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예민한 성격의 사람들과 만나곤 한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갉아먹고 지치게 만든다. 세상에 오롯이 자기 혼자만 사람이라는 듯 타인의 감정이나 기분 같은 것은 다분히 신경 쓰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기준을 들이밀며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에 대해 거침없이 불만을 쏟아낸다. 보통은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기 위해 자리를 뜬다거나, 따돌리기 일쑤였으나 H 선생님은 달랐다. 예민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던 사람이 H 선생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자 H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살다 보니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을 자세히 보니, 예민하다는 말보다는 우리 같이 둔감한 사람들보다 슬픔을 더 슬프게 느끼고, 기쁨을 더 기쁘게 느끼고, 행복할 때 더 행복해하더라구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할 때 느낀 감정들로 아주 멋진 것들을 만들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낀 기분 좋은 감정들을 나누어주곤 하더라구요. 그러니, 더 기쁜 것들, 더 행복한 것들을 찾아봐요. 그래서 나같이 둔한 사람들도 세상에 더 기쁘고 행복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삶 가운데 우연하게도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그저 얼굴만 마주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아주 어렸을 적, 그러니까 다리의 근육이 온전히 성장하기 전이라 방바닥을 간신히 기어 다니고 있을 무렵에는 엄마 얼굴만 바라보아도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성장해나가는 신체와 복잡한 사회 속 관계들 속에 섞여 들어갈 때마다 우리는 타인을 통해 진정한 위안을 얻는 법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던가, 타인의 냉소적인 태도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타인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무엇을 발견해낼 수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할 뿐이다.
H 선생님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특히 타인의 마음속에서 밝게 빛나는 면을 찾는 것에 탁월한 사람이었다. H 선생님의 대화에는 우리가 이미 익숙해져 있는 사회적 합의 같은 것이 배제되어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발달해온 인간 순수이성에 대한 의미와 논리적인 대화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때로는 슬픔과 분노와 같이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어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았다.
행여 그것이 자신의 안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보호하기보다 상대방의 감정의 편에 서서 듣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그 선생님을 좋아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때때로 함께 내기 탁구를 치거나 장기를 두곤 했는데, 4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잘 관리된 몸은 내기 탁구에서 20대 젊은 교사들을 가뿐하게 이기곤 했다.
H 선생님을 만났을 당시 나는 신장암에 걸려 회복 중이었고 덩달아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자 그림으로 밥을 벌어먹겠다는 생각을 접은 채로, 불안한 현재와 미래를 겪어내고 있었다. 20대 중반 무렵에 나름 ‘이만하면 다 자란 어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은 미성숙한 소년의 것과 다를 바 없었고, 멋진 롤모델의 존재가 20대 청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하염없는 태양의 밝은 빛과 같은 H 선생님을 보며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술을 그만두고 청소년 일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현장에서도 꾸준히 일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어설프게 그 선생님을 따라 하려고도 했지만, 이내, 내 마음의 그릇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그만두었다. 지금은 벌써 청소년과 후기 청소년, 그리고 청년 일을 한지 10년이 넘었다. 거의 모든 일에 쉽게 실증을 내는 내가 한 분야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간 지내온 시간들과 함께해온 사람들, 그리고 스쳐 지나간 소중한 인연들을 생각하면 H 선생님이 떠오른다. 아쉬운 이야기지만, 여러분들과 내가 바라는 것과 다르게 H 선생님은 청소년 일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건 H 선생님은 현장을 떠나 새로운 일을 생업으로 삼기로하셨고 나는 그의 뒤를 이어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해 생을 헌신하기로 했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나도 H 선생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맑은 3월의 밤, 스산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곧 비가 올 예정인 듯 들이마시는 숨에 축축한 빗물 냄새가 섞여들어왔다. 부디, 어떤 날이 앞에 닥쳐와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길 기도해본다.