함께 보게 되었을 때, Y와 이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저기 배에 타고있는 사람들은 좋겠다.」
「왜...? 저거 거의 죽음이 확정된 상황인데?」
「아니, 그래도 죽기 전에 저런 것을 눈앞에서 볼수 있잖아.」
「야 요즘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드론으로 날려서 찍은 영상을 보면 되지, 꼭 목숨을 걸어야하냐.」
「에이 그래도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거랑, 영상으로 보는거랑 같나.」
그때 나는 Y가 허세 또는 객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도자기를 만드는 Y는 전형적인 예술인이었고, 대개 젊은 예술인들이 그러하듯 자신의 불안정한 삶과 자세히 알 수 없는 과거에 움찔대며 때때로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비하하기도 하는 유약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옭아매는 것(이를테면 책임이나 관계)에 대해서는 칼같이 끊어내는 모습에서 경계성인격장애를 떠올리게 했지만, 여느 신화의 창세기에 창조주의 일부에서 악이 탄생했다는 구절과 같이 Y의 겉모습은 보편적인 타인의 시선에서 사랑받기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큰 눈과 희고 맑은 피부, 오똑한 코, 깨끗한 목소리는 구태여 추가적인 설명을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미인의 전형이 갖춰야 할 요소들이었고, Y는 운 좋게도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아 본인 내면의 어둠과 별개로 꾸준히 타인의 관심을 받았다.
나는 그런 Y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정점으로 치닫던 시절, H 선생님에게 「사람은 왜 사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선생님께서는 「사람은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해 산다고 생각해요.」라고 대답해주었던 것을, 내 멋대로 해석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적어도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것들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운 좋게 사랑스러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타인의 관심과 친절을 꾸준히 받아오면서도 그것을 교묘히 이용해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는 Y는 내 시선에서 미성숙한 영혼의 전형이었다. 28살의 나이에 그간 갈아치운 남자친구가 13명이나 된다는 것도, 가장 길게 연애한 기간이 1년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해 딱히 Y에게 싫은 소리를 한 적은 없다. 다 각자의 인생이 있겠거니 라고 생각하며, 특별히 Y와 가까워지지 않는다면 내게 피해올 일이 없을 테니 구태여 말을 꺼내 정신적으로 피로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 Y는 외려 나를 편안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듣기 민망한 과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기도 했고, 어린 시절 부모님과 관련된 추억들을 들려주기도 했다. 나아가 보통 사람이라면 숨기고 싶었을 학창 시절 겪었던 끔찍한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중학교 시절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던 Y는 그날 이후로 이성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엄마에게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는 되려 Y가 조신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며 Y를 다그쳤고, Y는 그날 이후, 학교 수업을 거부하고 주로 학교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는 동성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했었고, 그래서 주로 남자애들하고 어울려 다녔다는 이야기도 했다.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들 셋이 있었는데 자기까지 포함해서 총 4명이 한 방에 각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거나 누워서 빈둥거리는 것이 질리면 악기를 연주하곤 했단다.
세상에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Y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Y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나 Y나 서로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나는 Y같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하거나 밥을 먹기는 했지만, 나는 Y와 특별히 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흘러 여느 관계가 그렇듯 서로의 삶이 바빠졌다는 핑계로 관계의 무대가 막을 내린지 약 6년이 흐르고, 각자의 삶을 살다가, 우연히 SNS로 Y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약 2년 전 Y는 독일인과 결혼했다. 생각해보면 Y는 언어적 재능이 출중했었기에 아마 독일어도 금방 배웠을 것이고 그 재능이 분명 외국살이에 십분 영향을 발휘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였던 Y가 독일까지 건너가 사랑을 찾고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상상하기 어려운 영역이었다.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처럼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반쪽을 용케 찾아낸 부분에 대해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야 결혼 축하해. 네가 결혼을 다 했네.」
(읽지 않음)
부러운 마음 반,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 반으로 Y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전했지만, Y는 메시지를 읽지 않았다. 평소 Y는 SNS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으나, 오랜만에 이전 직장동료와의 술자리에서 Y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Y는 타국살이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고, 남편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에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곤 했다고 했다. Y가 주변인들에게 이야기하기로는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 독일어도 곧잘 했지만, 언어라는 것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와 개인의 감정이 뿌리 깊게 얽혀있는 것이었으므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고 했으며, 그 덕에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외로움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 외로움으로 다른 부정한 일을 벌이지는 않았지만, 남편과의 관계가 빠르게 소원해졌고, 그러다 결국 이혼 절차를 밟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야기를 듣고 뭔가 심란한 기분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한 캔 사고 집에 오자마자 다시 SNS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이야 결혼 축하해. 네가 결혼을 다 했네.」
(읽음)
「고마워. 넌 어때? 잘 지내?」
Y에게 메시지가 와있었다. Y의 상황을 대강 알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은 Y의 답장에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오래전 파도 이야기가 떠올라 망설이던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야 잘 지내지. ㅋㅋ아, 너 그때 그 파도 그림 우리 같이 보던거 기억나? 일본풍으로 그린거 있잖아.」
「아, 그거? 알지. 근데 그건 갑자기 왜? 뜬금없이」
「아니 그냥 너랑 정말 오랜만에 연락하는 건데, 너 생각하면 그 그림 생각이 나서. 그 파도 그림 보면서 너 거기에 있는 배에 탄 사람들 부러워했잖아.」
「아 그랬지...」
「지금도 그래? 사람은 잘 안 변한다는데 그대로인가?」
「아냐, 지금은. 안 부러워.」
「엥? 이야 Y가 사람이 변했네? 왜 안 부러워졌는데.」
「그냥, 그건 너무 위험하잖아.」
「언제는 안 위험했나. 네가 이제 좀 뭔가 철이 들었구만. 위험한 것도 알아보게 되고.」
「그렇지. 그땐 참 무서운 것이 없었는데, 차라리 그러다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고.」
어딘가 무게감이 실린 말에 잠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상황은 본래 대화의 의미보다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았기에, 그저 웃음으로 빠르게 넘길 수 있을만한 말을 던지기로 했다.
「죽긴 뭘 죽어 젊은 아가씨가.」
「나 아가씨 아니야.」
「아 그래 너 결혼했지.」
「응, 그리고 이혼도 했어.」
중간 크기의 파도가 여러 번 밀려오다가, 이제는 정말 큰 파도가 우리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