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3월, 기존에 다니던 대안학교를 나와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다. 10년 넘게 청소년 일을 해오면서 느낀 것도 있었고, H 선생님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 이름은 청년지원공동체 소울로 붙였다. 청소년과 청년들의 정서적, 경제적 자립, 사회적 관계망 형성 지원을 목적으로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만든 단체였다.
단체를 만드는 과정은 물론 순탄치 않았다. 공간도 필요했고, 행정상 필요한 서류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말이 비영리단체지 처음 시작하는 단체는 영리와 비영리를 가리지 않고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당시, 삼성꿈장학재단 지원사업을 받아 통합교육의 일환으로 다양한 특성을 가진 청소년들을 한데 모아 뮤지컬을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으나, 그것은 목적이 있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우리 단체에 이익금이나 잉여금을 남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단 돈을 벌어야했다.
수많은 비영리 단체들이 멋진 뜻과 이상으로 설립되었다가 돈이 없어서 어느 순간 사라지는 모습을 자주 봐왔기에, 우리 단체도 그렇게 될까봐 두렵기도 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원금이 반토박 나거나 사라지면, 지원금에 의존하던 단체들 역시 휘청이다가 무너지는 꼴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야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만들어낸 프로그램은 일반 청년들이 기성 작가에게 6개월 간 글쓰기를 배우고 이를 모아 출판하는 것이었다. 글쓰기 경험이라고는 학창시절 일기쓰기와 블로그나 다이어리에 쓰는 것 빼곤 해본적이 거의 없을 일반의 청년들이 혼자서 책을 출판하기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일 뿐더러, 출판하는 데는 막대한 진입 장벽과 돈이 들어가는 문제이므로 저렴한 비용에, 기성 작가에게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체계적으로 배워서 책을 내보는 경험을 준다는 명분은 우리 단체에게 잘 어울렸다. 그렇게 한 사람당 한달에 15만 원 씩 회비를 받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강사비와 실제 출판비와 운영비를 제외하면 남는 이익금은 얼마 없었지만 이 이익금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간에 월세와 세금 정도는 낼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의 업적' 프로젝트는 그렇게 만들어진 글쓰기 및 출판 클래스의 일환이다.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가 어떤 업적을 쌓아가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면서, 청년 개인의 6개월간 성장의 과정을 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총 6명의 청년들이 모였고, 매주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며 오늘의 업적을 주제로 글을 썼다. 처음에는 3줄 쓰기도 힘들어했던 사람들이 6주 쯤 지나자, 4 용지를 가득 메울 정도까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겨 담아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머릿 속이 복잡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고, 불안한 단체의 자금 사정에 언제나 불안에 떨었다. '오늘의 업적'이라는 말로 하루를 잘 살았다고 생각하기에는 아직 이뤄야할 일들이 너무 많았고, 당장 눈 앞에 해나가야할 일들도 많았다.
이 모든 과정이 마침내 어느 정도 안정적인 자금 구조가 완성 되었을 때, 비로소 한숨 돌리며 업적에 대해 이야기 해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주 7일 하루 평균 14시간을 일하면서도 생각만큼 안정되지 않는 단체의 경제 상황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고 잠들기 전에 이러다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주변인들에게는 우리 단체의 뜻과 목표를 큰소리치며 이야기하고 다녔기 때문에, 나의 불안과 어려움에 대해 쉽사리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다.
통장 잔고는 점차 비어가고,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수익으로는 안정적인 구조는 너무 멀어보였다. 끊임없이 그동안 모아온 내 개인 자산이 투입되었고, 배가 가라앉으면 선장도 같이 가라앉는 법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가라앉는 배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새로운 수단을 강구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나는 '오늘의 업적'이라는 말을 되돌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정신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글을 썼다. 피로에 젖은 정신을 잠시 쉬게하는 용도도 아니었고, 정말로 오늘의 업적을 되돌아볼 요량도 아니었다. 그냥 잘 써진 글을 쓰고 싶었다. 잘 쓴 글을 통해 나사빠진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내 노력을 알고 이해해주기를 바랬다. 그래서 글을 썼다.
끊임없이 가라앉고 있었지만, 정말 가라앉는 것은 몹시 두려웠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정말 가라앉는다고 해도 '그 사람은 그렇게 가라앉을 사람은 아니었어. 단지 운이 나빴을 뿐이지.'라는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오늘의 업적을 주제로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